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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승리자가 되는 길 (누가복음 9장 18-27절)

by 【고동엽】 2022. 12. 30.

최후 승리자가 되는 길 (누가복음 9장 18-27절) < 죽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

 성경의 사형제 계명은 살인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로서 생명을 사랑하도록 세워진 계명입니다. 사형제는 성경적이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은 반문합니다. “이 목사님은 사형수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없고 사형수 가족의 아픔과 상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자녀가 사형수라도 그런 주장을 하겠습니까?” 그런 질문은 불필요한 질문입니다. 저는 누구 못지않게 자녀를 사랑하지만 자녀가 사형에 합당한 잔인한 살인죄를 저지르면 목숨으로 속죄의 길을 가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말해도 두 딸은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봐.”라고 상처 받기보다 진짜로 자기들을 사랑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 것입니다. 부모는 이렇게 교육합니다. “얘야! 나라와 민족과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죽을 각오도 해라.” 하나님의 뜻과 의를 위해 아무 죄도 없는 자녀에게도 죽을 각오를 하라고 교육하는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자녀에게 죽을 각오를 하라고 교육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녀의 정신까지 죽이는 일입니다.

 만약 자녀가 잔인한 살인범죄를 저질렀다면 부모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얘야!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그러나 네가 지은 죄가 너무나 크다. 의를 위해서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교육하지 못한 내 책임이 크다. 이제 네가 죽어 마땅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그 벌이 죽음이라도 달게 받고 속죄의 길로 가라.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그것이 진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태도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끔찍한 살인 범죄를 저지른 자녀를 불의하게 살리려고 거짓과 청탁과 다른 술수까지 부린다면 그것은 자녀의 영혼과 정신마저 죽이는 일입니다. 부모가 ‘희생하는 삶’보다 ‘회피하는 삶’을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자녀를 바르게 만들겠다는 각오로 평소에 기회가 될 때마다 그런 십자가의 희생 교육을 많이 하십시오.

 작년에 제가 딸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너희가 혹시 죄를 지어 갇히면 정당하게 변호는 해도 불법 청탁은 결코 안 할 거야. 그때 섭섭해 하지 마라. 만약 너희가 잔인한 살인 범죄로 죽음으로 속죄의 길을 가야 한다면 아빠는 마음 아파도 너희들이 속죄의 길을 가도록 할게. 그때 아빠를 원망하지 마라. 반대로 만약 아빠가 그런 위치에 있게 되면 여기저기 청탁하면서 아빠를 너무 살리려고 하지 마라. 죽음으로 속죄의 길을 가야 한다면 그 길로 그냥 가게 해라. 그래도 너희를 절대 원망하지 않을 거다.”

 이상적인 생각만이 아닙니다. 평소에 말씀과 기도로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해놓으면 얼마든지 속죄의 길을 담대히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준비를 하면 실제로 남을 잔인하게 죽이는 일은 오히려 거의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죽이는 것은 가장 두려워하되 죽는 것은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늘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죽는 길이 사는 길이고 최후 승리자가 되는 길입니다.

< 최후 승리자가 되는 길 >

 본문 27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나라’는 ‘오순절 성령강림 후 생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약 교회’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는 ‘신약 교회의 초창기 멤버’를 뜻하고 영적으로 폭넓게 해석하면 ‘소수의 최후 승리자’를 뜻합니다. 소수의 최후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님의 실체를 아십시오

 어느 날, 예수님이 빌립보 가이사랴의 한 산에서 기도하실 때 함께 있던 제자들에게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18절). 그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한다고 대답했습니다(19절). 그때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도 하시는 질문입니다. 남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느냐보다 내가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면 확신도 깊어집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실 수도 있었지만 힘과 기적에 압도되지 않고 순수한 사랑과 믿음을 가진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서는 전능하신 능력을 대부분 감추셨습니다. 가끔 사랑과 긍휼로 기적을 일으키시기는 했지만 많은 추종자를 모으려고 능력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최대 목적은 기적을 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신령한 배움과 지식이 있어야 헛된 기복주의나 기적을 보여준다는 이단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면 대중 기적집회나 체육관 기적집회가 얼마나 예수님의 삶과 반대되는 인간 교주들의 미혹 수단인지를 쉽게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기본적으로 ‘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내려놓는 삶’입니다. 나무가 겨울을 나려면 나뭇잎을 떨어뜨려 화려한 것을 내려놓습니다. 성도의 고난과 시련은 영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능력을 가졌지만 가장 비천한 죽음의 길을 가시면서 자신을 떨어뜨리고 내려놓으셨습니다. 자신을 떨어뜨리는 낙차가 클수록 참된 능력과 영향력은 커지고 승리의 가능성도 커집니다.

2. 소리 없이 행동하십시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20절).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경고하신 후 그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셨습니다(21절).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릴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영향력 있는 삶을 살려면 일시적인 침묵 훈련도 잘해야 합니다. 말을 통한 소통만큼 침묵을 통한 소통도 중요합니다. 침묵한다는 것은 입술을 닫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입술을 닫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묵묵히 행동하는 것까지 잘해야 성공적인 침묵이 됩니다.

 묵묵히 행동하면 마음도 깊어지고 인생도 깊어지고 인간관계도 깊어지고 믿음도 깊어집니다. 무엇이든지 깊게 해야 은혜 체험도 깊어집니다. 성경도 얕게 보면 비판할 것이 많지만 깊게 보면 비판이 줄어들고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봉사도 깊게 해야 합니다. 깊은 봉사는 알아주거나 칭찬해주기를 원하지 않기에 표가 잘 나지 않고 그 봉사자의 중요성도 잘 모릅니다. 그러다가 그가 잠시 없으면 금방 표가 나고 그의 공백이 크게 느껴집니다. 그런 봉사가 깊은 차원의 봉사입니다. 어디서든지 깊이 있게 묵묵히 행동해야 참된 은혜와 진리를 얻습니다.

 전도도 소리 없는 전도가 더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소리가 크면 반발도 크고 오히려 감동이 적어서 잠깐 부흥하는 것 같다가 조만간 무너집니다. 요새 <월새기(월간새벽기도)> 문서로 소리 없이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를 멋지게 이루는 모습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말로도 덕을 잘 끼쳐야 하지만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하십시오. 무언의 행동으로 깊은 차원의 삶을 살면 지금은 뒤처지는 것 같지만 결국 앞서는 인생이 됩니다.

3. 십자가를 지고 따르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23절).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십자가를 지는 삶이 단발로 끝나지 않고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순교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목숨을 함부로 버리지 마십시오. 참된 순교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는 것. 즉 생활 속에서 순교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영웅적인 단발의 순교보다 지속적인 매일의 순교가 더 중요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면 손해 같지만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잃는 길이 얻는 길이고 더 나아가 구원의 길입니다(24절). 그때 믿음도 굳건해집니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의 원인은 불신이었습니다. “곧 공황이 온다.”는 소문이 돌고 불신이 커지자 사람들이 예금을 찾아 현금으로 보관했고 물건도 마구 사재기했습니다. 곧 은행 자금은 바닥나고 공장이 돈을 구하지 못해 연이어 쓰러지면서 물건 값이 폭등하고 실업자가 대량으로 생겼습니다. 결국 엄청난 인플레로 사람들이 절망하면서 자살자와 아사자가 속출했습니다. 그 대공황의 극복에는 한 사람의 굳건한 믿음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믿음과 미소를 전했던 장애인 대통령 루스벨트였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매일 저녁 시간 ‘노변의 담화’란 라디오 방송을 통해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믿어주십시오.” 그 호소가 먹혀들어 시민들 사이에 믿음이 생기면서 은행에 돈을 맡겼습니다. 곧 돈이 돌면서 공장도 돌아갔습니다. 믿음으로 마음의 불황을 극복하자 환경의 불황도 극복된 것입니다. 그 후 미국은 더욱 빠른 속도로 경제를 일으켜 세계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성도는 “할 수 있거든”이라고 말하지 말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물론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맹목적인 긍정 신앙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기를 각오할 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현재의 모습이 초라해도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각오하고 나아가면 얼마든지 부흥과 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을 힘써 자랑하십시오
 
 자기 자랑은 최대한 줄이고 주님 자랑을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영광스런 존재가 되고 최후 승리자가 되는 길입니다(26절). 성공할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크게 보고 높아지는 사람’과 ‘주님을 크게 보고 낮아지는 사람’입니다. 후자처럼 성공할수록 주님을 크게 보아야 그 성공이 기쁨과 보람도 가져다주고 실패하는 성공이 되지 않습니다. 실패해도 주님을 크게 보고 성공해도 주님을 크게 보십시오. 주님을 크게 보고 자랑할 때 은혜도 넘치게 됩니다. 자신을 높이면 은혜의 수준이 낮아지지만 하나님을 높이면 은혜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마음의 상처 치유도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높일 때 급속히 나타납니다. 늘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자랑하지 말고 늘 예수님만 자랑하며 살게 하소서!” 그런 고백을 통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면 남의 고통을 헤아리고 희생하면서 기쁨과 보람도 넘치게 됩니다. 그러면 말은 잘 못해도 얼굴 표정만으로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전도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언행과 얼굴입니다. 자기 언행과 얼굴이 전도지가 되게 하십시오.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볼 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항상 얼굴이 밝을까?”하는 마음만 들게 해도 전도가 됩니다.
 
 네덜란드의 한 마을에 병으로 얼굴이 아주 험상궂게 된 노인이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그 노인을 싫어했는데 한 소녀만은 늘 웃음으로 대하며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하고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그 노인의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날 때 거액의 재산을 자기에게 늘 미소를 보내어 준 소녀에게 남겨주었습니다.

 웃으면 복이 오고 영혼도 얻습니다. 밝은 얼굴도 대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가 그 얼굴 보도 교회의 좋은 분위기를 파악해서 등록할 때도 많습니다. 언행과 얼굴이 전도지가 되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모든 것이 전도의 도구가 되게 하십시오. 사업도 “내가 록펠러나 요셉처럼 성공을 잘 활용하면 많은 영혼이 예수님을 믿겠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업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삶의 목적과 일의 목적을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두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힘써 덜어내고 나누십시오.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일전에 한 성도가 무명으로 저희 선교 사역을 위해 꽤 많은 헌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메일을 보냈습니다. “목사님! 저와 저의 자녀들이 목사님 말씀으로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가끔 자녀가 목사님의 선교사역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녀로 잘 커준 것이 너무 감사해서 이렇게 헌금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만큼밖에 못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선교하고 나누는 가정이 되게 기도해주십시오.”

 얼마나 소중한 마음입니까? 그런 마음들이 모여 <월새기> 문서선교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내 소리 없는 은밀한 헌신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무상으로 혹은 라면 한 개 값으로 <월새기>를 통해 한 달 동안 영혼의 양식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의미와 보람이 큽니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당대의 데오빌로를 통해 기적적으로 <월새기 영어판>까지 발행될 수 있다면 세계선교도 얼마나 멋지게 이뤄지겠습니까? 자기 소유를 하나님의 소유로 알고 잘 쓰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도 주어지지만 그를 통해 하나님도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유명한 운동선수가 모자에 후원기업의 마크를 달고 우승하면 기업의 이미지도 올라가고 물건도 많이 팔립니다. 그처럼 자기 이마에 예수님의 마크가 부착된 것으로 여기고 성도답게 살려고 힘쓰면 예수님의 이름도 빛나게 되고 교회도 빛나게 되고 자기 인생도 빛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 전파를 잘하기 위해서 축복도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축복받으면 그 축복을 통해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변화시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최후의 승리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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