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이사야 66장 18-24절) <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
본문은 <이사야>의 제일 마지막 부분으로서 성도의 최후 승리 및 악인의 영원한 심판을 묘사하는 본문이다. 종말과 세계선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18-19절). 선교사역을 통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모두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고(20절) 이방인들 중 선택된 사람들이 영적인 제사장 역할도 한다(21절). 또한 선택된 백성들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영원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고 믿음을 거부한 패역한 악인들은 죽어서 영벌에 처한다(24절). 그런 공의로운 심판에 대한 약속의 말씀으로 <이사야>가 끝난다.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 말하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다. 그래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만큼 하나님의 공의도 중요하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강조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더 강조한다. 심판에 관한 말씀은 인기가 없기에 선지자의 길은 고독한 길이다. 그 길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날 때도 많다. 가는 길도 힘들고 게다가 죽음까지 맞이한다면 불행한 길일 것 같지만 그 길 선상에서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고 결국 승리한다.
위대한 선지자도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다.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하나인 엘리야조차 죽고 싶다고 했었다(왕상19:4). 살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한다. 그때 느낄 충격과 상처와 고독이 얼마나 큰가? 하나님께서 내게 그런 상황을 허락하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엄청난 상처와 고독이 엄습한 상황에서 이런 탄식이 생길 수 있다. “하나님! 저의 죄와 허물을 잘 알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견딥니까?” 중요한 것은 그때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그런 아픔과 고독을 이미 겪으셨다. 죄도 없이 지신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대속의 십자가였다. 그때 제자들은 다 도망쳤다. 하나님도 그때만은 외면하셨다. 그때 예수님은 누구보다 약해지셨다. 사람은 그렇게 약해질 때가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믿음이다. 믿음이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자기를 드리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자기를 드릴 수 있는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 심판을 기억하며 살라 >
늘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살라.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을 늘 염두에 두고 희망을 품고 열심히 땀을 흘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고수하면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신다. 사람의 판단과 심판은 부조리와 허점이 많다. 사람이 주장하는 진리는 대개 상대적이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이 말하는 진리는 얼마나 상대적인가?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는 진리인 것인 저쪽에서는 오류가 된다.”
피레네 산맥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프랑스는 큰 윤리적, 도덕적,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 위도 3도의 차이로 달라지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인간의 진리는 불완전하다. 식인종은 사람을 잡아먹고도 죄의식이 없다. 윤리기준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님은 온전한 공의와 진리를 가지고 가장 정당하게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 선다는 엄숙한 사실을 늘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라.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서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소풍을 잘 다녀왔다 갑니다.” 인생은 소풍이다. 소풍 가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뛰놀다가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오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 세상은 잠깐 다녀가는 곳이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선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을 때 좋은 일에 힘쓰고 늘 아름다운 삶을 힘써 남기라.
피라미드에는 죽은 사람을 저울에 달아보는 그림이 있다. 그처럼 하나님은 심판대에서 사람들이 한 일을 다 달아보실 것이다. 이 땅에 있을 때 지위만큼 선한 일을 했는지, 가진 것만큼 나누는 삶을 살았는지 달아보시고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은혜 받고 쓰임 받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외모보다 내면을 잘 가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존재가 되라. 지은 무한경쟁 시대다. 그런 시대에서 성도는 서로 힘써 돕고 나눔으로 나눔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자신이 한 선한 일은 결코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남이 몰라도 내가 했던 좋은 일이 그냥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사람은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보고 계시고 사람은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혼자만 잘 살기보다 같이 잘 살려고 하라. 선교와 구제를 손해나는 일로 여기지 말라. 나중에 하나님이 다 갚아주신다. 하나님은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삶이 아닌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통해 성도답게 살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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