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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는 감사, 이웃에게는 사랑 /신명기 16장 13-17절

by 【고동엽】 2023. 1. 24.

2009.11.15 (추수감사 주일)

 

하나님께는 감사, 이웃에게는 사랑

 

신명기 1613-17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작년 추수감사 주일 기억이 지금도 뚜렷합니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 속에서 맞이했던 추수 감사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도무지 감사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 주일을 감사 부흥회라 명하고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성령님이 아니하고는 감사절을 충만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감사하면서 올해 우리는 너무나 감격스런 감사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베푸신 축복이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올해도 감사의 증인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추수감사 주일에 감사의 증인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감사 간증)

우리에게 감사할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이번 주간 추수감사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감사절을 지키게 하시는 이유 하나를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어서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목요일, 제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모임이 하나 있었습니다. 건강으로도 시간으로도 참석하기 어렵지만,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약속 때문에 참석하였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미자립 교회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 모임에 갈 때까지만 해도 올해는 예년과 달리 우리 형편이 참 좋다. 특히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풍성하게 채워주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추수감사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갔다가 저는 그 자리에서 미자립 교회 실태를 들었습니다. 40% 정도의 교회가 1년 결산 2,500만원 미만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생활이 되지 않고 교회가 존폐 위기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저는 올해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하면서 솔직히 마음이 풍성하였습니다. 적어도 작년 같지는 않습니다.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형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올해가 작년 보다 더 고통스런 교회나 이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동하여 오는 교인이 많은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죄책감 같은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년보다 많이 성장했고 재정적으로도 하나님이 복주셨다고 좋아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오늘 추수감사절을 잘 드리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감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 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본문은 추수감사 주일 때마다 인용하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늘 흘려 지나치던 구절이 이번에는 유난히 주목하게 된 구절이 있습니다. 그 구절이 13-14절입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저는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이 구절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예전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추수감사절을 지킬 때는 하나님이 이 구절을 제게 주시고 제 마음을 사로잡으셨습니다.

감사절에 자녀나 레위인과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노비나 나그네나 고아와 과부와도 함께 즐거워할 절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추수감사 주일이 우리 주위에 사는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나 이웃들이 즐거운 날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 예배로 인해서 우리 주변의 어려운 교회와 이웃들이 얼마나 즐거우냐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함께 보신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한목자 교회 추수감사절 예배가 풍성하게 드려지는 것 때문에 어려운 교회가 그렇게 즐거울까?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이 그렇게 기쁜 일이 되는 것일까? 우리가 나름대로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을 전혀 안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 기준에 합할 만큼 우리가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 예배를 거창하게 드렸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교회와 이웃들이 그렇게 즐거웠으리라고는 제가 자신있게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성도들이 하나님께 올바른 감사를 드리는 감사절 예배만 신경 썼지 가난한 이웃을 위한 생각은 너무 소홀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 제사를 드릴 때, 이상한 규정을 두신 것을 보게 됩니다. 레위기 715-1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 중에 바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제사가 있었는데, 감사의 제사인 화목제입니다. 그런데 이 제물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되, 그 날로 다 먹으라는 것입니다. 혹 서원제인 경우에는 다음날까지 먹어도 되지만 그 경우에도 셋째 날이 되면 절대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7:18 “만일 그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지리라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려운 형편의 가정은 제물로 비둘기를 잡거나 곡식 가루를 바칠 수 있지만. 좀 넉넉한 가정에서 소를 잡고 양을 잡는 경우, 하루나 이틀 만에 그것을 다 먹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감사 제사가 아니고 고통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은 어려운 이웃, 나그네,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나누어 먹게 한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을 하루에 다 먹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욕심껏 남겼다가 두고 두고 먹겠다고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감사 제사를 드려 잡은 제물을 어렵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먹게 하시려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감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에는 추수에 관한 법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할 때 자기 밭이라고 네 귀퉁이까지 다 추수하여서는 안된다는 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네 귀퉁이는 남겨 놓고 추수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추수하다가 단을 떨어뜨리거든 줍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것은 너희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추수를 해도 대충 하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주워갈 수 있도록 버려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생길 때, 언제나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베풀어 그들이 기뻐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리처드리키(Richard Leaky)라는 동물학자가 오랫동안 케냐에 살면서 인간과 가장 흡사하다는 원숭이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연구를 통하여 원숭이와 사람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알아냈습니다. 흡사한 점이 참 많았지만 분명한 차이도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사람이 원숭이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원숭이 세계에서는 철저하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세계였다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들의 세계에서만 약한 자를 너그럽게 대할 줄 알고 의좋게 나누어 쓸 줄 알고,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길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과 원숭이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기적인 점에서 동물의 본성도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에 약한 자를 돕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인 이상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물입니다. 사람이라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도와주게 되어있고, 많이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과 나누어서 같이 쓰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 공동체가 동물과 다른 점입니다.

 

신명기 24장에 하나님의 마음이 구구절절 나옵니다.

24:14-22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을 절대로 학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힘이 있다고 약한 자를 절대로 학대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품삯을 주는데 당일에 그것도 해가 지기 전에 주라는 것입니다. 품삯을 받아서 먹고 사는 사람은 그 품삯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진 사람이 자기 형편이 느긋하다고 어려운 사람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 못하고 또 동정하지 못하고 그냥 품삯을 조금이라도 늦게 주면 가난한 사람은 그게 불안하고 두려워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돈을 받아야 되는데 꼭 받게 해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하나님에게 올라가면 그 사람에게는 죄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에게 돈 줄 것이 있으면 빨리 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기도하기 전에. 여러분, 말씀을 잘 알고 보면 우리가 몰라서 복을 걷어차고 사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거둘 때 책지기 못하고 왔어요. 그러면 다시 밭에 가서 가져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가져가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감람나무에서 열매를 추수할 때 나무를 흔들어서 열매를 떨어뜨리는데 한번 흔들었으면 그 다음에는 흔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남았는가 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진 것만 추수해서 가라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 달려있는 열매는 고아나 과부 나그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한번 땄으면 그 다음에는 다시 포도나무에서 또 열매를 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익은 것들은 전부 가난한 사람의 몫으로 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도 애굽 땅에서 종이었지 않느냐? 종된 사람 심정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대로 살지 못하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있다고 깨달았고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 감사하다면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때문에 도대체 어려운 누가 기쁠까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추수감사절은 1년의 수확을 거두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이지만 영적 의미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때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기억해야 될 것은 이렇게 추수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농산물을 추수하듯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알곡과 가라지를 추수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추수할 때가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인류 역사도 심판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감사절인 초막절에 전도서를 읽습니다. 전도서의 중요한 교훈은 말세론적인 교훈입니다. 이것은 초막절이 하늘에서의 영적 추수, 천국 추수와 관련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 앞에 내가 잘 살았느냐 평가 받는 일을 위하여 추수감사절은 교훈을 받는 주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심판을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추수에 비유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사실 예행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 받을 그 날에 대한 예행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추수감사 주일을 준비하면서 지난 1년 간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점검해 보셨을 것입니다. 감사카드를 쓰실 때 하나님께서 내게는 무슨 감사할 제목이 있게 하셨는가? 지난 1년의 결실에 만족하셨습니까? 혹 실망스런 분도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물어야 할 것은 나 자신은 하나님께 알곡인가? 아니면 쭉정이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추수감사절을 제대로 지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올 1년 여러분의 삶을 살펴보시면서 , 대단한 수확이군! 정말 믿음의 열매가 사랑의 열매가 소망의 열매가 잘 맺었구나!” 하시며 흐뭇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니, 이게 뭐야! 쭉정이잖아!” 하시겠습니까? 여기까지 가야 진정한 추수감사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알곡이고 무엇이 쭉정이 입니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마지막 심판 잘에 우리가 서게 될 때,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알곡과 쭉정이로 나뉘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면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였느냐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예수님께 하듯 했느냐? 그러면 알곡이고 높은 길 성공하는 길만 바라보다가 더 많이 가지는 삶만 사모하다가 내 옆에 있는 어렵고 힘들고 고통 당하는 사람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면 쭉정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여러분 주변에 있는 작은 자들이 눈에 들어옵니까? 눈에 들어오는 정도가 아니고 그들이 예수님처럼 보입니까?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헐벗은 자, 나그네 된 자, 이런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까? 그들이 예수님처럼 보입니까? 그러면 알곡이 되어가시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저 나 먹고 살기도 힘들고 어떻게 하든지 성공해야 되겠다고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열심히는 살았어도 뭔가는 이룬 것이 있어도 쭉정이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그런 작은 자들과 동일시하시는 엄청난 선언을 하셨습니다.

25:40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헨리맥스웰 목사님, 어느 주일에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하여 설명하고 우리도 그 길을 걷자!’는 내용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계셨는데, 너무나 영감이 넘쳐서 말씀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 때 한 행려자가 찾아 와서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준비하는 데 방해가 되었기에 짜증이 나서 다음에 오라고 문전박대를 하고 보냈습니다. 주일에 설교는 참 은혜롭게 마쳤는데, 그 행려자가 길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연 십자가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옳았는가? 아니면 그 행려자를 도왔어야 했는가?’ 회개하는 심정으로 그 때부터 에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항상 자문하며 목회하고 교인들에게도 호소하였답니다. 그 이후에 목사님과 교인들의 삶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신문 편집장, 가수, 장사하는 이들, 도시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유명한 찰스쉘던 목사님의 신앙 소설 [In his steps]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추수감사절에 주시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많은 감사를 드릴까? 그 생각으로 추수감사절을 준비하고 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제데로 된 것이라면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들에게 그것이 기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많이 드렸는데 내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들이 즐거운 일이 없으면 감사절을 지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이 함께 즐거워져야 감사가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전쟁과 테러, 지진과 태풍, 가난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울고 계십니다. 우리 주변에도 가정 파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건강 때문에 애통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눈물은 곧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자녀들이 많아도 어려운 자녀들의 형편을 부모는 가장 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 중에 있는 어려운 이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들을 돕는 사람을 하나님이 반드시 복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나에게 하듯 했다면 하나님은 그를 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들의 눈물을 씻겨 주지 못한다면 추수감사 주일 예배를 드리며 정성껏 감사헌금을 드린다고 하나님은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위의 어렵고 가난한 교회와 사람들이 즐거워하지 못하다면 추수감사 주일을 지키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117일자 신문에 기분 좋은 뉴스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베푸는 나라로 바뀐 지구상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세계 은행의 원조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되기 까지 국제 사회의 공적 개발원조(ODA)'연명'했다는 표현이 적합한 대표적인 '수원(受援)' 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나라가 2009년 올해 9350억 원(작년 기준)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원조 공여(供與)'으로 탈바꿈했습니다. 6·25 전쟁 때 한국에 군대를 보내 피를 흘리며 함께 싸웠던 필리핀, 에티오피아, 콜롬비아에 우리나라는 지난해 각각 895만 달러, 419만 달러, 133만 달러를 지원했다. 오는 25일 우리나라는 DAC OECD '개발원조 위원회'에 가입하게 됩니다. 한국이 DAC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국제 사회로부터 진정한 '원조 선진국'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국제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유일한 사례입니다. 2차 대전 후 원조를 받은 대부분 국가는 부패한 정치 환경 등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이 됐지만, 한국만 그 수렁을 빠져나왔다 "DAC 가입국 중 개도국 경험을 가진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살리면 단순히 돈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원조 공여국과 수원국 간의 연결고리'라는 차별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DAC 가입국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 된다는 의미라고 덧 붙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복주실 수 있는 조건입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 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가난한 자를 돕는 이들을 하나님이 주목하십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비다라고 하는 여인이 나오는데 그는 구제를 잘하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결국은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료라고 하는 로마 백부장이 역시 구제를 많이 한 것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 중에 최초로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으로 그를 택하셨습니다. 성경은 일관 되게 구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10:2 고넬료-백성을 많이 구제하더니

교회는 세워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전도였지만, 동시에 구제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복받은 사람이 아니고,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알곡 같은 성도가 되었습니까?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여러분으로 해서 기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점을 물으셔야 되고, 또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저희 교회는 주위의 어려운 이들을 위한 구제를 성탄절기에 맞추어 실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터 추수감사절기도 더욱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추수감사절이야말로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해야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 후에 어려운 이웃에게 선물을 어제까지 준비를 하였는데 그것을 어려운 가정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마음에 차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시워하실까? 그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생색만 내는 수준입니다.

젊은이 교회에서는 추수감사 헌금 전액을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사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본 교회는 여전히 과중한 부담인 관리비와 건축비 상환 등의 문제로 그런 결단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여건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이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못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못한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럴 수 있었다면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더 놀라운 증거를 주셨을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장로님들과 의논하여 결단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주변에 있는 어려운 교회와 이웃들이 선한목자 교회 추수감사 헌금이 많이 나오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할까요? 관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하게 되면, 오늘 선한목자 교회 추수감사절 헌금이 목표보다 더 나오게 해달라고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교회가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기쁨이니까.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복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알곡과 같은 믿음으로 여러분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같은 교회가 되도록 이 시간에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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