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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랑을 위한 규례 (신명기 24장 6-13절) >

by 【고동엽】 2022. 12. 31.

이웃 사랑을 위한 규례 (신명기 24장 6-13절) >1. 기본 생존권을 보장하십시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맷돌이나 그 위짝을 전당 잡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당 잡음이니라.”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드는 도구로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 꼭 필요한 물품인 맷돌을 전당 잡는 것은 기본 생존권을 찬탈하는 행위입니다. 결국 맷돌의 전부나 일부를 전당 잡지 말라는 계명은 약자나 빚진 자의 기본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는 약자를 영접하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약자의 모습으로 조용히 찾아오실 때도 많습니다. ‘우리 안’의 사람에게도 마음 문을 열면서 ‘우리 밖’의 사람에게도 마음 문을 여십시오. ‘우리 밖’에 있는 사람을 ‘우리 안’으로 이끌려는 모습은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신 삶의 열매입니다. 힘없는 자를 잡아줄 때 힘을 얻고 힘 있는 자를 잡을 때 힘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된 삶을 원하면 힘없는 사람을 힘써 살펴주십시오.

 남을 감싸 안을 때 지혜롭고 적절하게 감싸 안아야 영혼이 짓눌리거나 으깨어지지 않습니다. 적절한 거리를 두며 마음으로 함께 해줄 때 따뜻함과 안정감과 편안함이 넘치면서 어둔 세상에서 빛으로 나아갈 힘과 기운도 얻습니다. 약자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진심으로 살펴주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위치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가까워야 합니다. 몸과 몸이 너무 붙어있으면 편안함보다 불편함이 커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여백을 두고 그 여백에 약자를 기쁘게 맞이해 들이는 것입니다.

2. 형제를 도구화하지 마십시오

 자기 동족인 형제를 유인해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여 공동체의 악을 제거하라고 했습니다(7절). 그런 유인 행위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고귀한 사람의 생명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삼는 파렴치한 살인행위처럼 여겼습니다. 이단 교주가 거짓 사설로 사람을 꾀어 노예처럼 삼는 것도 사실상 살인 행위와 같습니다. 그런 행위를 종교의 자유란 미명 하에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이단 교주가 거짓으로 가정과 영혼을 파탄시키고 물질을 빼앗는 증거가 명백하면 법으로 강력히 제재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남을 도구화하려고 하지 말고 거룩한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도구화하십시오. 세상 욕망의 주머니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구덩이입니다. 하나의 욕망이 채워지면 어느새 다른 욕망이 더욱 큰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욕망대로 살면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끼고 참된 행복도 얻지 못합니다. 남을 도구화하지 않고 나를 도구화하면서 남을 섬겨줄 때 내면이 채워지는 느낌도 생기고 행복도 얻습니다.

 시편 127편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잠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라는 뜻입니다. 잠이 나쁘게 활용되면 게으름의 표시가 되지만 좋게 활용되면 사람의 도구화를 거부한 표시가 됩니다. 적절한 잠은 얼굴 피부도 탄력 있게 만들지만 내면의 정신도 탄력 있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일하고 즐거운 여가도 누리고 깊은 잠도 취하면서 사람의 도구화를 거부할 때 영혼은 깊은 평안과 안식과 행복을 얻습니다.  

3. 은혜와 축복을 나눠주십시오

 채권자가 받은 전당물이 가난한 자의 겉옷이면 그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전당물을 돌려받은 가난한 채무자들은 규례대로 사는 채권자들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친절에 보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사회가 야만적인 사회가 되지 않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런 이웃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 공의로운 행동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사랑과 공의는 반대되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것입니다. 이 규례는 은혜와 축복을 나눠주는 삶을 도전합니다.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계속 만나도 또 만나고 싶고 잠자리에서 생각만 해도 흐뭇한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외모가 멋진 사람보다는 늘 겸손한 심령과 언행으로 주변인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나눠주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낮은 자와 함께 하는 삶은 아름다운 영상을 남기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줍니다. 아름다운 예술이 오래 기억되듯이 약자를 향한 삶과 사랑도 오래 기억됩니다.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은 그에게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남에게 향수를 뿌리면 자기에게도 몇 방울의 향수는 묻습니다. 남과 나누면 헐벗어지기보다는 내 영혼이 더욱 풍성해집니다. 삶도 신나는 것이지만 남을 위한 삶은 더욱 신나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남을 위해 일한 이력이 적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나 없는 너도 존재할 수 없고 너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평화의 사자가 되고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힘쓰면서 인생을 기억될만한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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