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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잔치의 주인공 (누가복음 14장 15-24절)

by 【고동엽】 2022. 12. 18.

천국 잔치의 주인공 (누가복음 14장 15-24절) < 때에 맞는 합당한 리더십 >

 속담 중에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화장실에서 나갈 때가 다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환경과 시류에 따라 사람이 변질되는 것을 나타내는 속담입니다. 그러나 변질은 나빠도 변화는 필요합니다. 어떤 자리에 앉기 전과 앉은 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요새 대통령의 소통 부족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국민 앞에서 고개를 잘 숙이고 남의 말도 비교적 잘 듣고 방향도 잘 수정했는데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민 앞에서 고개가 빳빳하고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방향도 잘 수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사 잘못을 지적당해도 “그건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비판이다. 사람이 다 부족하지 완벽한 사람이 어디에 있나?”라고 하면서 한번 정한 인사는 끝까지 밀어붙이고 한번 정한 정책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된 후에 달라졌고 소통이 부족하다고 수군거리지만 사실상 대통령이 되기 전과 대통령이 된 후의 리더십 스타일은 달라져야 합니다. 중요한 자리를 맡아서 남의 말만 듣고 이리저리 흔들리면 훨씬 더 나쁜 결과를 낳습니다. 리더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있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도 거의 없고 흔들리지 않고 맺는 열매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곁가지는 흔들려도 중심 줄기는 쉽게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중심을 잡고 뚝심 있게 정책과 인사 문제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책임의식이 너무 지나쳐서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리더가 자기 위치를 오해하고 책임의식이 너무 지나치면 독선적이라는 말을 듣기 쉽습니다.

 ‘대통령의 리더십’과 ‘왕의 리더십’은 차이가 큽니다. 왕은 대개 죽을 때까지 외적으로는 거의 절대적인 리더십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왕의 능력과 지혜와 사람됨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크게 좌우됩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을 가진 왕도 나름대로 백성들과 소통하려고 애씁니다. 하물며 민주국가에서의 대통령은 더욱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너무 쉽게 흔들려도 안 되지만 흔드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은 독선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특히 5년제 단임 대통령은 더욱 소통에 탁월해야 하기에 ‘왕의 리더십’보다는 ‘조정자의 리더십’을 가지는 정도로 자기 위치를 설정해야 합니다. 회사로 말하면 회사를 일으키고 키운 창업자나 최대 지분을 가진 회장으로서 ‘오너의 리더십을 가진 것이 아니라 5년 임기의 대표를 맡은 대표로서 ‘대표의 리더십’을 가진 것입니다. 5년제 단임 대통령은 5년 동안 나라와 국민의 ‘대표자’이지 나라와 국민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밀어붙이는 리더십’은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게 보입니다.

 리더십은 자기 위치와 지분에 준해서 지혜롭게 행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 돈으로 일구고 키웠고 상장도 하지 않고 외부 투자도 받지 않고 회사채도 발행하지 않은 100% 자기 지분의 회사는 대개 작은 회사로서 오너가 절대 리더십을 가집니다. 그러나 기업이 커지고 상장도 하고 외부 투자도 받고 회사채도 발행하면 ‘오너의 리더십’조차 서서히 ‘대표의 리더십’으로 바뀌는 의식전환을 이뤄내야 합니다.

 회사의 최대 소유지분을 가진 ‘회장의 리더십’과 회장이 임명한 ‘대표의 리더십’은 차이가 큽니다. ‘대표의 리더십’만 가지도록 설정된 사람이 ‘오너의 리더십’까지 행사하려고 하면 오히려 리더십을 잃습니다. 물론 대표의 리더십만 가지도록 설정된 사람도 오너의 리더십에 가까운 리더십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는 대표가 탁월한 능력과 안목이 있는 경우나 감화력 있는 삶과 인품으로 큰 존경을 받는 경우입니다. 또한 대표가 된 초기에 기대감을 가지고 “한번 그분에게 맡겨보자!”고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힘을 실어주는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가 아닌 상황에서 ‘대표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오너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처럼 밀어붙이면 그것은 ‘뚝심’이 아닌 ‘독선’으로 여겨져 결국 반발을 부릅니다. 요새 가끔 청와대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대통령을 흔들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청와대를 흔들려고 하지 말라!” 그 말이 “중심을 잘 잡고 뚝심 있게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말로 들리기보다는 제한된 기간에 ‘대표의 리더십’을 가지도록 선출된 분이 마치 ‘오너의 리더십’을 행사하려는 말로 들리게 되면서 점차 민심을 더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5년 동안만은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고 깨끗하게 물러나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표로 선출되어 일정 기간 권력을 위임 받은 사람은 ‘오너의 리더십’보다는 ‘대표의 리더십’을 가지고 탁월한 중재력과 조정력과 감화력을 내세워 국가와 공동체를 이끄는 것이 좋습니다. 그처럼 한시적인 대통령 자리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으면 대통령 자신도 “왜 국민들이 내 진심을 몰라줄까? 왜 내 덕에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내 뜻에 이견을 보일까?” 하면서 속상하게 됩니다.

 선출된 단임 대통령 자리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자리에서 ‘대표의 리더십’을 가지고 ‘적절한 흔들림’도 수용하고 ‘국민과의 소통’에도 힘쓰면서 성공적으로 국정을 수행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쉽지 않기에 오너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보다 대표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더 힘들고 더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대통령의 숙명으로 알고 오너의 리더십을 행사하고 싶은 심리를 잘 절제하고 거절해야 “독선적이다! 소통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덜 듣고 더 나은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역사를 보면 독선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어떤 일을 밀어붙일 때 그 일이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인해 북한의 김정은이 큰 궁지에 몰려 예측불허의 급박한 상황이 곧 펼쳐질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김정은의 극적인 유고 상황이 벌어지고 남북 간의 막혔던 혈맥들이 뚫려서 극적으로 한반도에 새로운 활력과 기운이 생기는 시나리오입니다.

 과연 앞으로 한국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까요? 아무도 모르지만 저는 북한에 정변이 생기고 한민족의 중흥의 혈맥이 뚫리는 희망적인 예측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리석은 독선을 통해서도 참선을 이뤄내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희망적인 예측을 하는 이유는 마지막 때에 한민족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세계선교를 위해 요긴하게 쓰임 받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그런 쓰임 받는 역사를 위해 하나님은 한민족이 힘과 영향력을 몽땅 잃을 수 있는 비참한 전쟁국가 혹은 패망국가가 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독선으로 비춰져도 리더가 진심만 잃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리더의 잘 흔들리는 우유부단한 모습보다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모습을 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에 대한 오너의 리더십을 가지신 분으로 흔들리지 않는 속성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사랑으로 공의가 흔들리지 않게 하시기에 천국도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사람에게만 허락하십니다.

< 천국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 길 >

 본문의 비유는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단호한 속성을 잘 보여줍니다. 이 비유는 천국 잔치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천국 잔치의 주인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십시오

 어느 날, 한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16절). 유대인들은 잔치를 열 때 먼저 초청할 사람의 참석 여부를 묻고 그 초청에 응한 사람의 숫자에 맞춰 잔치를 준비합니다. 그렇게 잔치를 준비한 후 초청에 응한 사람들에게 종을 보내어 오라고 했지만 정작 그들은 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하나 같이 거절했습니다(18-20절). 왜 그들이 잔치를 거절했습니까?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처음에 잔치 초청에 응했던 사람들이 정작 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주인의 잔치보다 다른 사소한 일을 더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잔치를 처음부터 거절하면 덜 실망됩니다. 정말 다른 일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잔치에 참석하기로 약속했다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내세워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면 더 실망됩니다. 그것은 잔치를 경시하는 것이고 기대감을 준 약속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잘 지키십시오. 어떤 자리에 참석할 것을 약속했으면 힘써 지키고 식사나 여행 약속도 힘써 지키십시오. 약속했다가 약속을 깨는 것은 더욱 잘못된 것입니다. 특히 주님 앞에서 한 약속은 더욱 힘써 지키려고 하십시오. 주일을 지키는 것이나 교회에서 맡은 봉사 자리를 충실히 지키는 것은 주님과의 무언의 약속입니다. 그런 약속들이 세상적인 일들로 인해 깨지지 않게 하십시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핑계’입니다. 약속한 것을 힘써 지키는 사람이 천국 잔치의 주인공이 됩니다.

2. 소외된 자들을 찾으십시오

 집 주인은 초청을 수락했다가 거절한 사람들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결국 종들을 시켜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21절). 여기서 언급된 네 부류의 사람들은 인간적으로는 멸시를 당하며 경제적인 능력도 없는 소외된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돈이 없어 밭이나 소를 사지 못하고 장가도 가지 못한 존재로서 처음에는 잔치에 초대받지도 못했지만 결국 그들이 집주인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천국 잔치에는 화려한 족보와 이력을 가진 사람보다 인간적으로 허물과 약점이 많아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됩니다. 결국 “지금까지 어떤 사람이었는가?”보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소외된 사람을 더욱 품으려고 하십시오. 물론 소외된 사람이라도 교만한 사람만은 예외입니다. 가끔 보면 가난과 장애를 벼슬처럼 여기고 소리를 높이는 교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겸손함만큼 소중한 가치는 없습니다. 천국 잔치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것입니다.

 자기의 소중한 가치를 망각하고 자기 비하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희망의 말을 해주고 가능성을 자극해주고 잠재성을 분출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삶을 경쟁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람을 경쟁대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을 늘 자기 품으로 초대하려는 기본 마음을 가질 때 신기하게도 자기 공허와 외로움이 사라지는 역사를 체험하고 그런 사람이 천국 잔치의 주인공도 됩니다.

3. 산울타리 가로 나가십시오

 집주인의 명을 따라 종들이 열심히 소외된 사람들을 불러 모았지만 그래도 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22절). 그러자 주인이 또 말했습니다(23절).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본문 21절에 언급된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이 소외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면 길과 산울타리 가의 사람들은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즉 천국 잔치에 이방인들도 강하고 끈질기게 권해서 구원의 잔치로 이끌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초청을 만백성에게 최소한 전달은 해야 하기에 세계선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를 삼는 것은 희생이 요구되는 힘든 일입니다. 결국 세계선교는 자기확장의 부르심이 아닌 자기희생의 부르심입니다. 늘 복음전파의 소원을 가지되 그 소원이 자기 주변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세계로 퍼져서 적어도 최소한 복음을 접하지 못하는 영혼만이 없도록 세계선교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가지십시오.

 현재 저의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를 받고 있는 회원 선교사가 자기 신분을 밝힌 사람만 68명입니다.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지금 <월새기 영어판>이 발행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현지인 선교사역을 하면서 언어의 장벽 때문에 말씀으로 영혼을 깊이 터치하지 못해서 늘 아쉬움이 있다고 합니다. 그분들뿐이겠습니까? 27000명의 한국인 선교사들이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월새기 영어판>이 발행되어 1불에 공급된다면 선교사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인 선교도구가 되겠습니까?  

 가난한 선교지로 가서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것도 필요하고 육신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영혼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고 마음의 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말씀사역이 얼마나 더욱 절실하게 필요합니까? 교정기관에서 <월새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선교지 영혼들이 <월새기 영어판>을 서로 차지하려는 모습을 수시로 상상해봅니다. 그런 멋진 일들을 이뤄가며 산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인생이 되겠습니까? “우리도 간신히 사는데 무슨 세계선교냐?”라고 하지 마십시오. 세계선교를 계속 꿈꾸며 나갈 때 하나님은 간신히 사는 삶을 풍성한 삶으로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4. 강권하여 교회를 채우십시오

 “강권하여 교회를 채우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는 교만한 사람까지 억지로 교회로 데려오라는 말은 아닙니다. 교회는 세속적인 커뮤니티가 아니기에 초청을 남용하면 안 됩니다. 한국교회를 망친 대표적인 것 2가지는 세속적인 원리들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던 ‘교회성장 세미나’와 ‘총동원 전도주일’입니다. 총동원 전도주일에 노인정에 버스를 대고 30명을 데려오면 30명을 전도했다는 식으로 한 명이 수백 명을 전도했다는 과시욕이 드러나는 전시성 행사가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남겼습니까?

 비굴하게 “우리 교회에 한 번 나와 주세요.”라고 해서 나와주면 그 다음 단계의 신앙성장이 힘들어집니다. 높은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첫 인상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총동원 전도주일 행사로 인해 불신자들의 교회에 대한 첫 인상이 시장바닥 인상이 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미래의 참된 회심을 막았는지 모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올 때는 간절하고 갈급하게 사는 길을 찾고자 하는 애절한 심정으로 나와야 교회의 소중한 인상도 남게 되고 순수한 첫 사랑도 생기는 것입니다.

 강권해서 교회를 채우라는 말씀은 자기 확장의 부르심이 아닙니다. 즉 교회를 외적으로나 수적으로 성장시키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은 교인 숫자가 많거나 어떤 프로그램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성령의 역사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 특히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깊이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오해인지 금방 깨닫습니다. 외형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나 성령의 역사를 쉽게 판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적은 교인 숫자로도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를 발행하면서 한국사회에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은 웬만한 대형교회도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인물 한 사람의 힘이나 좋은 문서 하나의 힘은 대형교회 하나의 힘을 얼마든지 능가할 수 있습니다. 옛날 선비들은 정승보다 낮은 자리지만 학계의 거두인 대제학을 더 존경했고 대제학보다 왕이 벼슬을 하라고 간청해도 벼슬을 사양했던 거사를 더 존경했습니다. 그런 영적인 거사 교인을 꿈꾸십시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목표의식도 없이 나태하게 사는 것도 잘못이지만 숫자에 절대 가치를 두고 하나님 나라의 일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인물 한 사람이 묵묵히 씨를 뿌림으로 은밀하게 하나님의 일을 멋지게 이뤄내는 것이 오히려 진짜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집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다가 때가 되면 그 찬란한 빛을 드러낼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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