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이사야 51장 15-16절) <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
본문에서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말씀이. 또한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끝까지 돌보고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이. 때로 하나님은 어떤 선한 목적 때문에 성도를 징계하실 때도 있지만 죽도록 징계하지는 않는. 밤이 아무리 깊어도 깊은 밤은 오히려 새벽의 여명과 맞닿아 있다. 믿음을 가지고 조금 더 기다리라. 그러면 고통의 밤이 지나 찬란한 은총의 새 아침이 열린다.
시편 37편 7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편 기자는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고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고 말씀했.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져도 힘들게 생각하지 말고 그때 입술을 잘 지켜서 불평 대신에 감사가 나오게 하라.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때가 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게 하시지만 너무 늦는 법도 없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시련을 당한다고 더 이상 보지 않으면 주인공이 최후에 승리하는 장면을 놓친다. 인생 드라마도 너무 속단하면 승리를 놓친다. 조금 더 기다리고 불신자들이 형통한 것에 대해 너무 상처 받지 말라.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 성급함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
악인이 외형과 숫자 면에서 형통하는 모습이 보여도 주님의 공의에 의문을 품지 말라. 악인이 성공하고 의인이 실패해도 그것은 최후의 결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공한 악인에게 있지 않고 오히려 실패한 의인에게 있다. 하나님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역사와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기다리라. 그리고 그런 선한 결말이 주어질 때를 기다리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축복의 때가 온다.
<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
자녀교육의 승리의 요체가 무엇인가? 기다림이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주면 어느 순간에 자녀가 정신을 차리고 공부도 하고 재능도 발휘하면서 멋지게 사명을 따라 산다. 부부관계의 행복의 요체도 역시 기다림이다. 배우자의 성공 문제로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 성공이 늦으면 어떤가? 배우자가 아직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넉넉한 모습으로 기다려주라. 그렇게 기쁘게 기다려주는 모습을 보면 배우자가 큰 힘이 난다. 그때 배우자가 일어설 힘과 변화를 추구할 용기를 얻는다.
목회 축복의 요체도 결국 기다림이다. 교인들이 전도를 못한다고 화를 내고 닦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나 양떼의 행복보다는 자기 성공에 집착하는 태도다. 물론 그렇게 달달 볶아서 교회가 커질 수는 있지만 그런 모습으로 한국 사회에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서 장기적으로는 더 전도를 막게 된다. 그러나 조금만 기다려주면 부족해 보이는 성도도 때가 되면 누구보다 멋지고 영향력 있는 전도자가 된다.
자기 행복의 요체도 역시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지속되면 가끔 평안이 흔들리지만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며 자신의 고통과 좌절과 고독과 아픔과 상처를 다 토로하라. 그와 더불어 무엇인가 자신에게도 성찰할 것이 있으면 성찰하라. “왜 하나님은 이 고통을 허용하셨을까? 무엇을 반성하고 어떻게 새로워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나눔의 삶을 지혜롭게 실천하며 살까?”
삶의 고통이 때로는 자신의 무감각과 게으름과 방종과 사명의 외면과 교회 사랑의 부족 때문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채찍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는 기도 중에 새로운 다짐을 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나가면 된다. 그처럼 고통 중에 자기 성찰의 기도를 드리면서 고통이 주는 의미와 메시지를 발견하면 고통을 통해 오히려 큰 거목이 될 수 있고 결국 새 날이 올 때 새 날의 주인공이 된다.
고통을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로 삼고 그때 더욱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라. 베드로가 바람과 물결을 바라볼 때는 더 깊이 물속으로 빠졌지만 예수님을 바라보자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처럼 고통에 집중하고 고통 속에 빠지면 그 고통이 더 크게 보이고 느껴지면서 “이제 끝장났다.” 하고 절망하지만 고통 중에도 예수님이 크게 보이면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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