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P2 고후3:3, 시122:6
Derek Prince ※이 원칙은,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 뿐만 아니라, 모든 기도에 적용되는, 훌륭한 원칙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P1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5.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하기
다음 원칙은 이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슥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란, '천사 군단을 거느리신 하나님' 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권능과 능력, 전부를 갖고 계십니다.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인간의 군사력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만이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슥4:6절을 암송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내 정치적 상황에 대해 분노할 수 있습니다.
저도 때로는 화가 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은 인내해 주시는 것이지,
승인하고 계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특별한 백성(메시아닉 쥬)의 부흥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성령의 능력만이 그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고후3장에 보면, 바울은 설교자로서 자신의 자격을 논할 때
가말리엘 로부터 배웠다는 것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자기가 가진 유명 대학의 박사 학위를 자랑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바울이 내세운 것은, 성령의 능력이었다는 것이죠.
고후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그곳은 온갖 부도덕과 사악으로 가득 찬 도시였습니다.
그들에게 편지할 때,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사역했다는 것입니다.
저 데렉 프린스는, 이곳에 오신 목회자 분들에게 권고드립니다.
여러분의 사역을 진정으로 평가해 주는 것은,
여러분이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에 최고 학부에서 공부한, 자기의 깊은 학식에 대해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자신의 메시지가 ‘정말 성령으로 역사하는 힘이 있었는지’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 증거로, 고린도 교회에 교인들에게,
자신이 거기서 사역한 결과, 즉 성령께서 맺으신 열매들을 보라고 말합니다. 고후3:3
이 구절을 제가 읽을 때, 생동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매체는, ‘성령님’이십니다.
만약 성령의 임재가 없으면, 사람들을 가르치고, 타이르고,
도전하고, 그들의 죄를 지적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사역자들을 통해,
성령의 흘러 나가시는 크고 작은 분량(정도)에 따라
사람들의 완악한 마음이 변합니다.
하나님은, 돌 같은 사람들의 마음이
말씀에 활발하게 반응하여,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될 사람들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일에는, 사역자의 고난과 희생이 따릅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귀찮은 사람들도, 우리가 상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찾기까지 기다리시는데,
그런 백성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만들어집니다. 슥4:6
이스라엘을 위한 (또는 우리 주위의 형제 자매들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중보기도는,
그들에게 성령의 부어주심을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앞으로 훨씬 더 많이, 성령님이 부어지셔야 합니다.
◑6. 시편 102:12~18절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102: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18,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 시편은, 모든 게 끝난, 그런 절망에 처한 사람이, 드린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 드셨다가, 바닥으로 낮추셨습니다.
지금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도자는, 흐느끼며 기도하며, 그 상황을 돌파하기 원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우울증으로 고통 받고 계신다면,
우울증은,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겪는 아픔인데,
그러시다면 이 시편의 기도자처럼 기도하십시오.
문제를 바라보는 내 눈을 옮겨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물끄러미 쳐다본다는 뜻이 아니라, 간절히 앙망하십시오.
자신의 문제를 골똘히 보고 있는 한,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종종 우울하신 분들은, 신앙 상담을 받기 원하는데요,
자칫 잘못하면, 상담을 하다보면, 그 문제를 더욱 깊이 바라보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더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봐야 되는데, 문제를 깊이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시102편의 기도자는, 주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12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1~11절까지는, 자기의 비통함을 쏟아놓습니다.
그런데 12절부터는, 시각이 완전히 바뀝니다.
기도자는,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에게, 유대인(또는 성도들)을 향한 마지막 때의 계시가 열립니다. ↓
: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14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
'시온의 티끌' 먼지까지도 즐거워하는 것이, 주의 종의 한 특징입니다.
당신에겐 그런 특징이 있습니까?
:15 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16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의 영광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옛 KJV성경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실 “때”, 그의 영광이 나타나리라’고 번역합니다. :16
종말이 되어, 주님께서 영광중에 재림하실 때가 되었다는 아주 뚜렷한 징조 중 하나는,
위 16절에서 증거하는 것처럼, 주님께서 시온을 재건축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우리들은, 이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13절에,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라고 했지요?
히브리어로 ‘정한 기한 set time’인 ‘모에드’가 왔다고 합니다.
모든 이스라엘의 신성한 축제는, ‘모에드’로 표현되었습니다.
유월절, 초막절, 대속죄일, 신년 등 모든 절기에요.
하나님께는 달력이 있고, 그 달력에는 모에딤(정한 기한, 약속의 날)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중보자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달력에 있는 약속을 상기시켜 주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중보기도 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예가 본문 13절인데요. ‘하나님, 지금은 시온을 긍휼히 여기실 정한 기한이니,
얼어나셔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다소 복잡한 식사기도를 합니다.
저희는 체중 유지를 위해서, 하루 4번 조금씩 먹습니다.
저희 가정의 식기도를, 아내 룻과 함께 지금 해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음식과 음식을 준비한 손길을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정한 기한에, 이스라엘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세요.
미국과 영국 및 영어권 국가에 부흥을 주세요. 아멘!
우리의 연약한 육신에, 성령으로 힘을 주시고, 지혜롭게 먹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또 살전5:23~25절을 선포합니다. 식기도가 조금 깁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본문에는 ‘너희’
또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지금 이런 식기도를 소개드린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예를 말씀 드린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정해진 시간’을 파악하면,
그 시간 내에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면, 그 중보기도가 더 강력해 지는 것이지요.
◑7.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하면, 세계 평화가 임합니다.
시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이 부분은 예루살렘을 위하는 기도이기도 하지만,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을 말씀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는 형통하리로다!’
여러분이 예루살렘(또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예루살렘을 사랑하면,
번성케 됩니다. 형통하게 됩니다.
이 구절은, 히브리어로는 두운법을 사용했습니다. *alliteration
히브리어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샬루 샬롬 예루샬라임
pray, peace, of Jerusalem
정말 아름다운 음률이지요?
'샬루'란, 기도하다(샤엘)의 명령형입니다. '기도하라'란 뜻이죠.
실제로 ‘샬루 샬롬 예루샬라임’이란 노래도 있습니다. ↙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예언적인 목적에 대해 잘 이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예루살렘에 평화가 내려와서
전쟁이 멈추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대로, 예루살렘에 평화가 오는 방법들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목적/하나님의 방법이란,
‘예루살렘에 평화는,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야 이루어진다’ 입니다.
▲우리 각자는 피닉스, 달라스, 마이애미, 뉴욕 등지에 흩어져 사는데,
‘왜 내가 예루살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가요?’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 해답은, “이 세상 어느 도시도
예루살렘에 평화가 오기 전에는, 영구적인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평화는, 세계 평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 보상으로, 여러분이 사는 도시에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122:6
이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8. 축복하고, 축복 받으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기회가 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나 복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죠.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무조건 복을 듬뿍 내려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면,
전에 경험하지 못한 온갖 종류의 방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선지자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더 많은 축복을 해야 했습니다.
더 악하게 저주하려고 들면, 더 많은 축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에 대해 한 마지막 말입니다.
민24:9,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여러분은 축복이나 저주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저주하실 것입니다.
▲제가 쓴 <blessing or curse 축복인가, 저주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저주 아래 있으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살며, 그래서 그들의 삶은 괴롭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저주에서 벗어나, 축복을 받게 될까요?
사람들이 저주 아래 들어가는 가장 강력하고 흔한 원인이 ‘반유대주의’입니다.
반유대주의 Anti-Semitism(셈족을 반대함)를 주장하면,
자기 개인, 교회와 공동체, 국가 그리고 문명을 자동적으로 저주 아래 들어가게 합니다.
저는 이 책의 8장에서, 팔레스타인 국민인 아랍인, ‘나비엘 하다드’의 간증을 실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사업을 해서 성공했습니다.
한때 그는 9개의 맥도널드 매장을 소유했는데, 나중에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성령세례도 받았습니다.
그후 주님께서는, 그의 재정을 다루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축복과 저주’라는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그의 간증입니다.
‘하나님께서 4달 동안 저주 아래 있는 제 삶의 영역을 보여주셨습니다.
보여주실 때마다, 저는 회개를 했지요.
다음 날 저는, 또 새로운 영역의 저주를 깨닫게 되면, 또 회개하고
저를 위해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 입어,
회개하고, 그 저주를 깨뜨렸습니다.
어느 날, 저는 경배 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제게 ‘정말 그 사실을 믿는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주님, 믿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제게 ‘유대인들에 대한 거부감을 아직도 갖고 있는가?’ 물으셨습니다.
98%의 팔레스타인들은, 여전히 유대인을 거부하고 미워하며,
그들에겐 역사적으로 그럴만한 요인이 있습니다.
주님이 아직도 유대인을 거부하고 있는가 물으시자
저는, 제 집안 모두가, 언제나 유대인을 저주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전형적인 팔레스타인 아랍인으로, 좋은 가문이었고,
명목상 기독교인이었지만, 언제나 유대인을 저주했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대부터 유대인을 증오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저는 주님께 마음속으로 이제부터는 유대인을 향한 어떤 적대감도 갖지 않겠고,
그들을 용서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난 직후, 제 마음에 무엇인가가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재정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돈에 쪼들렸습니다. 저는 한 번도 제 필요를 충족시킬 만큼 벌 수 없었습니다.
제가 4억을 넘게 벌 때도, 5억이 필요 했고
8억을 벌 때는, 9억이 있어야 경비를 지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반유대주의를 회개하고 난 1982년 이래로
저는 수입이 언제나 경비와 필요보다 많습니다.
또한 저는, 너그럽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감정과 육체도 치유해 주셨습니다.
저는 우울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고, 완전한 승리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아래 살고 있습니다.
제 간증이, 저와 비슷한 처지의 여러 분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분은, 지금은 유대인을 위한 특별한 사역을 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의 무슬림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유대인과 무슬림이 나비엘 하다드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이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셨습니다.
유대인을 거부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축복받고 싶으시면, 이스라엘을 축복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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