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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장37-45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by 【고동엽】 2022. 12. 17.
■2022년 12월2일(금)■
 
(누가복음 9장)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묵상/눅 9:37-45)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제자 셋과 변화산에서 하룻밤을 지내시고 내려오시자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고 소동이 있었다. 어떤 사람의 외아들이 귀신 들려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제자들이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은 한탄하셨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이 말씀은 무리를 향하여 하신 말씀일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일까? 당연히 제자들에게 하신 책망이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 '패역'은 '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거스름'이란 의미다.
 
예수님의 제자 된 도리로서 마땅히 귀신을 쫓아내야 하건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패역이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만 직무 유기가 아니라 하지 못하는 무능함도 직무 유기다.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41)
44절에서 주님께서는 곧 세상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이제 이 모든 사역의 온전한 몫을 제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면서 주님이 직접 해주시기만을 바라야 하는가? 주님만 의지하고 사는 것이 이런 무능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제자들은 왜 귀신을 못 쫓아내었는가?
 
제자들은 왜 귀신을 못 쫓아내었을까?
 
예수님의 이들의 문제를 단번에 짚어내셨다.
'믿음이 없고 패역'했기 때문이다.
 
'패역'은 헬라어 '디아스트렙포'를 번역한 것인데, 그 의미는 왜곡하고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총독에게 전도하자 엘루마라는 박수무당이 예수를 못 믿게 하려고 힘썼다. 사도 바울은 그 엘루마를 향해서 '마귀의 자식이요, 의의 원수여, 주의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책망할 때 '굽게 하는'이 '디아스트렙포'다(행 13:10).
 
모름지기 제자란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건만, 오히려 마귀가 주는 의심을 더 신뢰하고 심약한 마음을 가질 때 그는 '패역한 자'가 된다.
 
마치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더 신뢰했듯이 진리에 서 있기보다는 자기의 감정이나 주변의 환경이나 세속적인 이론을 더 신뢰할 때 주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자'라고 호통을 치실 것이다.
 
오, 이 정신이 번쩍나는 책망을 잊지 말자.
 
적어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런 책망을 들으면 안 된다.
 
특별한 사람만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모든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
 
귀신을 쫓아내는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의 신분에 대한 확신이다.
 
아무리 부패하고 타락한 경찰일지라도, 자신의 신분이 경찰이라면 그는 범죄자 앞에서 담대해야 한다. 그가 범죄자를 무서워하고 피하면 직무 유기다. '나 같은 자가 무슨 자격으로'라는 자괴감에 빠져있으면 경찰복 벗어야 한다. 경찰이란 개인의 도덕적 자격으로 범죄자를 잡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최근에 제대로 신앙생활을 했는지 여부에 의해서 귀신을 쫓아낼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도라는 그 신분 자체가 충분한 자격이다.
 
학교 교사였던 어떤 청년이 학교 제자가 자기 친구가 귀신이 들렸다고 도와달라고 해서 달려갔다. 기도실에 가보니 한쪽 구석에서는 여집사님들이 모여서 이 학생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있었고 다른 쪽 구석에서는 귀신 들린 학생이 히죽히죽 비웃으면서 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가 막힌 광경이었다. 귀신은 이런 식으로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해서 쫓아내야 한다. 그것은 거대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성도라는 신분만 있으면 된다. 이 청년은 건방진 귀신(?)을 향해 화가 났다. 당장 무릎 꿇으라고 소리쳤고, 예수 이름으로 나가라고 외쳤다. 그러자 학생은 쓰러졌고, 잠시 후에 온전해졌다.
 
누가복음에는 없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중에 예수께로 와서 왜 자신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를 물었다고 했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마 17:20).
자기 신분에 대해서 의심하고 우유부단한 자가 어떻게 귀신을 쫓아내겠는가? 여기에서 믿음이란 내가 '믿-씁니다' 해서 키운 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총을 진심으로 믿는 믿음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이 똑같은 질문에 마가복음에서는 다른 대답이 적혀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 9:29)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해석한 것이거나 주님께서 더 많은 설명을 하신 것을 추려놓은 것일 수 있다.
 
결국 종합해서 결론 내리자면 귀신을 못 쫓아낸 것은 믿음이 없었던 탓인데, 그 믿음을 키우는 가장 좋은 수단은 '기도'다. 킹제임스성경에는 '기도와 금식'이라고 나와 있다. 기도하면 주님을 묵상하게 되고 더욱 그분을 신뢰하게 된다. 그러므로 평소에 기도하라. 그래서 더욱 주님을 더욱 믿고 신뢰하라.
 
참으로 애통할 일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마귀가 넣어준 의심을 더 믿는다. 더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패역한 자가 되지 말자.
 
주님,
제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자가 되지 않기를 구합니다.
아쉬운 일도 많고 속상한 일도 많지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이 모든 것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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