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31) 하나님께 맞설 것은 없습니다 (신명기 6장 1-4절) < 표적 신앙을 주의하십시오 >
어떤 목사님이 서울 강남에서 목회하다가 서울 근교로 목회지를 옮겼습니다. 교회를 이전한 이유는 성도들이 금융 다단계로 10가정 이상 얽혀서 폭발 직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금융 다단계는 그럴듯한 상호를 붙여서 금융회사처럼 위장하고 잠깐 동안 고액의 이자를 딱딱 제 날짜에 딱딱 입금시킵니다. 그러면 거기에 혼이 빠져서 있는 돈 다 털어놓고 아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목사님은 돈을 목적으로 교회생활을 하지 않기를 권면했지만 성도들은 목사님을 배척하고, 오히려 다른 교인들까지 자꾸 끌어들였습니다. 결국 목사님은 몇몇 성도들과 함께 미련 없이 강남을 떠났고, 그 얼마 후에 그 금융 다단계가 깨지면서 다단계에 얽힌 많은 교우들이 서로를 원망하며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돈으로 교우들이 연결되면 그것은 교회에 시한폭탄이 놓인 것과 같고 언젠가 그 폭탄이 터지면서 교회가 큰 아픔을 당합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고 순수한 신앙을 원하십니다. 돈과 관련해서 교회를 옮기고 돈 때문에 시험에 들고 돈을 우상처럼 여기고 돈에 모든 일이 좌우되면 미래는 결코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수하게 교회를 잘 섬기고 열심히 살 때 따라오는 돈은 축복의 씨앗이지만 돈을 우상처럼 추구해서 얻는 돈은 대개 저주의 씨앗이 됩니다. 돈은 ‘따라오는 것’이 되어야지 ‘추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새 성도에게는 ‘돈’도 우상이지만 ‘표적’도 우상입니다. 어디에서 ‘표적’이 나타났다고 하면 벌떼처럼 몰려듭니다. 불교에서도 불상이 방광했다고 하면 수만 명이 몰리고 천주교에서도 성모 마리아상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면 수만 명이 몰리고 기독교에서도 사진에 이상한 빛이 나타났다고 하면 수만 명이 몰립니다. 얼마나 속여먹기 쉬운 백성입니까? 그래서 한국처럼 자칭 메시아나 이단이 많은 나라도 드뭅니다.
표적을 추구하는 신앙도 극히 위험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르지만 표적도 진실한 성도에게 ‘따라오는 것’이 되어야지 ‘추구하는 것’이 되면 안 됩니다. ‘따라오는 것’과 ‘추구하는 것’은 그 차이가 큽니다. 주님은 여러 번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9절에도 그런 말씀이 나오고, 마태복음 16장 4절과 누가복음 11장 29절에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표적을 추구하는 것은 마음이 악하고 음란한 증거일 수 있습니다. 즉 영적으로 자기를 과시하고 높아 보이고 싶은 야심이 있는 증거입니다.
< 하나님께 맞설 것은 없습니다 >
행동양식에 대한 분별력도 있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상식을 초월하신 하나님이지만 몰상식을 선도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몰상식을 신앙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요새 한 이단 단체가 기존 교회들을 무섭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작은 교회로 몇 가정이 교묘하게 무리를 지어서 들어와 충성하는 척 하면서 교인들의 신임을 얻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어서 목사를 쫓아내고 그들 표현대로 하면 교회를 접수합니다. 그 접수 작업이 실패하면 동조자들과 함께 우르르 나가 교회를 초토화시킵니다.
작은 교회만이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에서도 구역이나 소그룹에 그런 식으로 침투해서 한번에 2-3백 명씩 성도를 잃는 교회들도 속출했습니다. 기존 교회를 망가뜨리려는 그런 전략과 행동양식만 봐도 얼마나 몰상식합니까? 그런 몰상식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처럼 몰상식을 사명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이원론적 신앙이 어떻게 보면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신 유일한 하나님입니다. 이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의문도 많고 비판과 불평과 원망도 많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면 악의 세력이 크게 성공하기 때문에 세상은 마치 선과 악이 대립되는 세상 같습니다. 그래서 이원론에서는 선과 악을 대립시키고 성과 속을 대립시킵니다. 또한 이원론에서는 영혼과 육신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고 영혼은 선하고 육신은 나쁜 것이라고 단정하며 또한 성(性)도 불결한 필요악처럼 생각합니다.
이원론은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교묘하게 하나님을 격하시키는 논리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 맞설 것은 없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이 잠시 활동하도록 허락한 것이지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아닙니다. 악도 잠시 있는 것이지 일원론에서는 선의 최종 승리를 믿습니다. 또한 일원론에서는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을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진짜 성스러운 것은 세속적인 환경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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