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부요 (이사야 63장 7-14절) <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라 >
믿음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은혜를 아는 삶이다. 은혜를 아는 존재가 될 때 그때부터 자신의 성품과 특성을 그대로 사용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멋지게 쓰신다. 아브라함은 방랑적 성품을 가졌지만 은혜를 깨닫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모세는 비판적 성품을 가졌지만 은혜를 깨닫고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다. 베드로는 다혈질의 성품을 가졌지만 은혜를 깨닫고 능력 있는 사도가 되었다. 각기 성품은 달랐지만 그들 모두가 은혜를 깨닫고 은혜를 갚으려는 존재였다는 사실은 같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열 명만 모여도 사랑과 생기가 넘치게 은혜가 없는 사람은 1000명이 모여도 문제만 더 커진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기쁨과 감사와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성도가 되라. 창세기 26장 28절에 보면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보면서 고백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그처럼 세상 사람들이 은혜를 아는 성도를 보고 “과연 믿는 사람답다.”는 말이 나오게 하면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이 되는가?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욥바에 사는 선행의 여종 다비다 얘기가 나온다. 그녀는 별로 가진 재산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전 재산이었을지도 모르는 바늘과 실을 활용해 선행과 구제를 해서 욥바에는 그녀의 선행 얘기가 구석구석 퍼졌다. 왜 그런 선행을 했는가? 은혜를 받고 끝나지 않고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현재 자기 소유로 하나님과 이웃을 힘써 섬기라. 나눔의 열정이 늘 있지 않기에 ‘지금’이란 시간이 중요하다. 나눔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지금이 그 은혜를 받을만한 때다(고후 6:2). 곧 일할 수 없는 때가 온다. 나눔의 열정이 곧 사라질 수 있기에 지금 나누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누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잘못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나중까지 나눔의 원리를 실천하며 살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일인가?
날과 시간이 늘 보장된 것은 아니다. 건강을 잃는 순간이 올 수 있고 물질적인 흑암기가 올 수도 있다. 그때 새로운 각오를 하며 “하나님!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세요. 이제 베풀며 살겠습니다.”라고 하지 말고 지금부터 베풀며 살라. 형편이 어려워도 나누려고 하라. 여유가 있을 때 나누는 것도 좋지만 여유가 없어도 나눔을 실천한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왜 전도하는가? 그것도 은혜를 나누는 삶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 참된 부요 >
이사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자비와 사랑과 은총을 말하겠다고 했다(7절).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질문을 통해 역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8-11절). 또한 출애굽 때의 사건을 묘사하며 구원의 하나님에 대해 언급했다(12-14절). 그런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여전이 있다. 그 은혜를 입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 은혜를 잊지 않는 자세다. 은혜를 잊지 않을 때 은혜가 더해진다.
사도 바울은 인간적인 장점이 많았다. 로마 시민권자였고 가말리엘 문하로서 당시 최고 학벌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은혜를 잊지 않는 태도였다. 가장 복된 마음은 은혜를 아는 마음이다. 돈의 풍성함을 구하기 전에 마음의 풍성함을 구하라. 성도라고 해서 돈을 외면할 필요는 없지만 사실상 돈으로 사지 못하는 것도 많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은 못 사고 음식은 살 수 있어도 식욕은 못 사고 집은 살 수 있어도 가정은 못 산다. 또한 돈으로 약은 살 수 있어도 건강은 못 사고 사치품은 살 수 있어도 행복은 못 산다.
참된 부요는 돈 이상의 것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믿음의 조상들도 다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부족함이 없었다. 참된 부요란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마음이 은혜로 넘치면 가난해도 부유한 것이고 마음에 은혜가 없으면 부자라도 가난한 것이다. 참된 부자가 되려면 먼저 은혜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
사람들은 물질적인 축복을 제일로 생각하지만 성도의 축복은 물질적인 축복 이상의 것이다. 즉 구원, 영생, 보호, 응답, 보상, 보전, 승리, 지혜, 건강, 능력 등이 성도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그런 축복은 돈으로 사지 못한다. 참된 부요는 “얼마나 많이 움켜쥐었느냐?”에 달려있지 않고 “얼마나 많이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그 은혜를 이웃과 나누느냐?”에 달려 있다. 은혜를 많이 받고 많이 깨닫고 많이 감사할 때 더욱 큰 은혜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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