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누가복음 7장 1-10절) 1. 헌신적인 믿음
가버나움에 사는 한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2절). 그때 백부장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 장로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주시기를 청했다(3절). 그 모습은 그의 겸손한 인격을 잘 말해준다. 그는 존경할 인물이라면 피지배민에게도 고개를 숙일 줄 알았다. 겸손하고 인격적인 사람에게 믿음이 생기면 복된 인물의 가능성도 커진다. 인격적인 믿음과 인본적인 믿음은 다르다. 성도는 인격적인 믿음을 보임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손상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백부장이 보낸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했다. “예수님! 백부장의 종을 구해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회당을 지었습니다(4-5절).” 백부장의 소원은 소원 자체가 이기적인 소원이 아닌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소원이었다. 게다가 유대인을 위해 회당까지 지어준 것을 보면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회당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요즘 말로는 “교회 건축에 헌신했다.”는 뜻이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면 교회에도 유익이 되지만 자신에게 더 유익이 된다.
예전에 한 교회가 오지 선교지에 교회를 지어주는 운동을 펼칠 때 한 사업가가 자신도 교회 하나를 지어주고 싶었지만 사업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굳게 결심하고 선교지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을 바쳤다. 그 헌금으로 오지의 나무 밑에서 예배드리던 원주민들이 작은 교회를 건축하고 감사하며 그 사업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가 응답되어 그 사업가의 막혔던 길이 신기하게 풀렸고 다시 사업이 번창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힘써 헌신할 때 복을 내려주신다. 우리는 작은 교회지만 선교와 구제에 많이 힘쓰는 편이다. 특히 <월새기(월간새벽기도) 문서선교 사역을 통해 크게 헌신하고 있다. 최근에 재정적인 압박이 심해지면서 극도의 내핍생활을 하는 중에도 <월새기> 사역을 포기하지 말고 이 어려움을 잘 견뎌내자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제까지 사역하면서 지금과 같은 위기의 순간이 종종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극적인 은혜의 손길로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지내올 수 있었다.
왜 그런 은혜가 있게 되었는가? 도움 받은 누군가가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하나님! 우리에게 큰 힘과 지침과 도움이 되어준 <월새기> 사역을 축복하소서.” 말씀 준비에 도움을 받은 목회자들도 간절히 기도해주었을 것이다. 그런 순수한 사랑의 기도가 얼마나 능력 있는 기도가 되겠는가? 순수한 사랑의 기도는 고난을 크게 줄여주고 은혜를 크게 늘려준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사랑할 때 놀라운 축복의 열매를 허락하신다. 완벽한 교회는 없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교회의 부족함을 소리 없이 채우려고 할 때 은혜도 넘치게 된다.
2. 배려적인 믿음
유대 장로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이 백부장의 집으로 가는데 집에 가까워질 무렵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 말했다. “주님! 수고하지 마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6절).” 경건한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큰 부담임을 알고 예수님을 배려해서 그랬을 것이다. 또한 큰일을 위해 바쁜 예수님을 자기 집까지 오도록 수고시키는 것이 너무 죄송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 배려하는 마음을 읽고 예수님도 백부장에 대해 마음이 활짝 열렸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유는 당연한 것이다.
암에 걸린 한 집사가 있었다. 수술 전날 평안을 주려고 목회자가 그녀와 즐겁게 대화한 후 통화를 마치기 전에 말했다. “집사님! 내일 아침 병원에서 봬요.” 그녀기 말했다. “목사님! 목사님의 귀한 시간을 다른 데 쓰세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바쁜데 병원에 오시지 말고 기도만 해주세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얼마나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마음인가? 사람은 작은 행동 하나와 적은 말 몇 마디로도 하나님과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목회자는 그녀에게 수술 날에 함께 있어 줄 가족도 없는데 목회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한 것을 알고 다음 날 아침에 병원에 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는 그녀를 환한 얼굴로 배웅했다. 그리고 깊은 감동 가운데 기도했다. “하나님! 수술할 때 아무도 와주지 않는 외로운 처지인데도 목회자를 배려해서 와서 기도해달라고 하지 않고 그냥 기도만 해달라고 합니다. 또한 목회에 바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하지 말고 자신이 빨리 회복해서 교회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그 마음을 보셨지요?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그분에게 최상의 길을 열어주세요.”
목사와 집사 사이에 오간 서로를 배려하는 믿음을 통해 최상의 수술 결과가 나타났다. 또한 “바쁜 목회자가 어려운 발걸음을 하게 하기보다 내가 빨리 교회에 나가 예배에 참석해야지.”라고 한 마음의 소원대로 회복도 빨랐다. 그래서 큰 수술을 하고도 그 주간 주일에도 교회에 나와 성가대 봉사를 하게 하셨다. 목회자는 성가대에 선 그녀의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하나님도 얼마나 감동했겠는가? 그 감동이 강력하고 지속적인 은혜를 선도한다.
어떤 사람은 죽을병을 나으면 간증한다면서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셨어요.”라고 가는 곳마다 마치 선민이 된 듯이 자랑처럼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 말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간증인지 자기 믿음이 대단한 것을 나타내는 자랑인지 헷갈린다. 그렇게 섣불리 나았다고 선포했다가 병이 재발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치유 간증은 믿음과 영성 자랑으로 들릴 수도 있기에 치유를 체험한 사람은 깊이 기도해보고 선한 목적이 분명할 때만 치유 간증을 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겸손히 나타내는 것이 좋다.
그 원리대로 암에서 회복된 그녀는 “하나님이 저를 치유해주셨어요.”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그 모습이 하나님은 물론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런 사람에게는 병의 재발도 적고 치유의 은혜도 오래 지속될 때가 많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백부장은 “예수님! 번거로운데 제 집에까지 오실 필요가 없어요.”라는 배려적인 믿음으로 예수님을 크게 감동시켰기에 신유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내가 작아지고 힘들어지고 외로워지더라도 남을 힘써 배려하는 배려적인 믿음을 기뻐하신다.
3. 순종적인 믿음
백부장은 배려적인 믿음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가 말했다. “주님! 내가 주님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습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6-8절).”
백부장은 예수님이 자기 종을 붙잡고 기도해주거나 안수해야지 낫는 것이 아니라 말씀만 하면 나을 줄을 믿었다. 그는 제자훈련도 안 했는데 말씀 중심적이고 순종적인 믿음을 가졌다. 이 장면을 통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또한 사람의 천성도 매우 중요함을 깨닫는다. 백부장은 종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야 한다고도 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친히 종을 만져야 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대부분 말씀만으로 기적을 일으키셨다. 백부장도 예수님이 말씀만 하면 종이 치유된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자기 경험을 살려 말씀의 능력과 관련된 비유를 들었다. 즉 자신도 자신의 상관이 말한 대로 순종하고 자기 부하 병사도 자기가 말한 대로 순종하니까 번거롭게 하지 말고 말씀만 해주면 역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백부장의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이 놀랍게 여겨 돌이키면서 따르는 무리에게 말씀했다.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9절).”
이방인에게 있는 놀라운 믿음을 보면서 예수님은 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기쁨은 곧 응답으로 귀결된다. 결국 예수님의 능력이 즉시 임해서 백부장이 보내었던 벗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니까 종이 이미 나아 있었다(10절). 순종적인 믿음을 통해 즉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말씀만 하소서!”라고 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전적으로 인정하면 하나님도 감동하시고 기도 응답도 신속히 내려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힘을 너무 믿지 말라. 무기와 군인이 많아야 나라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강하게 나오면 상대도 강하게 나오면서 전쟁 위기가 계속된다. 반면에 조용히 힘을 기르면서도 온유하게 나오면 상대도 온유해진다. 통치자가 전쟁 분위기를 만들며 통치하면 나라가 일사불란하게 잘될 것 같아도 오히려 싸울 일이 더 생긴다. 반면에 조용히 힘을 기르며 부드럽게 통치하면 싸울 일이 줄어든다.
병을 잘 고치고 귀신을 잘 쫓아낸다고 소문난 교회에 병자나 귀신들린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다. 어떤 목회자는 열심히 심방 다니며 위로한다고 하는데 교인들의 상처는 더 잦은 것 같다. 왜 문제를 없애려다가 더 생기는가? 인간적인 수고와 열심이 너무 앞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믿음 없는 행동을 하고 기도한다면서 참된 평안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라 >
별로 일하지 않는 듯이 조용히 나라를 잘 다스리는 철학을 성군의 정치 철학이라고 한다. 대궐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매년 풍년이 들고 경찰서를 늘리지 않는데 도둑이 줄고 수시로 개헌하지 않는데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길이 성군의 길이다. 반면에 열심히 윽박지르며 점검하고 시찰하는데 사고는 더 많이 생기고 세상은 더 살벌해질 때가 많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 사람의 힘이 나라를 강하게 만들거나 평화를 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고 성을 지켜주셔야 한다.
모세의 120년 일생은 3기로 구분된다. 1기는 애굽 왕궁 40년의 ‘과신의 시기’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당돌하고 교만하고 자기 실력을 믿었다. 그래서 2기인 미디안 광야 40년의 ‘좌절의 시기’로 들어섰다. 청년은 몇 번 좌절을 겪으면서 성숙해진다. 처녀도 23세쯤 되면 세상을 다 얻을 것처럼 야무진 꿈을 품는다. 그러다가 결혼하면서부터 꿈이 깨지기 시작한다. 시장가서 1000원을 깎고 기저귀 빠느라고 정신없어지는 우울한 현실에 처한다.
모세도 한때 자신을 과신했지만 광야에서 좌절 가운데 살아야 했다. 그 기간을 잘 극복해야 3기인 ‘헌신의 시기’가 온다. 모세가 광야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히 깨닫자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셨다. 모세가 “내가 제일이다. 다 할 수 있다.”라고 할 때는 하나님은 냉정하게 침묵하셨지만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못합니다.”라고 자기 부정을 하자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그때부터 새 삶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기고만장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 때는 하나님과 교회를 외면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철저히 자신이 부서지는 광야의 경험을 한다. 그 실패의 자리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면서 그때부터 새로운 희망이 시작된다. 늘 하나님 중심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려고 하라. 행복은 인간의 노력과 수고로 얻기보다 하나님이 주셔야 얻는다. 잘 믿어야 인생과 가정도 잘된다.
역대상 13장을 보면 법궤가 다윗 성으로 운반될 때 3개월간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오벧에돔의 집과 모든 소유에 복이 내렸다. 법궤가 3개월만 있었어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 집에 많은 자녀들이 생겼고 큰 용사도 나왔다(대상 26:4-6).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에 참된 복이 넘치게 된다. 왜 기도하는가? 달라는 것 이전에 하나님의 통치를 잘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예전에 컴퓨터 게임에 빠진 중학교 1학년 형이 잠자는 초등학교 4학년 동생을 보고 순간적인 살인충동을 느껴 도끼로 살해했다. 형은 초등학교 때 효행상과 개근상을 받은 모범생이었고 살인 전에도 동생을 위해 라면을 끓여주었었다. 그러다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혼동해 자기도 모르게 엄청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소년원에서 그가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 악이 센 줄 알았는데 선이 센 줄을 이제 알았어요.” 그때 부모는 믿음 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이 믿음과 말씀 교육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성공하고 성취해도 불안이 커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께서 잠과 평안도 주시고 후반전이 좋은 인생이 되고 마지막은 더 좋은 인생이 된다. 하나님을 제쳐놓고 돈을 추구하지 말라.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돈으로 침대는 사도 잠은 못 사고, 책은 사도 지혜는 못 사고, 음식은 사도 건강은 못 산다. 오직 하나님 안에 단잠과 지혜와 건강이 있다. 자녀 교육을 잘하고 돈을 많이 벌려고 이민 가는 것도 해결책은 아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이민 가는 것이다.
한 미국 이민자는 5년간 아내와 함께 하루에 14시간씩 주말도 없이 일해서 돈을 꽤 벌었지만 가정이 엉망이 되었다. 고등학생 딸은 가출했고 초등학생 아들도 탈선했다. 남편도 불면증과 관절염에 시달리면서 점차 번 돈을 까먹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갔으나 교육도 망치고 건강도 망치고 병까지 얻었다. 돈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늘 하나님 중심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면서 내일의 축복과 행복을 예비하며 살라.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이사야 54장 4-7절) (0) | 2022.12.31 |
---|---|
축복은 마음에 달려있다 (이사야 54장 1-3절) (0) | 2022.12.31 |
교회가 새로워지는 길 (이사야 52장 7-12절) (0) | 2022.12.31 |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이사야 51장 15-16절) (0) | 2022.12.31 |
존귀하게 되는 길 (이사야 52장 13-15절) (0) | 2022.12.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