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망하는 나라에 있는 것 (이사야 22장 1-11절) 1. 쾌락과 허영
본문 1절을 보라.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찌함인고.” 환상의 골짜기란 예루살렘을 뜻한다. 왜 예루살렘 사람이 지붕에 올라갔는가? 철수하는 산헤립의 군대를 지켜보려고 그랬을 것이다(사 36:22). 당시 산헤립은 히스기야로부터 많은 공물을 받고 군대를 철수시켰다(왕하 18:14-16). 산헤립의 군대가 철수하자 예루살렘 사람들은 적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데 잔치를 벌이며 즐거워했다(2절). 비천해질 운명도 깨닫지 못한 채 잔치를 벌이는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쾌락과 허영심이 낳은 거품 경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영국과 핀란드가 IMF 경제위기를 겪을 때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책이었지만 우리나라가 IMF 경제위기를 겪을 때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 소주와 삼겹살이었다. 사람의 심성이 중요하다. 외적인 공격보다 내적인 나태가 더욱 인생과 나라를 망칠 수 있다. 사치와 허영의 만연은 패망하는 나라에 거의 빠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허영은 영성을 저하시킨다. 높아지려는 허영적인 본능에 역류해서 낮아지려는 마음이 있어야 공동체가 든든해진다. 합창단에 소프라노와 테너만 있으면 안 된다. 알토와 베이스도 있어야 소리도 든든해진다. 바이올린의 청아한 고음도 좋지만 콘트라베이스의 묵직한 저음도 좋다. 다른 음의 기초와 배경이 되어주는 저음을 들으면 심령이 안정적으로 되듯이 자기를 나타내려는 사람이 적을수록 공동체도 안정적으로 된다.
2. 리더의 타락
당시 리더의 도덕적인 타락이 극에 달했다(3절). 그런 비극적인 상황을 바라보면서 선지자는 통곡했다(4절). 본문 4절에서 선지자가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라.”고 한 것은 선지자의 큰 슬픔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다. 선지자의 사역은 절망 중에 희망을 전해주는 일인데 선지자가 통곡한다는 것은 백성들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하게 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때 선지자의 귀에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는 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5절). 이 묘사를 보면 리더의 타락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깨닫게 된다. 리더의 가장 큰 사명이 무엇인가? 하늘의 소리를 듣고 하늘의 기운을 받아 세상의 선한 변화를 선도하는 일이다. 리더가 사명을 잃고 타락하면 사회의 교회를 하나님께 잘 묶어주는 닻이 아니라 사탄의 수중에 빠뜨리는 덫이 될 수 있다.
양떼의 수준은 리더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리더의 태도와 의식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요새 성공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리더십을 꼽는다.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서번트십(servantship, 종 의식)과 스튜어드십(stewardship, 청지기 의식)을 갖춰야 한다. 섬김 줄 모르는 사람이 리더십만 강하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종의 자세를 갖춘 사람이 좋은 리더가 된다.
3. 불신앙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대적의 병거와 마병들이 예루살렘 주변 골짜기에 가득한 상황을 예루살렘 거민들은 깨닫지 못하다가 하나님이 그들의 시선을 열어주자 비로소 자신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있는지를 깨달았다(6-7절). 그래서 전쟁으로 인해 성벽이 포위당할 때를 대비해서 물을 모으고 가옥을 헐어 그 재료로 성벽을 견고하게 하려고 했다(8-10절).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고 공경하는 것인데 그것을 못했다(11절). 하나님을 앙망하고 공경하면 삶의 두려움이 사라지지만 하나님을 앙망하고 공경할 줄 모르면 삶의 두려움이 커진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섬기는 삶은 대적의 공격에 대한 최상의 대비책이다.
이사야는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 힘을 얻어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게 되고 뛰어도 곤비하지 않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사 40:31). 힘이 없으면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지지만 힘이 넘치면 높은 산도 오른다. 인생은 어차피 고난과 문제의 연속이기에 “고난과 문제가 있느냐?”보다 “하나님 안에서 소생하는 힘을 가졌느냐?”가 중요하다. 죄와 허물과 실패가 있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오면 하나님은 “그런 모습으로 내게 또 왔느냐? 이번에는 혼 좀 나자.”고 하지 않고 늘 기쁘게 받아주고 새로운 기회를 허락해주신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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