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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앞세워 살라 (창세기 38장 1-30절)

by 【고동엽】 2023. 1. 9.

은혜를 앞세워 살라 (창세기 38장 1-30절) < 유다의 타락이 주는 교훈 >

 창세기 37-50장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 중 유일하게 삽입된 이야기가 38장에 나오는 유다의 타락 이야기다. 유다의 타락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성경의 진실성

 성경은 믿음의 영웅들 이야기를 미화한 책이 아니다. 사람이 꾸민 책이라면 미화하고 포장해서 더 신비감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책이기에 필요하면 영적인 영웅의 치부와 허물도 그대로 노출시킨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흉년 때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는 장면도 기록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존재로 여겨졌던 다윗의 간음 사건도 기록했다.

 심지어 본문에서는 유다 지파의 선조인 유다가 며느리와 관계하는 장면까지 기록했다. 야곱의 12아들을 통해 형성된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가장 복된 지파가 유다 후손들로 형성된 유다 지파였다. 비록 창세기 37-50장은 대부분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의 이야기로 구성되었지만 메시야의 계보가 요셉 후손이 아닌 유다 후손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유다 지파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지파였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을 ‘유대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다. 또한 유다 지파는 출애굽 때 광야에서 선봉에 섰고 갈렙의 리더십 하에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도 선봉에 섰다. 다윗도 유다 지파였고 예수님도 유다 지파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메시야 지파의 조상인 유다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출만도 한데 성경은 그 치부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그 점만 봐도 성경의 진실성을 확신하게 된다.

 사람에게 가장 위대한 복의 원천은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실물은 성경이다. 원본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에 오래된 성경 사본일수록 가치가 크지만 성경이 진짜 가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가까이하는 것은 왕이나 대통령이나 위대한 부자나 권력자를 인맥으로 가지는 것보다 더욱 큰 복이다. 성경을 가까이해서 성경 말씀을 내 영혼의 양식으로 삼으면 이생과 내생에서 가장 복된 존재가 될 것이다.

 성도란 세상 욕심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내는 사람이다. 참된 복도 세상 욕심을 말씀으로 이겨내고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왜 성도는 성공한 사람을 보아도 시기가 없는가? 말씀이 가까이하며 산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저도 성경강해 분량이 많아지면서 동시에 힘과 숫자와 자리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비례해서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에 꼭 붙어서 살면 존재 의미를 잃을 염려도 없고 인생의 보람과 행복도 커진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를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두라. 그 목적을 이루려면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는 통로 역할을 하라. 선교의 최대 목표도 다른 어떤 것보다 말씀을 나눠주는 것에 있어야 한다.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이 매달 큰 마이너스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그 필요를 채워주셨기 때문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고 그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손길을 생생하게 체험할 것이다.

2. 은혜의 탁월성

 본문에 나오는 유다의 모습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을만한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본문 2절을 보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이 구절에서 “보고”라는 말은 유다가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면 타락할 줄 알면서도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의 외모를 보고 결혼했다는 암시다. 요새 외모를 보고 결혼한 후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 누구 책임인가? 결국 자기 책임이다. 대개 끼리끼리 어울린다. 내가 누구와 어울리느냐는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나타낸다.

 내가 선택한 배우자의 모습을 통해서도 나의 인격과 성향과 사람됨이 상당히 드러난다. 어울리고 사귀는 친구를 봐도 대략 사람됨을 알지만 배우자를 보면 더욱 사람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배우자를 탓하는 마음이 들면 그 전에 자신부터 성찰하라. 배우자의 행동과 모습은 나의 행동과 모습을 비춰주는 부분적인 거울이다. 그 사실은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내가 변하면 배우자도 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유다가 외모만 보고 결혼해서 가정적인 불행의 씨를 낳은 것에는 자기 책임도 상당히 컸다.

 유다는 자식 농사도 제대로 못했다. 얼마나 엘이 악했으면 본문 7절에서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해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다.”는 말까지 나오는가? 둘째 아들 오난도 그 이상으로 악했다. 유다 자녀들이 악한 행동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정도라면 그렇게 기른 유다에게도 허물이 매우 많았다는 암시다. 특히 유다는 육적인 절제력이 약했다. 며느리를 창녀로 여길 정도로 술에 취한 것도 문제지만 창녀를 찾는 것 자체도 그가 얼마나 성적인 절제를 못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고 화대를 흥정하는 본문의 묘사도 그의 무절제한 성적인 성향을 잘 보여준다.

 또한 유다는 길거리 창녀에게 화대의 담보물로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주었다. 도장처럼 중요한 물건을 화대의 담보물로 준 것은 아주 무책임한 모습이다. 게다가 가치관도 이중적이었다.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듣자 자기 음행은 외면한 채 며느리를 불살라 죽이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그런 자기중심적인 정의감은 사회를 더 시끄럽게 만든다. 남의 잘못이 눈에 보이면 돌로 칠 생각부터 하지 말고 내게는 그런 잘못이 없는지부터 먼저 살피라.

 그렇게 허물이 많았지만 유다는 메시야 가문의 한 조상이 되었다. 여기서 사람의 허물을 덮고도 남는 하나님의 은혜의 탁월성을 느낀다. 아무리 부족하고 허물이 많아도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찬란한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다. 허물 많은 유다에게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주셨듯이 나와 내 자녀도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다. 돈이나 성공이나 합격보다 중요한 것이 은혜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얼마든지 인생 반전의 역사를 이뤄낼 수 있다.

3. 회개의 중요성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가?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회개다.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듣고 유다가 가문의 위신을 찾겠다고 무서운 화형 명령을 내렸을 때 다말은 사람을 보내어 유다에게 “이 물건 임자로 인해 임신했습니다.”라고 말했다(25절). 그때 유다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본문 26절을 보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가장 의로운 사람처럼 행세하다가 가장 수치스러운 존재로 전락한 상황에서 유다는 위대한 모습을 보였다. 즉 자기 잘못에 대해 발뺌하기보다 즉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며느리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이해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그 장면을 보면 유다가 왜 그렇게 허물이 많았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그에게 있었던 위대한 한 가지 장점은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회개하는 태도였다. 회개는 막힌 은혜를 뚫어주는 최대의 소통 도구다.

 사람 앞에서도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은혜를 입는 핵심 포인트인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하나님은 회개할 줄 아는 사람에게 생각 이상의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신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회개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명도 주신다. 회개를 잘하는 장점 한 가지가 열 가지 단점을 커버한다. 심지어는 잘못이 없어도 잘못했다고 하면 은혜를 더블로 받는다. 회개에서는 1등 성도가 되라.

 회개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당신이 옳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실천적인 의미에서 “하나님! 제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도 회개다. 사람의 삶은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다 단점과 장점이 있어서 사람의 차이는 오십 보 백 보다. 그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나를 버리고 내 뜻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 깨달음과 돌이킴이 사람을 복되게 만든다.

 둘째, 사람 앞에서도 “당신이 옳아요.”라고 용기 있게 말할 줄 아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잘못했다고 해도 사람 앞에서는 명백한 잘못을 하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우긴다. 어떤 때는 서로가 다 분명히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원리에 분명히 어긋난 주장이 아니면 상대를 인정해주고 “그가 옳을 수도 있다.”라고 여기면서 내 고집을 잘 꺾는 것도 회개하는 마음의 일종이다.

 셋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돌이킨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다는 다말에게 “네가 나보다 옳다.”라고 말한 후 다시는 다말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다말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는 깐깐한 삶을 버렸다는 암시다. 그는 회개가 말로만의 회개가 되지 않도록 행동으로 실천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받아 쌍둥이를 낳게 하셔서 메시야 가문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허물이 많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참된 회개로 하나님의 은혜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 은혜를 앞세워 살라 >

 유다의 수치스런 얘기가 성경에 기록될 정도라면 당시 그 얘기는 가나안 땅에 파다하게 퍼졌을 것이다. 그래도 유다는 참된 회개를 통해 수치를 극복하고 위대한 가문의 조상이 되었다. 내게 수치스런 과거가 있었고 혹은 앞으로 있어도 참된 회개를 통해 놀라운 반전의 역사를 만들어내라. 현재의 모습이 아무리 부족해도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은혜를 앞세워 나아가면 지금부터라도 상당한 성취를 이루고 천국에 입성할 수 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가 다시 행복을 찾는 과정이 나온다. 그때 탕자는 비참한 처지에 빠졌을 때 회개하며 말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 15:17).” 때로 내게 비참하고 수치스런 모습이 주어진 것은 오히려 축복의 토양이다. 그때 하나님께 돌아서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된다.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는 곳은 대개 문제가 있는 곳이나 실패한 곳이다. 하나님은 길이 없어 보일 때 오히려 나를 더 찾아오신다. 또한 고난 중에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할 때 나를 만나주신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은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엘리야도 죽고 싶을 때 하나님을 만났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기도제목과 어려운 현실은 우연이 아니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초대가 있다.

 사람은 한치 앞도 보지 못하기에 때로 힘든 일을 당하면 어둠 속에서 울지만 그때 믿음으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으면 그 어려운 자리는 나의 불행이 죽고 나의 행복이 새롭게 탄생하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 그때부터 잿빛 현실 세계는 점차 무지개와 같은 찬란한 은총의 세계로 변할 것이다. 늘 회개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하나님께 철저히 돌아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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