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충성하라 (창세기 35장 6-8절) < 교회를 소중히 여기라 >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피신할 때 서원했던 대로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서 정착했다. 거기서 외동딸 디나가 강간당했고 그 복수로 야곱 가족이 세겜 족속을 야비하게 멸족시켰다. 그 복수가 통쾌함을 주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야곱은 벧엘로 이주할 것을 결심하고 마침내 벧엘에 이르러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곳 이름을 ‘엘벧엘’이라고 불렀다(7절).
야곱이 벧엘에 이르자 하나님은 큰 축복을 다시 약속하셨다. 즉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자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나타나 복을 주시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불러주셨다(9-10절).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주시면서 많은 왕들이 그의 후손에서 나오고 그와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11-12절). 그 약속 말씀을 듣고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과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다(14-15절).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이란 뜻으로 오늘날 교회를 상징한다.
세상을 상징하는 세겜에서는 행복이 주어질 수 없다. 행복을 얻으려면 영적 환경도 중요하기에 하나님은 야곱 가족을 벧엘로 이사시키셨다. 세겜에서 벧엘로 가서 축복받은 것은 교회 중심적인 삶의 중요성을 교훈한다. 창세기 35장 1절을 보면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란 말씀이 나온다. 교회 안에 거하라는 암시다. 어떤 곳이든지 그곳에서 축복의 기초를 쌓으려면 그곳 안에 온전히 거해야 능력도 나오고 삶도 행복해진다.
어떤 사람은 한국에 있을 때는 미국을 동경하고 미국에 이민 간 후에는 한국을 그리워한다. 미국에 이민 갔어도 한국식을 고집하면 시험과 환난을 자초하게 된다. 복을 원하면 거룩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어디에 가든지 그곳에 온전히 거하라. 교회를 다니면서 시험과 환난이 많아지는 이유는 대개 교회 안에 온전히 거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교회 안에 온전히 거하라. 하나님은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자를 그가 교회를 소중히 여긴 것 이상으로 소중히 여겨주시고 축복해주신다.
< 끝까지 충성하라 >
야곱 식솔이 벧엘이 이르러 제단을 쌓을 무렵에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자 그녀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다(8절).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는 리브가가 이삭에게 시집올 때 함께 왔던 유모였다. 야곱의 유모도 아닌 리브가의 유모였던 고령의 그녀가 왜 야곱과 함께 있게 되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다. 아마 야곱이 거부가 되어 귀향한 후 옛날에 자신을 잘 돌봐주었던 기억과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추억으로 그녀를 수소문해 찾아 자신과 함께 있기를 제안해 함께 있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녀는 대를 이어 오랫동안 신실하게 충성했던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에 못지않게 야곱 가족을 위해 대를 이어 충성했다. 야곱이 자기 유모도 아닌 자기 어머니의 유모에 대해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성대하게 장사해서 그 나무를 ‘눈물의 상수리나무’라는 뜻을 가진 알론바굿이라고 칭하고 성경이 그 내용을 기록까지 한 것을 볼 때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는 후일에 등장하는 사사기의 사사 드보라에 못지않게 복 받는 성도의 표상이 된다.
유모 드보라는 언약 가문을 이삭과 야곱까지 2대에 걸쳐 신실하게 섬겼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충성했다. 한 가정의 종으로 평생 지내는 삶을 비참한 삶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충성스런 삶을 통해 당시 어느 누구보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요즘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대기업 회장과 고난 중에도 끝까지 함께 해서 유명해진 전문경영인이 있다. 고대에 그런 복된 전문경영인의 위상이 바로 엘리에셀과 드보라의 위상이다.
성경은 섬김의 삶의 축복과 관련된 교훈을 위해 유모 드보라의 장사 사실을 기록했다. 얼마다 복된 일인가? 심은 대로 거둔다. 충성스럽게 심으면 살아생전에도 거두지만 혹시 살아생전에 거루지 못하면 하나님이 다 기억해주셔서 천국에서 멋지게 거두게 하신다. 복 받는 삶은 어렵지 않다. “나는 능력이 없다. 상층행 사다리가 끊어졌기에 높이 오를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라. 아래에서 열심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섬기기만 해도 사람 인물도 그 눈물의 섬김을 기억해주고 더 나아가 하나님도 기억해주실 것이다. 그것이 최대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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