2009.12.20 주일 설교(사도행전 강해 43)
혼란스러운 마음을 먼저 다스리라
사도행전 19장 21-4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
저는 천성이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이 떠올라 오는지 감당이 안될 정도입니다. 혼자 내버려두면 몇 시간도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지낼 만큼 생각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 저에게 어느 날 주님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 에서 남이니라
하나님께서 제가 생각을 아무렇게나 열어두고 있는 것에 대해서 경고해주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인 줄 몰랐습니다. 엉뚱한 생각도 하고 공상도 하면서 어린 시절, 학생 시절을 죽 보냈는데 영적으로 그것이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생각이 깊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생각이 많은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마음을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마귀에게 틈을 주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여러분의 마음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림 두 가지를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은데, 4영리 전도할 때 제3원리에 보면 두 원이 나옵니다. 당신에게 속한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는 복잡합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이고 또 하나는 정리정돈이 잘 된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 중심에 계시면 마음과 생각이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고 예수님이 주님이 되시지 못한 상태에서는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두 원 중에 여러분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원입니까? 여러분의 마음 상태가 혹시 혼란스러운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집안은 잘 정리되어 있고, 주방의 싱크대, 냉장고와 책상은 잘 정리되어있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내 삶도 혼란스럽구나. 마음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 내 주변에 있는 삶의 자리가 정리정돈이 되어있지 않다면, 지금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일을 결정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말, 말을 해서 복을 받을 말이 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큰 실수를 하거나 하나님이 복주실 수 없는 길을 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의 마음이 정리정돈 된 다음에 어떤 결정도 해야 합니다. 지금은 꼭 안되는 것이 될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성령님은 질서의 영이시고, 악한 영은 혼란의 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곳은 항상 모든 일이 반듯하고 보기가 좋습니다. 악한 영이 역사한 곳은 마음도 그렇고 내 말도 그렇고 내 삶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다 너무 어지럽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분별을 해야 합니다. ‘아, 여기에 영적인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성령이 임하시면서 기사와 이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자 복음에 뜨겁게 반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역사가 나타나니까 복음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고, 2년 동안 말씀을 가르치는 동안 에베소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상은 다 가짜구나. 그래서 그들이 그 일에 얼마나 뜨겁게 반응을 했느냐 하면 집에 있던 우상들, 마술과 관련된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불사르니 책 값이 은 오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1 드라크마가 하루 일당이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10만 원씩만 잡아도 50억입니다. 그것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어마어마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에베소에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악한 영이 가만 있을 리가 없지요. 이런 역사가 일어나니까 에베소에서 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에베소의 우상 사업은 기반부터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사람이 주동이 되어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데미드리오는 에베소의 우상 제조업자들의 회장과 같은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데미드리오가 우상 제조업자들을 모아놓고 자기들의 생업이 무너질 위기에 빠졌고, 이 일이 복음을 전하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도 사도 바울과 동료들을 죽이려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어보면 정말 사도 바울과 예수 믿는 사람 다 죽일듯한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을 찾는데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와 동역하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극장으로 몰려갔습니다. 아데네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무슨 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사람들이 극장으로 모인 것입니다. 그때 소동이 일어나는데, 그 무질서와 혼란이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29 온 성이 요란하여 ...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34 ...다 한 소리로 외쳐 ...두시 동안이나 하더니
무질서가 말로 다 할 수가 없고 혼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만히 어내려가면서 ‘악령의 역사가 이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악한 영의 역사가 정말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혼란스런 모습입니다. 악한 영은 무질서의 영이고 분열의 영, 대적의 영, 혼란의 영입니다. 열매를 보면 어떤 영이 역사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에 악한 영이 강하게 역사한 것입니다. 온 성이 혼란했고 사도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 다 죽일듯한 기세였는데 그때 나타난 현상이 바로 악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음과 가정, 교회 일을 돌아보아서 영적 분별을 잘해야 하겠습니다.
아까 처음에 여러분의 마음을 한번 돌아보시라고 했는데, 예수를 믿는데도 마음이 혼란스러운 분, 삶이 어지러운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혼란스러운 것이 사회, 문화가 급변하고, 세대 차이가 심하고, 재정 위기가 닥쳤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여러분, 혼란의 배경에는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내다보지 못하고 그저 겉으로 나타난 것만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실수하게 되고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코 그 혼란에서 해결함을 얻지 못합니다. 평생 혼란한 삶을 살다가 끝나게 됩니다. 여러분, 마음에 영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님은 아무리 내 주변에 어려운 여건이 있어도 내 마음에 평안을 주고 문제 해결에 대해서 명확한 길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인도함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비록 그 길이 아주 어려운 고난의 길을 가는 것 같아도 내 마음에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주님이 그 길이 사는 길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마음이 복잡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일까? 확신이 없고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시험에 든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교회가 예수님의 교회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악한 영의 역사를 모르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얼마든지 어지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악한 영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영적인 뿌리를 보지 못하고 문제를 대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을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혼란스러운 마음이 다스려집니까? 말씀의 역사로 다스려집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여러분, 우리 마음에 수없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우리 귀에 수 없는 말이 들립니다. 주님이 주신 생각도 있지만 내 생각도 있고 마귀가 주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생각이나 받아들이면 큰 일 납니다. 악한 영이 주는 생각을 내 생각으로 알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마귀가 가룟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넣어준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에게도 마귀가 생각으로 교묘하게 그 마음을 사로잡아 그를 파멸시키려고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주님의 생각인지 어떤 것이 마음이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어떤 길이 주님이 원하는 길인지를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이 여러 생각으로 혼란한 마음을 정리정돈해 준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주님의 음성인지, 마귀의 속삭임인지 분별해 줍니다.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올 때 그 말씀이 예리한 수술용 칼과 같아서 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말씀이 찔러 쪼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지 마귀가 주는 생각인지 내 생각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분별이 되고 깨달아진다는 것입니다.
삶이 혼란스러운 분이 계십니까? 지금 생각이 복잡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십시오. 주님 대하듯이 말씀을 읽으십시오. 여러분이 말씀을 읽어내려가는 중에 여러분이 그렇게 복잡하다고 생각했던 여러분의 마음이 정리가 됩니다. ‘하나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마귀는 내게 이렇게 충동하고 있구나!’
몇년 전 무너진 서울의 성수대교 사건과 삼풍 백화점 사건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다리 하나 놓는데도 백화점 건물 하나 짓는데도 건축주라든지 시공자라든지 간부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정직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건축주나 시공자나 인부 중에 있었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닫지 못하고 무시하는 일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가? 어떻게 정직하게만 일할 수 있어? 어떻게 그렇게 해가지고 돈벌어! 다 그렇게 안하는데. 나만 유난히 그렇게 할 필요가 있어?’라는 마귀가 주는 생각인 줄 모르고 그 생각을 품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이 누가 한 말인지 살펴보지 않고 다 자기 생각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리를 놓아도 무너지는 다리를 놓고 백화점을 지어도 무너지는 건물을 지은 것입니다. 그 다리에서 그 백화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그때도 그런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다 정직하게만 살 수 있어!” 이렇게 우리 심령이 분별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서야 순종 안할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마귀가 주는 말인 줄 알고야 따라갈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분별이 안되니까 예수를 믿고도 실제로는 마귀의 종노릇하고 산단 말입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성경적인가 아닌가 항상 분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갈등, 혼란, 방황하는 것에 대해서 답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렇게 번연히 있는데도 이 말씀을 통해서
캐나다에 집회를 갔다가 어느 권사님이 눈물로 고백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열심히 기도 많이 하시고 교회에 충성하시는 분이셨는데 마음에 상처가 있으셨습니다. 권사님 아들이 집 수리 도중에 화재로 죽는 큰 슬픔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으시지만 그 이후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다 떠나고, 혼자된 며느리와 손자를 보면서 권사님 안에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자리잡았습니다. 교회 권사로서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매일 새벽기도회 교회 문을 열어 주고 닫으면서도, 그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지내셨답니다. 그런데 부흥회에서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과 천국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눈이 새롭게 뜨이면서, 슬퍼만 하고 있는 자신을 안타깝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이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데, 내가 왜 원망해야 하는가? 깨달아지면서 회개가 터지며 마음에 물밀 듯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고 눈물로 간증하셨습니다. 말씀이 마음의 혼란을 해결한 것입니다. 아들 죽은 것 때문에 하나님 원망하고 마음 문을 닫아버리고 기도도 겉으로 형식으로만 하고 기쁨 없는 예배 드리고 지냈던 그 권사님 심령이 혼란스러웠던 것이 빛 가운데 다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 땅이 전부가 아니고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고 내 아들 왜 그렇게 사고로 죽었는가 생각만 했는데 지금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비로서 눈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렇게 번연히 있는데도 이 말씀을 통해서 삶의 인도함을 받고 문제를 해결함 받지 못하는 성도들이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
부천에서 창조교회를 담임하시는 심주일 목사는 북한군 중령 출신의 탈북자입니다. 그는 평양 방어부대, 정치 장교였다가 1998년 3월 17일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하여 서울로 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6 25전쟁 때 미군과 한국군에 의해 처형당했고, 형님도 625전쟁 때 조선인민군에 입대해서 행방불명자가 된 가족적 배경때문에 다양한 혜택을 누리며,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정치 장교가 되었습니다. 주체사상의 신봉자였던 그는 김일성에게 후회 없는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에서 심각하게 갈등하고 있을 때 친구로부터 비밀리에 성경을 선물 받게 되었답니다. 중국을 다녀오는 길에 술도 사오고 담배도 사오면서 성경 한권을 가져와 주더랍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신고를 해야 되지만 절친한 친구가 자기를 믿고 준 것인데, 비밀 아닌 비밀로 숨기고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성경에 이내 몰입하게 되었고, 주체 사상의 기원이 김일성이 만든 것인 줄 알았는데 성경에 있는 내용을 베낀 것이더랍니다. 주체 사상의 원뿌리가 성경이더랍니다. 그리고 주체 사상의 한계가 성경 속에서 해결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영적인 갈증으로 매일 새벽 1시에서 5시까지 이불 속에 숨어 제주 극동방송을 들었답니다. 설교가 끝나고 나오는 찬송을 듣는데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찬송을 들으면 눈물이 나더랍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찬송인데도. 그는 결국 탈북하게 되고 신대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이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를 혼란에서 건져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한 곳에서 오래 목회를 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순회 전도자였습니다. 어디든지 가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모든 죄, 저주에서 건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복음을 전하고 예수 믿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그리고 또다른 도시로 가서 예수 믿으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분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전도할 데가 많습니까? 그런데 2차 전도여행 중에 그렇게 복음을 전하다가 마음에 ‘이것으로는 부족하구나!’하는 것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전도에 대한 심각한 어려움운 문제에 부디쳤습니다. 이미 우리가 말씀을 보
고린도에서부터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단순히 복음만 전해서는 안되고 성도들을 말씀으로 세워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제자훈련을 한 것이지요. 그 결과 고린도에 놀라운 복음의 열매가 맺혀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 이르러 다시 장기 말씀 사역을 하였습니다. 회당에서 석달 동안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말씀을 대적하는 이들이 생기자,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으로 옮겨가 2년 동안 날마다 말씀 훈련, 곧 제자훈련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 훈련이 왜 중요한가? 에베소 성도들이 말씀 훈련을 받고 난 다음에 이런 위기를 대처하는 자세가 깜짝 놀랄 정도로 성숙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이처럼 말씀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에베소의 난동 사건 때 정말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시 실제 상황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 얼마나 두렵고 당황스러웠겠습니까? 다 죽었다고 생각할 상황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제 죽겠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죽겠구나.’ 그렇게 살기등등했습니다. 온 시내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예수 믿는 이들은 다 죽을 것 같았고,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그와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차분하게 문제를 대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잠잠히 기다렸는지 사도 바울이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자신을 대신해서 극장에 끌려들어갈 때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너무 안타까와서 죽어도 자기가 죽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이 상황에서 침착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을 만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같은 소동이 의외로 쉽게 사그러들고 맙니다. 한참을 소리지르고 떠들던 사람들이 서기장이 이 소요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자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버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말씀으로 훈련받는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에베소의 성도들은 두려움이나 염려로 반응하지 않고 침착하게 주님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두려움, 염려가 정말 십자가에서 처리되었다는 것을 본인이 압니다. 두렵지 않고 염려가 되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으니까.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죽음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말씀 훈련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시다. 예수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 그래서 그 복음 듣고 지금까지 예수 믿으시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주일 교회에 와서 설교 듣는 것으로 믿음 지키고 있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틀림없이 신앙 생활도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마음이 복잡하고 예수를 믿어도 삶에 증거가 없습니다. 말씀 훈련을 꼭 받으셔야 합니다. 새가족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일대일 양육을 한번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분들은 속회나 주변에 여러분을 섬겨줄 분이 많이 있습니다. 말씀 훈련을 받으십시오. 말씀 훈련을 받으셨습니까? 제자로 훈련받은 자입니까? 말씀 훈련을 결코 작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신앙 생활의 모든 문제가 바로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자훈련, 선택 과정 정말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신앙 생활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영적인 분별이 생깁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고민하던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교회에서 열심있는 성도들이 왜 시험도 일으키는가?”하는 점이고, 둘째는“교우들을 위하여 뜨겁게 축복기도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왜 모두 다 응답해 주시지는 않는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길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시작한 것입니다.
말씀으로 훈련받지 않은 채 열심만 있는 성도는 교회 안에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고 그저 내 생각, 내 열심만 가지면 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항상 교회를 어렵게 만듭니다. 복을 빌어드렸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하시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복 받는 길, 살 길을 인도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별을 못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힘들다, 어렵다는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살 길도 열어주시고 복을 받게 해주시려고 하시는데도 믿음도 없고 순종함도 없으니 하나님도 어떻게 역사를 못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으시면 반드시 말씀 훈련을 같이 받으셔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에서 마르다는 말씀은 소홀히 여기고, 예수님만 잘 대접해 드리려 했다가 오히려 예수님을 너무나 힘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사도행전 6장 1-6절에 보면 사도들도 말씀과 기도를 못할 정도로 바쁘게 온갖 구제 사업까지 도맡아 봉사하다가 오히려 교회에 큰 시험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면 사람의 생각이 고집이 됩니다.
삿 21:25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자기 생각에 옳다고 다 옳은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든, 교회든, 나라이든, 싸움이 생기는 이유는 모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하나님, 지금 내 귀에 말해 주세요.”하고 기도할 때가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읽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길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신비한 음성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다 성경 말씀에 의하여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소홀히 하고 신비한 음성만 듣기 원하는 자는 오히려 영적으로 약해지고 미혹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주 급박할 때는 급박하게 어떤 때는 아주 신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준비된 사람 훈련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놀라운 방법으로 말씀하시고 그를 인도하십니다.
지난 목요일 우리 교회에서 [기도 24365] 7차 완주 감사예배가 열렸습니다. 제가 개회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는데, 메시지를 준비하던 중에 박해받는 교회 문제가 걸렸습니다. 북한과 사우디,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극심하게 박해받는 교회가 존재하는데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특별 기도회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박해받는 교회로 인하여도 감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요일 3: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 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 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너무나 많은 말씀으로 답을 주셨습니다. 박해 받는 국가가 존속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으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자의 표징은 박해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박해를 받을 때, 이는 이상히 여길 일이 아니라 기뻐할 일이었습니다.
마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 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 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박해받는 교회가 여전히 있고 박해 받는 성도들이 있지만 그것도 하나님께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라고 하시니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 드릴 메시지를 정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혼란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혼란스러워하고 답답해할 때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몀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저는 목사가 되고도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나는 인간적으로 매력도 없고 말 재주도 없고, 카리스마도 없고, 경험도 부족하고, 얼굴에 뭐가 많이 나는 것도 신경에 쓰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제 문제를 보여 주셨습니다.
고전 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제가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역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문제의 뿌리는 사역 그 자체가 아니라, 저를 자랑하려는 내적 동기였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악한 자 미련한 자 없는 자 천한 자 멸시받는 자를 택하여 쓰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게 원하시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이제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하고 또렷하게 말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물이 무슨 상관이며 말 재주가 무슨 상관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제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내가 주님의 종이라는 것에 요동치 않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자가 아니시니까 여러분에게 단 조건 하나 필요할까? 하나님이 쓰시는 조건은 진심으로“주님이 하셨습니다!” 고백하실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그 하나입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모든 혼란을 다 정리해 놓으십니다.
지난 목요일 감리교 세 신학대학원 제자훈련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전도사님이 간증을 하셨습니다.“제자훈련이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평생 원치 않는 곳에서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정말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이 살아야 할지라도,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겠습니까?”그 때는 그렇게 물으시는 목사님이 너무 야박하다 싶었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네, 예”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훈련을 마치는 이 순간, 제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저는 예수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신부로서 이렇게 서있습니다. 목사님이 오늘 다시 한번 그렇게 물으신다면 단 1초도 안 걸리고 “예!”하고 기쁘게 대답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단지 복음을 들은 정도에 머물지는 않습니까? 주일 설교를 듣는 정도에서 신앙생활이 그치지는 않습니까? 마음이 혼란스럽다면 말씀만이 여러분의 마음을 다시한번 정리해줄 수 있습니다.
언제나 말씀에서 답을 얻어야 합니다. 아무리 옳은 일 같아도 말씀으로 답을 얻기 전에는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막연하게 말씀이 임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말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새가족 양육, 제자훈련, 선택 과정 모두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모릅니다.
주님은 우리가 단지 신자가 될 뿐 아니라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 말씀으로 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마음을 다스려 달라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시겠습니다. 말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 제 마음이 복잡합니다. 제 마음이 너무 흔들립니다. 주님, 어디로 가야 될지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으로 제게 오시옵소서. 제 마음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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