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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을 내라 (이사야 51장 12절)

by 【고동엽】 2022. 12. 31.

기운을 내라 (이사야 51장 12절) <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

 사람이 가까웠던 사람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더욱 큰 뜻을 위해 그런 아픔도 감수해야 한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어부 안드레는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 어느 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저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라고 하자 안드레는 과감히 세례 요한을 떠나 예수님께 갔다. 그래도 세례 요한은 배반감을 느끼지 않았다. 늘 예수님을 위해 누군가를 떠나보낼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잘 따르려면 때로는 친밀했었던 인간관계도 기쁘게 버리고 더 복되고 찬란한 길을 위해 좁은 문을 선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안드레는 수많은 군중을 몰고 다니며 당시의 메시야로 착각될 정도의 파워를 가진 세례 요한을 떠나 아직 제자가 한 명도 없을 때 예수님을 따라나섬으로 예수님의 최초의 제자가 되는 좁은 길을 선택했다. 자기 존재를 건 엄청난 모험은 결국 지상 최대의 축복으로 귀결되었다.

 안드레처럼 많은 군중에서 탈피해 마가다락방에 모였던 120문도의 이너 서클 안으로 들어서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전도자로 선택된 70명 수준의 헌신 서클로 들어서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된 12명 수준의 제자 서클로 들어서라. 그처럼 군중으로 지내는 삶을 떠나 소수의 제자의 길을 걷는 영적인 모험을 감행함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계획하신 최상의 복된 운명을 향해 담대하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으라.

 어디론가 사명을 길을 향해 떠나야 한다면 최대한 축복 받고 떠나라. 세례 요한은 안드레가 자신을 떠나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배반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크게 축복해 주었을 것이다. 만약 많은 사람이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제자가 하나도 없는 무명의 목사에게 성도를 떠나보내면서 좁은 길을 선택한 그들의 삶을 대견하게 보고 “집사님! 하나님이 그 길을 축복하실 것입니다.”라고 축복해주며 보내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모습이고 교인들에게 감동적이고 신선한 충격을 주겠는가?

 사명을 위해 떠난 안드레도 훌륭하지만 사명을 위해 떠나보낸 세례 요한은 더욱 훌륭하다. 세례 요한처럼 잘 떠나보내면서 기쁨을 만끽할 줄 아는 목회자가 많아질 때 교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점차 걷힐 것이다. 교회는 적절하게 뒷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뒷문이 막히면 일시적으로는 커지지만 동시에 질병도 커진다. 이단 교주는 하나같이 뒷문을 걸어 잠그고 신도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는 세례 요한의 위치에 설 줄 모르고 메시야의 위치에 선 것처럼 행세하며 신도를 하나의 도구로 여길 뿐이다.

< 기운을 내라 >

 ‘끌어 모을 생각’만 하고 ‘떠나보낼 생각’을 안 하면 불신자들이 비난하는 교회의 타락한 모습들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끌어 모으기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망하는 길이고 끌어 모으기만 하는 리더를 따르는 것은 큰 불행이다. 선한 리더는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제자를 개척자의 길로 잘 떠나보낼 줄 아는 리더다. 사람의 위로를 너무 바라지도 말고 사람을 너무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운을 내라. 가진 것이 없으면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된다.

 하나님 안에서는 적은 것이 많은 것이고 작은 것이 큰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는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문제가 무엇인가? 화려한 달란트만 달란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드레에게는 베드로나 요한처럼 특별한 달란트가 없었지만 남을 세워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인 베드로를 전도할 수 있었다. 또한 안드레는 어린이도 무시하지 않았기에 오병이어의 기적도 있을 수 있었다. 무엇이든 안드레의 손을 거치면 작은 것이 큰 것이 되었다.

 요한복음 12장 22절을 보면 헬라인 몇 명이 빌립을 만나 예수님을 뵙고자 청할 때 빌립이 그 문제를 가지고 제일 먼저 상의한 사람도 안드레였다. 안드레는 제자들의 상담역을 했던 따뜻한 존재였다. 화려한 달란트는 없었지만 그는 음지에서 남을 섬겨주는 음지의 고수였다. 지금처럼 각박한 때에 그런 음지의 고수가 얼마나 필요한가? <월새기> 사역이 매달 큰 마이너스 중에도 지금처럼 기적적으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필요한 때마다 어디선가 소리 없이 갑자기 등장하는 음지의 손길 때문이다.

 자신에게 달란트가 없다고 탄식하지 말라. 자신에게도 자신의 복된 운명을 위한 최적의 달란트가 있다. 다만 그 달란트가 대중적인 화려한 달란트가 아닐 뿐이다. 그 소박한 달란트도 하나님 안에서 잘 사용되면 큰 역사를 이루는 원천이 된다. 현재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가치 없게 생각하지 말라. 그것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작품 인생을 만들 수 있다. 기운을 내라. 그리고 축복된 세계를 향해 멋지게 전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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