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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찌우는 4대 자산/고전 15:55-58

by 【고동엽】 2023. 1. 24.

인생을 살찌우는 4대 자산

고전 15:55-58

<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행복합니다 >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 살려고 애씁니다.

좋다는 것은 다 잡아먹습니다. 개구리가 좋다니까 겨울잠 자는 개구리를 마구 잡고,

언제는 까마귀가 몸에 좋다고 하니까 까마귀 한 마리가 몇 십만 원에 팔렸습니다.

차라리 그 노력으로 욕심과 미움을 한번이라도 버리면 훨씬 몸에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오래 살려고 노력해도 인간은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삶은 결국 허무한 것입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인간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합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소중한 진리입니다.

 

어떤 분은 "부활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합니다. 아직 죽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알지만 자기가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직 한번도 죽음의 고통을 깊이 느끼지 못했다면 철이 덜 든 것입니다.

여러분! 장례식 있으면 많이 참석하십시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철이 들게 됩니다.

사람은 가끔 죽음의 냄새를 맡아보아야 교만해지지 않고,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죽음은 너무 두려운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 그 문제가 닥치면 너무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죽음의 문제와 고통을 가까이 겪어본 사람은 압니다.

 

어떤 사람이 늦게 외동딸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딸아이가 사랑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이가 봉고차에 치어 10미터나 끌려가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딸아이의 시체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분에게 부활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거짓말이라도 부활을 믿고 싶을 텐데, 그것이 정말이라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오늘 본문 57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는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이 주님의 부활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질 때 우리의 믿음은 철든 믿음이 될 것입니다.

 

만약 이 부활의 진리를 가볍게 생각하면 사실 그 믿음은 핵심이 빠진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믿는 사람들의 믿음과 헌신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 되겠습니까?

주님의 12제자 중 11명이 주님 때문에 순교했는데 부활이 없다면 얼마나 허무합니까?

그러나 그분들은 주님의 부활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기에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집에서 낮잠을 자든지, 야외로 놀러가든지 하지 왜 이곳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까?

 

얼마 전, 성철 스님은 돌아가시면서 "나는 무간지옥으로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부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말씀 아닙니까?

실제로 스님의 서재에는 여러 권의 성경이 있었고, 성경도 수십 번 읽었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지만 그분의 마지막 교훈의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많은 수양과 논쟁이 얼마나 허무한 것입니까?

로마 시대에 씨세로라는 최대의 논객이 있었습니다. 논쟁에서는 다 이겼습니다.

그러나 딸의 무덤에서는 인생의 허무함에 질식할 것 같아 "나는 졌다!"고 했습니다.

죽음은 어떤 인간도 무너뜨립니다. 그 죽음을 우리 주님께서 정복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에 감사하시고, 부활을 믿으시고, 부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부활을 믿고, 현재의 삶에서 부활의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 부활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 시간에 4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4가지는 우리의 인생을 살찌우는 아주 중요한 영적인 자산들입니다.

 

1. 우리의 <바른 인간성>이 부활해야 합니다

 

인간성 부활의 제일 요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중심주의를 버리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내 차지! 싫은 것은 남 차지!" 식으로 행동하는 인간성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금년으로 만 10년 동안 교회를 담임목사로 섬기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사랑이 넘쳐야 하지만 많은 분들의 공동체이기에 질서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는 따뜻한 모습도 필요하지만 중심이 견고한 모습도 필요합니다.

중심이 없이 흔들리면 그 공동체는 오합지졸이 되고, 그 목회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결코 은혜 받을만한 재목으로 여기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 교회의 질서가 흔들립니까? 대개 자기 중심주의가 넘칠 때 흔들립니다.

그것이 승리로운 교회생활을 막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중심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두 명의 교회를 잘 다니는 평신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향이 전혀 다릅니다.

철수는 목회자에게 요구를 많이 합니다.

"왜 목회자가 사랑도 없어! 왜 겸손하지 않아! 왜 예수님처럼 살지 않아!"라고 합니다.

반대로 민수는 목회자를 많이 이해하려고 합니다.

"목회자도 사람이니까 이해해! 많은 사람들 이끌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두 명, 세 명 되는 내 자녀들 잘 인도하는 것도 힘든데 정말 힘들 거야!"라고 합니다.

 

어느 날 철수와 민수가 다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거의 예외 없이 그런 일이 생깁니다.

철수는 평신도였을 때 항상 목회자한테 "왜 예수님처럼 살지 않아!"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러한 정의감을 가지고 정말 예수님처럼 살면서 목회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가 되면 완전히 또 자기 중심적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이제는 평신도만 야단칩니다.

자기가 평신도였을 때 목회자가 예수님처럼 살기 원했으면 이제는 자기가 실천할 때인데

평신도가 약간이라도 불평하면 "성도들이 못됐어! 못된 염소야!"라고 성도만 탓합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목회하면서 생각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대개 그렇습니다.

평신도 때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목회자가 되니까 또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얼마나 옹졸합니까?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편견이 사람을 그렇게 옹졸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평신도 때 목회자를 이해하려고 했던 민수는 목회자가 되면 어떨까요?

민수는 오히려 평신도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인내하면서 평신도를 품어줍니다.

"평신도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내가 참아야지! 더 노력해야지!"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왜 예수님처럼 안 살아!"라고 하는 분이 더 예수님처럼 살지 않고,

"믿는 사람도 부족한 점이 많지!"라고 하는 분이 더 예수님처럼 산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부터 철수형 인간성에서 민수형 인간성으로 변화되길 바랍니다.

교만한 철수형 인간성은 은혜가 떠나지만 겸손한 민수형 인간성은 은혜가 넘칩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두 명의 개척 교회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십 년 목회 했는데 교회가 어려웠습니다. 그때 일부 목회자들이 쉽게 함정에 빠지는데

그 함정이란 한과 질투심 때문에 좌충우돌하며 비판이 많은 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철수 목사님은 그 함정에 빠져 큰 교회만 보면 "잘못됐다!"고 하면서 욕만 했습니다.

 

반대로 민수 목사님은 10년 동안 교회가 어려웠지만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생길 수 있는 한과 질투심의 공격을 물리치고 내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큰 교회에 대해서 "큰 교회도 공헌하는 일이 많이 있지!"하고 덮어주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지만 마음만은 큰 목사님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보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철수 목사님과 민수 목사님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신도시에 들어가 급속히 교회가 부흥한 것입니다. 10년만에 대 교회가 되었습니다.

대 교회가 되니까 주변의 개척교회 목사님들로부터 이런 얘기가 심심찮게 들렸습니다.

"저 교회는 큰 교회이면서 자기만 생각해! 구제도 안 하고! 선교도 안 하고!"

 

10여 년 전에 철수 목사님이 하던 소리 그대로였습니다. 그런 소리는 항상 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옛날에 그런 소리를 했던 철수 목사님이 더 잘 이해할 것 같은데

더 이해를 안 합니다. "그럼 작은 교회는 잘 하나? 못된 자들이야"하고 무시해버립니다.

반면에 민수 목사님은 "작은 교회들의 심정을 이해해!"하고 그 심정을 이해해줍니다.

누가 바른 목자일까요? 이 대답을 아셨으면 그 아신 대로 실천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살면서 절대 철수형 사람으로 살지 마시고 민수형 사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부터 먼저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나 같은 사람과 같이 사귀고 싶을까?"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판단하기 전에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자기를 성찰할 수 있어야 우리의 인간성은 멋지게 부활할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분 말을 들어보니까 이 세상에서 몇 명의 무서운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소방관입니다. 왜냐하면 소방관은 물불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소방관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시각장애인입니다. 눈에 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모습은 못 보고 남만 칼질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행동을 보는 시야가 부활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성이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부활절을 맞이해서 자신을 성찰하며 인간성 회복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2. 우리의 <바른 가치관>이 부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성공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일등을 하고, 명예를 얻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래도 그는 성공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공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나은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나은 삶을 위해서도 기여해야 성공한 것입니다.

남의 필요를 무시하고, 남의 필요에 신경 쓰지 않는 삶은 결코 성공한 삶이 아닙니다.

삶의 목표가 이기적인 목표라면 절대 그 삶은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커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을 벗어나 많은 사람을 품는 목표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목표는 무익하고, 무익한 목표는 이루어도 실패입니다.

 

교회생활에서도 무엇이 성공적인 교회생활일까요?

교인 중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섬기는 교인, 또 하나는 섬김 받는 교입니다.

교회생활에서 성공하는 것은 섬김 받는 교인에서 점차 섬겨주는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는 삶이 성공!"이라는 바른 성공의 가치관을 부활시키고 확고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진정한 성공은 자신의 욕망과 세상적 가치관을 죽이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 옵니까? 욕망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죽기 위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뜻과 욕망이 죽지 않으면 삶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예배를 통해 나의 소원을 꼭 이루겠다는 욕망을 가지면 삶의 변화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꿈을 새롭게 하면 삶은 변화됩니다.

 

어떤 분은 자기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을 교회 탓, 목사님의 설교 탓으로 돌립니다.

물론 교회도 노력해야 하고, 목사님도 노력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 그것 때문에 자기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일까요?

그런데 왜 똑같은 교회에서 똑같은 설교를 듣고 다른 사람은 점차 삶이 변할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기본적으로 자신의 마음밭과 가치관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가끔 보면 어떤 분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는데 삶의 변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치관이 변하지 않아서 주로 자신의 욕망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죽이면 가치관이 부활하고, 우리는 반드시 이런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저 사람 예수 믿더니 확실히 변했어! 겸손해지고, 고집도 없어지고, 멋쟁이가 됐어!"

우리는 욕심을 죽이고, 가치관을 부활시켜서 질적인 삶의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3. 우리의 <꿈과 희망>이 부활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최종 승리가 보장된 자입니다. 본문 57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는 패배의식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환경이 어려워도 낙심하지 않고,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불평할 시간에 땀흘려 내일을 준비합니다. 삶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삶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꿈이 있으면 엄청난 골리앗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잃어버리고 나태하게 되면 한 여인도 이길 수 없어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만 꾸고, 계획과 준비가 없고, 노력이 없으면 그것은 망상일 뿐입니다.

망상이란 삶을 망치는 꿈을 말합니다. 헛된 꿈은 오히려 삶을 망가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꿈만 꾸고, 행동은 없고, 훈련은 싫어하고, 준비는 없으면 안됩니다.

꿈을 가졌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정당한 대가를 치를 마음까지 가져야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안락한 삶을 포기하는 태도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사도 바울도 더 높은 꿈을 위해 자기의 것을 포기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포기의 경험이 없이 꿈을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어떤 꿈도 대가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한 후에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행동이 없는 기도는 하나님이 외면하실 것입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 기도했으면 전도지 한 장이라고 더 돌리는 행동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행동이 수반된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부활절을 맞아서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꿈을 부활시키기를 바랍니다.

꿈을 가지면 삶은 오르막길이 되면서 위험도 생기지만 결국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4. 우리의 <의지적 사랑>이 부활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고민과 문제는 대부분 사랑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민을 해결하는 길은 사랑을 부활시키는 길입니다.

큰 시련이 인생의 장애가 아닙니다. 사실상 사랑의 부족이 인생의 가장 큰 장애입니다.

가정에서도 큰 시련을 당하면 오히려 부부간에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당신 매사에 왜 그래?"라는 작은 말 한 마디가 부부관계를 망칩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고민을 해결하는 길은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첫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은 잘 안 쓰는 편입니다.

첫 사랑은 달콤하지만 이상적이고, 감정적이고, 대개 미성숙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단점도 의지적으로 덮어줄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이 더욱 필요합니다.

 

어떤 분이 옛날 연애시절을 떠올려 첫 사랑을 회복하자고 아내에게 꽃을 사줍니다.

그런데 아내가 "아깝게 그게 뭐냐?"고 핀잔을 주어서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첫 사랑의 기분을 살려 꽃을 사주는 것보다 성숙한 의지적 사랑을 나눠주어야 합니다.

아직도 첫 사랑의 기분과 감정에 빠져있으면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기 딱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덮어줄 수 있는 의지적인 참 사랑의 회복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정의감이 강하고 비판이 있고, 인내가 있고, 열정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랑이 점차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불평과 원망이 많아졌습니다.

그것이 옳은 모습입니까? 잘못된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회복하라고 한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 얘기입니다. 한 선교사님이 교회에 오더니 내내 책망만 하더랍니다.

"도대체 한국 교회들은 화려하게 건축하면서 선교사들을 돕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 말은 백 번 맞습니다. 그러나 거만하게 말하니까 오히려 반감만 생겼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렸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빠진 열심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일을 하면서 남을 원망하고, 비판하고, 절망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사랑을 부활시키십시오.

감정적 첫 사랑이 아닌 단점을 덮어주는 첫 사랑을 회복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다 아름답게 보이고, 입에서는 찬송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말과 표정이 밝아지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고,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권세를 이기고 살아나신 날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부활하신 주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확실한 것이라면(28:18-20).

우리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시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력이 여러분들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인간성과 가치관이 부활하고, 우리의 꿈과 사랑이 부활할 것입니다.

그처럼 부활을 믿고 주의 일에 힘쓰면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58).

항상 부활신앙으로 무장해서 자기 주위를 밝게 하고, 큰 축복을 예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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