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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의 비밀 엡5:31~33 출처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 5:31-33).
혼인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결합에 대한 표상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바울은 “이 비밀이 크도다”(5:22)라고 소리쳐 말합니다. 즉 혼인은 우리가 매우 특별히 주목해야 할 ‘비밀’인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관계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빚어진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일치를 그런 식으로 확증해 주심으로써 세상에 그것보다 더 굳은 연합이 없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혼인의 유대관계는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명령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이런 질서에 대한 뜻은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통하여 자신들과 연합한 다른 이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우리들이 그분께서 우리를 그와 같은 질서 속에 살게 하심으로써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신을 다른 이들로부터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 중에 보편적인 일치가 형성되고 또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자기의 이웃들에게 묶여 있는 자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우리 주님의 뜻이므로, 인류는 서로에게 묶이어 있는 두 부류, 즉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첫 번째 창조의 원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듯이 모든 남자들은 모든 여자들을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들 역시 다른 남자들 중에서 그들이 자기 남편이 아닐지라도 모든 겸손함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2.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가르침은 혼인한 남자는 자기의 아내와 더불어 만족해야 하고(잠5:19), 아내도 역시 자신을 전적으로 자기 남편에게 바쳐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모두는 자신들의 욕망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일을 허락하거나, 혹은 우리 주님께서 세우시고 세상 끝날 까지 견고하게 남아 있게 하신 질서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변화시키려 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많은 나라에서 남자들이 서너 명의 아내들을 두는 것이 합법화되는 일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조롱한 것과 남자들 자신들이 이 세상에 어떤 조건으로
태어났는지를 잊고 비정상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죄의 결과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역시 자기 아내들을 자기들 멋대로 아주 사소한 일을 이유로 내어버린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이혼을 허락하신 부분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구제할 가능성이 없고 길들일 수 없는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에 관심을 두셨기에 이런 허락을 하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이 이혼하는 행위는 아내와 함께 살다가 죽겠다는 맹세를 한 후에 그녀를 저버리는 일을 통해서, 그 남자는 자신이 위증자(僞證者)요, 신실치 못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명의 아내를 둔 남자는 허리가 잘려져야 하며, 세 명의 아내를 둔 남자는 세 토막으로 잘리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혼인이 마땅히 유지되어야 하는 방식대로(일부일처제) 유지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남자와 여자의 인격 위에 하나의 표시를 새겨 놓으신 것을 볼 때, 그와 같은 일은 마치 그가 하나님과 인간성을 모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남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는 완전히 끊침을 당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남자들은 만약 그가 자기 아내보다 더 자기 마음에 드는 여인을 바라볼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면 마땅히 자신의 모든 감정을 억제해야 하고, 자기의 눈을 이리 저리 방황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들은 우연히 바라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기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를 쳐다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둘뿐이다. 그렇다. 그리고 우리 둘은 하나의 몸이다. 나는 내 남편과 연합하지 않는 한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둘을 하나가 되게 하셨음을 볼 때, 만약 내가 내 아내와 떨어진다면, 나는 단지 반쪽 짜리 존재에 불과하다.”
3.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라
이제 결론적으로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다’, 즉 ‘경외’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데 이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지녀야 하는 존경과 순종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남편의 의무와 아내의 의무 사이의 차이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들에게 아내를 경외하라고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내들에게는 그 이상의 명령이 있습니다. 즉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남편이 아내를 경멸해도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편은 아내에 대한 복종을 통한 존경은 아니지만 역시 아내를 존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의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3:19). 왜냐하면, 만약 사랑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 받는 자 속에 있는 여러 가지 잘못들과 결점들을 인내해 줄 것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남편들은 아내들을 마치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만 마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남편된 자들은 분별력과 지혜를 가지고 아내들의 연약함을 인내함으로써 그녀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이제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남편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손으로 함께 묶으시고는 “서로 화평하게 일치를 이루며 살아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자기들을 함께 연합시키셨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자기 아내에 대해 지니게 되는 바르고 선한 애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아내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녀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어깨 위에 놓으신 멍에 메는 일을 싫어하기 때문에, 바울은 성경의 다른 구절을 통하여(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 골3:18) 그녀들에게 하나님이 혼인의 주인이시라는 사실과, 또한 아내들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며, 남편이 자기들의 머리가 되어 자기들을 지배하는 것을 스스로 허락해야 하며, 남편에게 존경심을 지녀야 한다는 조건을 설정하신 분도 바로 그분이시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들에게 정하신 조건이란 곧 남편에 대한 복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들은 비록 남편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자기 남편들이 가정에서 권위를 행사하고 가정을 관리할 만한 가치가 정말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 남편들에게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아내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아무런 반대나 말댓구 없이 그것에 대해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아내들은 하나님과 남편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을 찾기 위해 "어째서 그렇지?"라고 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말씀이 오늘날 어떻게 실천되어지고 있습니까?
4. 명백한 가르침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
사람들은 자기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무지(無知)라는 방패를 들이밉니다. “이 가르침은 너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분명한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많은 혼인의 파괴는 바로 그들이 혼인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해 눈을 돌리지 않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 목격되는 바와 같이,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고함을 치고,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버릇없이 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모든 가정에서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가정마다 저주의 소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의 가정에는 단지 슬픔과 조롱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일들이 있는 곳에서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께로 나가는 허락을 받기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분의 자비를 얻고, 그분의 보호하심 아래 머물며, 또한 그분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도록 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합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분명히 말하기를,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지나치게 거칠고 엄격해질 때면, 그리고 아내 역시 그녀의 편에서 너무 비뚤어짐으로써
그녀의 남편이 어떤 방법으로도 그녀와 대항할 수 없어지고, 또한 그녀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하는 대로 자기 자신을 남편에게 복종시키려 하지 않을 때면, 그들의 기도는 방해를 받는다고 지적해 주시고 있습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사도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련한 사람들이여, 너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하늘 문이 너희를 향해 닫혀지고 너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너희는 매우 불행한 자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1천번쯤 물에 빠져 죽는 편이 우리를 위해서는 훨씬 나을 것입니다(즉 이 말은 이렇게 부부간에 다툼으로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될 때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는 표현임). 하나님께서는 부부가 함께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찾으면 귀를 기울여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그와 같이 유익한 조건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귀에 사로잡히고, 미쳐 버린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만약 남편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하려 하고, 아내들도 그처럼 행하려 한다면, 그들 모두는 눈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과, 또한 자기들이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잠19:14) 주님께서 자기들을 연합시켜 주심으로써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 동료가 되고 그녀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또한 아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자기 남편에게 합당한 존경을 바치며, 자기의 머리인 그에게 자신을 굴복시키게 하셨음을 분명히 믿으면서 혼인은 그분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복종하는 최상의 길은 그분을 혼인의 주인으로 여기며 혼인 생활의 모든 면에서 그분의 통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두고 "내가 이 썩은 고기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아내의 잘못들을 캐내는 일에 너무 많은 수고를 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비난들이 혐오스럽고 가증스럽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 대해 "그는 마귀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도 구제될 수 없어"라고 말하기 위해서 그에게 있는 것들을 살피려고 하지 맙시다. 오히려 아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태 안에 머무르도록 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째서 자기들을 그와 같은 복종의 상태에 두셨는지를 캐묻지 맙시다. 또한 아내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그와 같이 남편들에게 복종하게 하셨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대해 반역을 일으킬 정도까지 교만해지지 맙시다.
기독교개혁신보 <편집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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