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748회] - “아니오”라 할 수 있는 용기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나를 주 앞에서 쫓아 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3,11)
다윗 왕이 간음과 살인을 범하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보내셔서 다윗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단은 비유로, 한 마을의 부자집에 손님이 오자, 자기 집에 있는 많은 양 중 한 마리를 잡아 손님을 대접하지 않고, 대신 가난한 집 주인이 자기 딸처럼 기르는 하나밖에 없는 양을 빼앗아 손님을 접대했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대노(大怒)하며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며 소리쳤습니다. 이 때 나단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일갈(一喝)했습니다.(삼하 12:-5,7)
이 말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율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 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1,2,3)라며 회개하였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후, 자기의 죄를 깨닫고 참회한 다윗은 그의 죄악을 넘어 성군(聖君)으로 역사에 길이 남아 있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는,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갔을 때, 본디 이스라엘 땅이었던 길르앗 라못을 되찾는 전쟁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일을 선지자들에게 물어 보자고 말했습니다.
아합은 선지자 400명을 모으고 이 일을 물었는데, 모든 선지자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승리를 예언했습니다. 여호사밧이 다른 선지자는 없느냐고 묻자, 아합은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항상 나에게 불길한 예언만 해서 부르지 않았다고 말하자, 여호사밧은 그러지 말고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불려나온 미가야는 400명 선지자들의 입에 거짓말 하는 영이 있어 거짓을 예언한 것이라며,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패할 것을 충언했으나, 아합은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가야를 잡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 올 때까지 고생의 떡(빵)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 명하고 전쟁에 나갔으나, 적군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괴롭혔던 아합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마태복음 14장에는 요한이 당시 분봉왕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충언하자, 헤롯은 요한을 잡아 결박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살로매)가 멋진 춤을 추자, 기분이 좋아진 헤롯은 살로매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말하면 들어 주겠다고 공언(公言)했습니다.
살로매는 제 어미에게 물은 후, 세례 요한의 목을 소반에 담아 달라는 말을 하자, 해롯은 내키지 않았으나, 자기가 약속한 것을 번복 할 수 없어 그렇게 하라고 명합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목 베임을 당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아무도 헤롯의 잘못을 규탄하지 않았지만, 세례 요한은 죽음을 무릅쓰고 그의 잘못을 지적한 연고로 목 베임을 당하는 수난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조선 왕조 10대 연산군은 처음에 선정을 하였으나, 자기의 친모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실록(實錄)을 읽은 후, 폭군으로 변해 이 일에 가담한 벼슬아치들을 갑자사화를 비롯한 여러 사화로 수없이 도륙(屠戮)하였습니다.
그 후로 폭정이 날로 심해졌고, 또 음탕한 놀이가 계속되자, 민심이 이반(離反)하고, 나라가 흔들리므로, 환관은 감히 왕에게 충언을 할 수 없었으나, 연산군의 처사가 너무 지나치자, 환관 김처선은 연산군에게 선정을 베풀라고 간언했습니다.
세종대왕부터 여러 왕을 보필한 처선을 연산군은 활로 가슴을 쏘아 쓰러뜨리고, 두 다리를 잘랐으나, 처선이 간언(諫言)을 계속하자 혀를 잘라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선의 양자를 죽였고, 처선의 7촌 가족을 모두 엄벌에 처했습니다.
연산군은 얼마가지 못하고,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강화도 교동에 귀양을 갔는데, 두 달 만에 역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충성스러운 환관의 말에 따라, 정신을 차리고 정치를 잘 했더라면, ‘군’(君)이 아니고 왕이 되어, ‘조’(祖)나 ‘종’(宗)이라는 칭호가 붙는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처선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폭군에게 충언을 했다가, 비참한 죽음을 당했지만, 역사는 그가 비록 환관이었지만, 충신으로 추대하고 있습니다. 240년 뒤, 21대 영조대왕은 처선의 공적을 기려 그의 고향에 공적을 기리는 정문(旌門:충신, 열녀, 효자 등을 기리고자 그 집 앞에 세우는 붉은 문)을 세웠습니다.
권력자에게 충언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목숨을 담보하는 일이어서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불의에 항거하고 투쟁해야하는 소임이 지워져 있습니다. 기독교는 믿기 어려운 종교임에 틀림없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만나겠습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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