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이사야 4장 1-6절) < 심판하고 회복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 1절에서 시온의 딸들이 비참한 모습으로 한 남자를 구한다는 것은 전쟁과 심판으로 유다에 수많은 남자들이 죽게 되어 남자를 찾기가 힘든 사회가 됨을 상징합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라.”는 말은 “의식주는 스스로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제발 아내로 받아들여주기만 해 달라!”는 뜻입니다. 교만과 허영 때문에 전쟁의 폐허로 비참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교만과 허영에 빠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무서운 심판을 허락하십니다. 가장 화려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가장 어리석은 것이 교만한 모습을 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태도 때문에 눈앞까지 온 축복을 차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쩌다가 축복을 받아도 교만한 모습을 하면 한 순간에 그 축복이 허무하게 사라집니다. 성도는 항상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가끔 보면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 반성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과거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돈을 벌려고 스스로 그 일에 나섰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정부가 나치 단죄에 엄격하게 나선 것과 크게 비교됩니다. 그런 모습들은 사람도 분노하지만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을 낳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그럴듯한 미화보다 철저한 참회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삶을 언젠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지금 당장 심판이 없다고 해서 마치 하나님이 없으신 것처럼 하나님을 업신여기면 안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직접 의를 이루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룩한 무리들을 통해 의를 이루도록 심판을 잠시 유보하십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세상을 보면서 의로운 삶을 새롭게 다짐하십시오. 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지만 의를 따르려는 모습만은 포기하지 마십시오.
메시야가 강림하시는 날은 불의한 자에게 심판의 날이지만 의로운 자에게는 회복의 날입니다(2절). 하나님의 심판은 거룩하고 깨끗하게 하는 작업입니다(3절).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끝까지 참지는 않으십니다. 때로는 무섭게 공의로 심판하시지만 그 심판은 파멸을 위한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를 더욱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들려는 선한 목적이 있는 심판이기에 심판 후에는 반드시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5-6절). 시편 121편 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이 구절에서 지키신다는 말은 골키퍼(goal keeper)가 되어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골키퍼가 되어주시면 큰 의미에서 인생의 실점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순간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결코 사명의 자리에서 후퇴하지 마십시오.
어떤 장로님은 자기는 하나님의 땀 냄새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신비주의적인 언행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장로님은 ‘신비주의자’가 아닌 평소에 영성을 결코 자랑하지 않는 균형 잡힌 신앙을 가진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그렇게 표현한 것은 우주 만물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그렇게 시적으로 표현한 것은 깊은 감사를 담은 일종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끝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죽는 것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당장 죽을 것 같아도 아무 때나 죽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때에 죽습니다.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기쁘게 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때에 대한 넉넉한 시야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사십시오.
사람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받지 못한다는 것만큼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참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찾는 참 사랑은 위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음은 언제나 빈 상태로 계속됩니다. 어느 순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도 만나야 인간은 진정으로 인간답게 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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