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 (신명기 23장 1-8절) >1. 성적 기관이 상한 자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고환과 음경은 남녀를 구별하는 성적 기관입니다. 그것이 거세되거나 상했다면 더 이상 남자라고 할 수 없기에 남자만 들어오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규례는 천부적인 남녀의 성 정체성을 함부로 바꾸면 안 되고 더 나아가 동성애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또한 성적 순결의 중요성, 특히 부부간의 성적인 윤리를 잘 지킴으로 가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교훈도 줍니다. 가족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중요한 일을 외면하면서 바쁘다는 것은 무책임한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가족을 위해 내는 시간을 침해당하지 않게 하고 배우자에 대한 성적 책임도 힘써 이행하십시오. 서로의 감정과 생각과 소원을 존중하며 가정의 책임적인 존재가 되고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가정을 잘 지킬 때 큰 공동체의 책임 있는 일원이나 대표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사생자
사생자란 원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을 뜻하는데 본문에서는 ‘음행을 통해 태어난 자’ 혹은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자’를 뜻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결혼을 통해 태어난 자를 다 사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생자를 10대에 이르기까지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은 음행을 큰 범죄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음행으로부터 평생 자신을 지키기가 쉽지 않기에 누구도 그 문제에서 자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힘써 그 문제에서 자신을 지킴으로 가정과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음행의 범위를 확대시켜서 마음에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음욕만 품어도 이혼하라는 말이 아니라 참된 사랑 가운데 결혼을 지속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도 없고 마음이 완전히 갈라진 상태에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혹은 사회적인 전통 때문에, 혹은 자녀 문제가 걸림이 되기 때문에 한 몸 상태로 지내면서 성적인 행위를 하는 것도 크게 보면 간음이 될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의 기초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사랑입니다.
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두 딸과 관계해서 낳은 두 아들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과 혈통적으로 가깝기에 화친의 대상으로 삼게 했지만(신 2:9,19) 여호와의 총회에는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3절).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떡과 물로 영접하지 않고 메소보다미아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했기 때문입니다(4-6절). 이 규례는 하나님께서 저주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심을 잘 알려줍니다.
내가 남을 저주하지는 않아도 남이 나를 저주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잘못된 종교인은 저주로 사람을 속박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저주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주의 사슬에 속박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과거에 누가 저주의 말을 했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그 사슬을 담대하게 끊어버리면 됩니다. 저주는 남이 끊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내가 끊는 것입니다. 내가 끊으면 하나님의 자녀인 자신을 아무도 저주할 수 없습니다.
4. 에돔 사람과 애굽 사람
에돔 사람은 이삭의 아들이자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의 후손들로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는 형제국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암몬과 모압 족속처럼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을 박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형제국으로서 관용을 베풀어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7절). 애굽 사람도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당장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해도 삼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게 했습니다(8절) 이 규례는 사랑과 화평과 관용의 중요성을 잘 교훈합니다.
살면서 오해하는 편보다는 이해하는 편을 선택함으로 힘써 사랑과 화평과 관용을 추구하십시오. 사람은 남의 형편을 다 알지 못하고 모르는 것이 훨씬 많기에 삶의 기본 틀을 이해와 관용에 두십시오. 자기 경험과 기준으로 상대를 잘 안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몇십 년을 같이 산 부부도 서로를 모를 때가 많기에 오해가 생깁니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바디 랭귀지도 다릅니다. 그처럼 서로 다른 존재임을 알고 이해하려는 것이 관용입니다. 남의 행동양식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내 행동양식도 존중받습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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