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힘써 위로하라 (이사야 66장 10-14절) < 어머니 같은 성령님의 모습 >
이런 속담이 있다. “하나님은 한 번에 두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창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기에 그 속담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 “예수님은 한 번에 두 곳에 있을 수 없어 성령님을 보내셨다.” 성령님은 어디서든지 함께 하며 돌보시는 어머니와 같다.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에서 안정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모성적인 사랑도 찾는다. 하나님께는 부성적인 권위도 있지만 모성적인 사랑도 있다.
본문은 하나님의 모성적인 사랑을 잘 묘사한다. 본문 13절을 보라.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하나님은 자신을 어머니 같은 존재로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어머니처럼 내 곁에 계시고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위해 끝없이 헌신하신다. 하나님의 모성적인 사랑은 어머니 같은 성령님의 모습을 통해 완벽히 드러난다. 성령님의 어떤 모습이 어머니 같은 모습인가?
첫째, 옆에서 위로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으로 오셔서 어머니처럼 항상 우리 곁에 함께 하시며 위로자가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했다(요 14:18). 어머니가 없는 집은 사막과도 같다. 자녀가 귀가하면 집에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고 큰 위로와 사랑도 느낀다. 어머니 같은 성령님이 없다면 인생이 느끼는 고독과 고통은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느끼는 자녀의 고독과 고통보다 훨씬 크게 느껴질 것이다.
둘째, 부드럽게 인내하는 모습이다.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의 특징은 어머니처럼 사려 깊은 부드러움과 인내하심에 있다. 성령님은 받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진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강요와 윽박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다. 강요는 대개 위선을 낳는다. 어떤 아이는 엄마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엄마는 교회에서 천사와 같지만 집에서는 여우와 같으셔.” 그 아이는 엄마를 인도자가 아닌 강요자로 여긴다는 암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조차 강요하지 않고 부드럽고 감동적으로 조금씩 가르치며 인도하신다.
셋째, 고통 중에 찾아오는 모습이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위로가 가장 필요한 때는 고통의 때다. 모든 것이 잘되면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자고 찾아오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찾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고통 중에 있을 때 나를 도우러 누가 가장 먼저 달려와 용기를 주고 그 상황을 개선시키려고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는가? 어머니다. 성도에게는 자신을 돕고 위로하는 어머니 같은 성령님이 늘 곁에 계신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생각하라. “지금 성령님께서 내 옆에 계셔서 말없이 내 아픔과 슬픔에 동참하신다.”
< 서로 힘써 위로하라 >
성령님은 볼 수 없어도 삶 속에서 그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기도할 때 성령님은 내 귀에 들리게 말씀하지 않아도 진실한 믿음을 가진 마음의 귀로 성령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 위로를 받고 성령충만해지면 한 가지 뚜렷한 현상이 생긴다. 자신도 누군가의 위로자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 약하다. 강자에게도 약한 부분이 있다. 자기의 못남은 자신이 잘 안다.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위로의 샘터로 교회를 세우셨다. 위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받는 사람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준다. 말 한마디가 영혼을 살리고 작은 위로 하나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위기는 위로를 통해 극복된다. 행복을 원하면 먼저 위로하라. 세상의 동기가 아닌 하늘의 동기를 따라 움직이라. ‘믿음의 말’을 들려주는 것에서 끝나지 말고 ‘위로의 말’을 들려주는 것까지 잘하라. 더 나아가 ‘위로의 말’을 ‘위로의 손’으로도 나타내라. 아픈 자를 보고 외면하지 못해 힘써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될 때 그는 누군가에게 그 순간의 천사가 된 셈이다.
예전에 필자가 이런 메일을 받았다. “목사님! 저는 초등학교 4학년이에요. 목사님 말씀이 참 은혜가 돼요. 이제 저에겐 꿈이 생겼어요. 저도 앞으로 목사님이 될래요. 노력할게요. 더 좋은 말씀 주세요.” 그 짤막한 메일은 그날 필자에게 있었던 마음의 울적함을 사라지게 했다. 그때 그 어린 소년은 필자에게 위로의 천사였던 셈이다. 이 세상에 격려가 필요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격려는 삶에 용기와 희망을 주고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힘써 격려하는 사람이다. 주님은 마지막 유언 설교에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말씀했다. 보혜사란 ‘옆에서 위로하는 분’이란 뜻이다. 성령님은 옆에서 계속 나를 위로하신다. 서로 힘써 위로하면 위로받는 사람과 위로하는 사람에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된다. 심장이 잘 움직이면 그로 인해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건강해지듯이 성령 안에서 어머니의 심정을 가지고 서로 위로하면 자신과 자녀의 인생도 건강해지고 더 나아가 가정과 교회와 사회도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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