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새로워지는 길 (이사야 52장 7-12절) < 교회가 새로워지는 길 >
요새 경제적인 문제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어떤 투기꾼은 자기 돈 하나도 없이, 은행 대출만 가지고 아파트를 샀다 팔았다 해서 수십억 원을 챙겼다. 반면에 수많은 사람들은 먹는 문제로 힘들어한다. 가정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가 되었고 자살률이 세계 최고가 되었다. 정치도 혼란하다. 지금 사회상을 보면 점점 상식이 안 통하는 사회가 되는 것 같다. 상식 이하의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
때로는 교회에서도 상식 이하의 일이 생긴다. 가끔 영성과 기적을 내세우며 상식 이하의 모습을 보이는 교인을 본다. 믿음은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싼값에 산 그린벨트에 불법 건축물을 지어놓고 건축할 수 있는 대지로 만들어 달라고 <40일 특별기도회>를 하는 것은 결코 복된 모습이 아니다. 그런 억지 기도가 너무 많다. 교회도 새로워져야 한다. 교회가 새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좋은 소식을 전해주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발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다(7절). 왜 어떤 사람은 그 발을 추하게 보는가? 참된 믿음의 원리를 오해해서 지성을 무시하고 불화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상식과 지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지식이나 이성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요구하지만 그 요구가 지성을 무시하라는 요구는 아니다. 기독교가 지성이나 과학보다 믿음을 중시하는 것은 무식해져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이성으로 추구할 것은 추구하되 그 위에 믿음과 은혜를 더하라는 말이다.
과학과 믿음은 반목관계가 아니다. 과학은 사실의 지식적인 설명 면에서 종교보다 낫고 믿음은 사실의 지혜로운 수용 면에서 과학보다 낫다. 참된 믿음은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과학적인 지식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참된 과학자는 믿음의 실체를 무시하지 않는다. 과학의 문턱에 들어가면 과학 때문에 신앙을 버리지만 과학에 깊이 들어가면 과학 때문에 신앙을 찾는다. 천문학자치고 무신론자는 없다고 한다. 우주의 놀랍고 오묘하고 완벽한 질서를 보면서 절대자에 대한 신앙심이 생기는 것이다.
2.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
‘좋은 소식’의 실체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이다(7절). 언제 밝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될 때다. 언제 마음의 평화와 새로워지려는 의지가 생기는가? 역시 하나님의 통치가 마음에서 시작될 때다. 욕망이 마음을 통치하면 평화가 깨지지만 하나님이 마음을 통치하면 평화가 생긴다. 성도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통치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겉과 속이 달라 보이고 앞과 뒤가 달라 보인다.
누군가를 알려면 그의 뒷모습을 보면 된다. 갈 때 사랑과 평화와 온기를 남기고 가면 성공한 것이지만 앞모습은 좋은데 가고 난 뒤에 악취만을 남기면 실패한 것이다. 왜 그런 실패가 생기는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 과거의 원한과 상처를 잊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는가?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과거의 상처와 원한을 잘 잊는 거룩한 건망증을 가지는 것이다.
3. 잘못된 삶을 떠나라
본문 11절에서 선지자는 “너희는 떠나라. 떠나라.”고 했다. 절망과 불신과 미움의 땅에서 희망과 신뢰와 용서의 땅으로 떠나라. 희망의 땅으로 떠나면 때로는 두렵지만 그때 하나님은 앞에서 행하시고 뒤에서 호위해 주실 것이다(12절). 과거의 잘못된 습관과 잘못된 자리를 떠나는 것도 두렵고 힘든 일이지만 떠나면 하나님이 새로운 은총을 주신다. 성공도 안주함으로 끝나면 참된 성공으로 평가되지 못한다. 성공 후에도 더 나은 성공과 성숙을 위해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날 줄 알아야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동행해주신다.
더 좋은 변화와 새로운 창조는 대개 배고프고 절박할 때 이뤄진다. 배에 기름이 낀 상태로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 믿음이란 추상적인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모험이다. 예수님을 붙잡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편안한 현실을 떠날 줄 아는 것이 믿음이다. 잘못된 습성에 빠져 있거나 잘못된 자리에 있다면 더욱 과감히 그런 습성과 자리를 떠나라.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보다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가 우선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라면 십자가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을 때 그를 통해 하나님의 멋진 스토리가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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