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오늘의 묵상 - 851회] - 우리......“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by 【고동엽】 2023. 1. 14.
[오늘의 묵상 - 851회] - 우리......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태복음 10:36)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가운데 가장 많이 쓰는 말 하나는 ‘우리’입니다. 우리 집, 우리 식구, 우리 차, 우리 개, 우리 동네, 우리 고향, 우리나라 등등입니다. ‘우리’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면 ‘내 편’이라는 개념이 생깁니다.
‘우리’라는 말의 대칭(對稱)되는 말은 ‘너, 너희' 등입니다. ’너‘는 친구도 될 수 있지만, 대결해야 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너는 선의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적대적 관계가 되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미국 시민권 선서를 할 때, 미국 시민의 의무를 선서하는데, 미국에 전쟁이 나면 전쟁에 나가 미국을 위해 싸우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미국 시민이 되면,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미국이 됩니다. 고국(故國) 또는 모국(母國)이 어디냐고 물으면 한국,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한국과 미국이 전쟁을 한다면 미국 시민권자 Korean American들은 총칼을 들고 한국을 상대로 싸워야합니다. 한국은 적국이 되는 것이지요.
오래전에 중국 심양에 있는 동북신학원에 가서 조선족 반 학생들에게 한 주간 강의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필자는 학생들에게 만일 한국(남한)과 중국이 운동 경기를 한다면 어느 쪽을 응원하겠는냐고 물었더니 서슴지 않고, 중국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곳 조선족 2세, 3세들의 부모나, 조부모의 고국은 한국일지 몰라도, 중국에서 태어난 그들에게는 자기들이 태어난 중국, 또 많은 혜택을 받고 사는 중국이 모국이므로 당연히 중국을 응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자기들에게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한국이 미국이나 러시아 등의 나라와 경기를 한다면 어느 쪽을 응원하겠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배달겨레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중국이 아닌 제 3국과 경기를 하면 한국을 응원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배달겨레라도 6.25 사변 때, 북한은 남한의 적이었습니다.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철천지원수였습니다. 북한 사람들 개개인은 물론 적이 아니지만, 김일성 공산당 정권은 우리의 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남한을 적화 통일 시키려고 남침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 때 만일 남한이 공산화 되었다면 남한은 현재 북한과 같은 운명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같은 단군의 후손으로 조상들의 피를 나눈 동포지만, 이념이나 사상이 다르면 피를 나눈 ‘우리’ 동족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어지고 맙니다. 동족이 아니고, 적이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 민족, ‘우리’ 동포라는 말은 무의미해집니다.
우리 가족이라는 개념도 돈 앞에서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형제간에 유산 때문에 서로 소송을 하고, 법정에서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는 모습을 가끔 봅니다. 이 때 ‘우리 가족’이라는 개념은 사라집니다. 심지어 자식이 부모를 법정에 고소하고 부자가 판사 앞에 나란히 서서 판결을 구하는 모습도 봅니다. 여기 부자의 관계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들의 혈연관계인 가족, 절친한 친구, 고향 사람,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은 돈이나 이해관계가 얽히면 무의미하게 무너져 내린다는 뜻입니다. 특히 물질, 즉 돈과 연관되면 ‘우리....’는 전혀 무의미하게 됩니다.
진정한 ‘우리’는 인간의 혈연관계 보다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관계 즉 교우(敎友)가 진정한 ‘우리’의 영적 가족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형제자매보다 교회에서 맺어진 교우 관계기 더 돈독(敦篤)하고 끈끈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혈연보다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결합할 수 없는 것처럼, 신자와 불신자는 결합할 수 없습니다. 바울 선생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라 말씀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라는 개념은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진정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만나는 교우들끼리만 쓸 수 있는 따뜻한 용어입니다.
인류가 진정한 ‘우리’가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전쟁이 없습니다. 오직 평화만 있을 뿐입니다. 인류가 진정으로 ‘우리’가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야 합니다. 인류는 우리의 전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도의 소명이 이렇게 큰 뜻이 있습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전도합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