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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와 기타 재난에서 십자가를 짐 마5:10, 행5:41 출처
존 칼빈
◑의를 위하여 고통을 받음
그런데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것은 독특한 위로가 된다. 하나님을 위한
군인에게 이 특수한 휘장을 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영예를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의를 위해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노력을 계속하는 사람은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
그러므로 사탄의 거짓말에 대항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든지 또는 악한 자에 대항해서
선하고 무죄한 사람들을 보호하든지 간에, 우리는 세상의 멸시와 미움을 받아야 하며,
이것이 우리의 생명이나 재산이나 명예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하나님에게 우리의 노력을 바치는 것을 슬퍼하거나 근심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복되다고 선언하신 일들을 하면서(마5:10),
자기를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도 아니다.
빈곤까지도 그 자체로 본다면 불행이다.
마찬가지로 추방, 모욕, 감옥에 갇힘, 치욕 등도 불행이며 죽음은 최고의 재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위에 있을 때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행복으로 변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거하심에 만족하고, 육의 그릇된 평가를 물리쳐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사도를 본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행 5 : 41) 기뻐할 것이다.
우리가 무죄하고 양심에 부끄러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악한 불신자들 때문에 재산을 빼앗긴다면 우리는 물론 인간 사회에서는 몹시 빈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일을 통해서 우리의 진정한 재산이 불어난다.
자기 집을 쫓겨난다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더욱 친근하게 영접을 받을 것이다.
괴로움과 멸시를 당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만큼 더 견고하게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게 된다.
모욕과 수치를 당한다면,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서 더 훌륭한 자리를 얻는다.
죽임을 당한다면, 복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우리 앞에 열릴 것이다.
주께서 크게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하신 일들을
현세의 허망한 일시적 유혹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을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십자가 밑에서 고통당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안에서 더 위로를 얻는다
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치욕이나 재난을 받을 때에,
우리는 성경에 있는 이런 경고의 말씀에서 충분한 위로를 받는다.
따라서 주께서 주시는 이런 고통들을 기꺼이 또 즐겁게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무도 은혜를 모르는 자들일 것이다.
특히 이런 십자가는 신자가 지는 것이 가장 적당하며, 베드로가 가르친 것과 같이(벧전4:12),
우리가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에게는 치욕을 받는 것이 백 번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딤전4:10)
박해뿐 아니라 비난도 받으리라고 바울은 특히 경고한다.
그는 다른 곳에서도 세평이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리는 그를 본받아 살아야 한다고 권고한다(고후6:8)
그러나 즐거운 태도를 취하라고 하는 것은 심신의 고통과 아픔을 전혀 느끼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고통으로 인한 괴로움과 근심이 없다면, 십자가 안에서의 성도의 인내도 없을 것이다.
빈곤과 병과 치욕에 각기의 고통이 있으며, 죽음에는 공포심이 따른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런 것들을 태연하게 견디는 것이 무슨 용기나 절제가 될 것인가?
이런 경험은 그 성질상 고통스러운 것,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고통으로 인한 곤란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도리어 그 고통으로 연단을 받아 용감하게 저항하며 그것을 극복한다면 거기서 신자의 용기가 나타난다.
날카롭게 찌르는 자가 있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급하고 과격한 행동을 억제한다면,
거기서 신자의 인내가 나타난다. 비통한 일로 상처받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위안에서 안식처를 얻는다면, 거기서 신자의 즐거움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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