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힘이 크다 (이사야 66장 7-9절) < 한 사람의 힘이 크다 >
2008년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등록했다가 많은 기존 교인들을 포섭해서 얼마 후 우르르 나갔다. 그때 연로한 권사 중심으로 남은 성도들을 강단에서 내려다보며 속으로는 울컥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때 기도했다. “하나님! 마음은 아파도 남은 소수의 성도들과 함께 다시 교회를 일으켜 한국 최고의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교회에 젊은이가 많아야 부흥된다는 상식을 깨고 어르신들이 새로운 꿈을 품고 나갈 때도 부흥될 수 있다는 새로운 상식을 만들게 하소서.”
그 후 시련 기간을 잘 통과하면서 하나님은 <월새기> 문서선교 사역을 비롯한 여러 사역을 통해 꿈과 비전을 확대시켜주셨다. 무엇보다 복된 사실은 각 성도의 마음에 큰 꿈이 쑥쑥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도 큰일을 할 수 있다. 좋은 성도 한 명이 교회 분위기를 크게 바꾼다. 그런 ‘한 사람’이 조금씩 늘면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목회가 행복하고 동시에 찬란한 축복의 때가 더욱 가까워졌음을 느끼게 된다. 한 사람의 힘이 그토록 크다. 한 사람이 내 곁에 함께 해주면 웬만한 고난은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
필자의 <온새기(온라인새벽기도)> 회원 중에는 목회자 회원만 약 4천여 명이 있다. 그 중에 한 목회자는 필자의 사역을 소리 나지 않게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대부분 글로 감사를 표현하지만 그는 수시로 직접 전화하면서 감사를 표현했다. 그런 감사와 격려의 전화가 사역을 지속시키는 데 큰 힘이 되었다.
2008년에 교인이 우르르 떠나면서 교회가 썰렁해졌을 때 찬란한 비전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때 그가 갑자기 전화했다. 그리고 선교센터 건축과 관련된 질문을 하면서 그 비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실제적인 도움 유무와 상관없이 그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당시의 절망이 순식간에 희망으로 바뀌었다.
몇 년 전에 심히 마음 아픈 일을 겪었을 때도 그 주간에 신기하게 그가 전화해서 <성경 전권강해>의 완성 시기와 비용을 묻고 그 비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그 한 통의 전화로 인해 당시의 슬픈 마음이 갑자기 들뜬 마음으로 변했다. 2012년에 한국에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MA) 한인 총회를 개최하면서 호텔 계약금이 부족했을 때도 그가 큰 헌금을 해서 총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믿었던 사람이 필자 곁을 떠나 암담할 때는 여지없이 그가 혜성처럼 등장해 비전을 지탱하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남들이 부담을 느끼고 떠날 때 오히려 부담을 지려고 찾아와주는 좋은 친구 한 사람의 격려는 정말로 큰 힘이 된다. 그런 한 사람이 되라. 먼 곳에서 누군가가 나의 비전을 위해 기도해주고 돕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를 의지하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제가 축복 받아 누군가의 찬란한 비전을 후원하는 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 찬란한 비전을 가지라 >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큰 꿈과 비전을 가지라. 필자도 수시로 기도한다. “하나님! 저희 교회가 한국 교회를 위해 쓰임 받게 하시고 <월새기(월간새벽기도)>를 통해 영혼 구원과 변화가 이뤄지고 <월새기 영어판>을 통해 세계 선교에 큰 도움이 되게 하소서.”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실 때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행 2:17). 꿈과 비전은 성령의 언어이자 성령충만의 뚜렷한 표식이며 믿음과 축복을 선도하는 견인차다. 거룩한 선교 비전은 언젠가 반드시 실체가 될 것이다.
바다에 두 척의 돛단배가 있었다. 한 배는 동쪽으로 가고 다른 배는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같은 바다에서 같은 바람을 타는데 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었는가? 돛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꿈과 비전의 돛’을 어떤 방향으로 펼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존재의 목표가 크게 달라진다. “어떻게 살 것이냐?”보다 “어떻게 될 것이냐?”가 우선적인 것이다. ‘되는 것’보다 ‘사는 것’에 몰두하면 세상은 살벌한 전쟁터가 된다.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남의 아픔을 헤아려주는 존재가 되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나아가라.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삶을 버리고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라.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했다(빌 2:13). 꿈과 비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각 사람의 마음에 주신 소원이다. 하나님은 꿈과 비전과 믿음을 통해 일하시고 축복하시고 기도 응답도 주신다. 꿈과 비전은 축복을 담는 최상의 그릇이다.
찬란한 환상을 품고 기도하라. 자녀와 손자에 대해서도 찬란한 환상을 품고 배우자에 대해서도 멋진 환상을 품고 기도하라.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다(롬 4:17).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려면 먼저 찬란한 비전을 가지라. 무의미와 무기력과 무감각의 베일을 벗어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이 꿈꾸고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 걸으려고 하라. 하나님께서 감동 중에 찬란한 비전을 임산하게 하셨으면 해산하게도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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