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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길 (이사야 56장 1-7절)

by 【고동엽】 2022. 12. 31.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길 (이사야 56장 1-7절) 1. 정의를 지키라

 본문 1절을 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람이 정의를 지키고 의를 행할 때 나타난다. 그러나 사람은 정의를 지키고 의를 행할 수 있는 온전한 능력이 없다. 다 죄인이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롬 3:10). 하나님만이 정의로운 분이고 정의를 지키시는 분이다.

 요새 많은 사람들은 정의를 외치지만 정의가 없고 진실을 외치지만 진실이 없고 사랑을 외치지만 사랑이 없다. 의롭게 되려면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고 예수님 중심적으로 살라. 또한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예수님의 마음과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이 자신에게 나타나게 하라. 예수님의 사랑도 넘치게 나타나게 하라. 예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람을 만들고 예수님의 사람이 또 다른 예수님의 사람을 낳는다.

 어거스틴의 회심에는 스승 암브로시우스의 역할이 컸다. 특히 스승의 학식보다 스승의 의로운 삶이 그를 회개에 이르게 했다. 지식을 나눠주기 전에 의로운 삶을 나눠주라. 이웃과 힘써 교감하고 늘 평화를 추구하면서 예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라. 의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갈등과 외면도 감수하라. 이름 없이 헌신하되 이름 없이 편안히 살려고 하지는 말라. 주류에 속하지는 못해도 예수님의 의를 주도하는 주체적인 인생은 되라.

2. 안식일을 지키라

 본문 2절을 보라.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안식일을 지키는 삶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여러 조목을 만들어 그 조목대로 철저히 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지킬 수 없는 삶을 고수하면 율법주의가 된다. 율법주의는 법을 내세워 자신의 영성과 세력을 과시하려는 사람이 애용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이 핵심 개념은 하나님 우선순위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신약시대의 개념으로는 주일성수다. 주일을 힘써 지키면 하나님께서 나머지 6일의 삶도 풍성한 축복으로 채워주신다. 성도에게 있어야 하는 실천적인 삶의 덕목 중에서 핵심적인 덕목 2가지가 십일조와 주일성수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물질의 주인으로 믿는 핵심 표식이고 주일성수는 하나님을 시간의 주인으로 믿는 핵심 표식이다.

 주일에 믿음으로 가게를 닫고 예배함으로 축복받았다는 간증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주일성수를 당연하게 여기면 주일성수로 인해 축복을 더 받았다는 인식도 없다. 삶의 목표가 예수님인 사람에게 주일성수는 당연한 것이다. 주일성수를 해서 축복을 더 받았기에 기뻐하기보다 주일성수 때문에 손해를 보고도 기뻐하는 것이 진짜다. 참된 믿음은 축복에 대한 계산이 없는 것이다. 사랑도 이익과 손해에 대한 계산이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낭비를 각오하는 것이다. 낭비적인 사랑을 각오할 때 주님이 그 마음에 찾아오신다.

3. 선교에 힘쓰라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3절). 또한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만 위한 곳이 아니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7절 말씀도 선교와 구제를 통한 폭넓은 사랑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교회가 육체적인 이방인과 영적인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며 선교와 구제에 힘쓸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교회가 되고 그 교회에 울려 퍼지는 기도가 하나님의 심금을 울리는 기도가 된다.

 왜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만큼 훌륭한 인물로 여겨지는가?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의 메시야를 기다렸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다. 예수님을 믿으면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고 점차 사회도 변화된다.

 어떤 사람은 사회제도를 바꾸고 구조악을 개선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낙관한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죄악에 눈을 뜨지 못한 유치한 견해다. 한 개인이 정말로 달라지지 않으면 공동체나 역사는 달라지기 힘들다. 이방인 선교의 핵심 메시지는 결국 용서다. 복된 삶을 원하면 용서에 나서라. 참된 용서는 인간의 결심이나 결단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문제를 온전히 해결해주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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