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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장18-26 / 나를 누구라 하느냐?

by 【고동엽】 2022. 12. 17.
■2022년 11월30일(수)■
 
(누가복음 9장)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묵상/눅 9:18-26)
 
◆ 하나님의 그리스도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묻자 베드로는 명확하게 대답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The Chirst of God)"
 
우리나라 말에는 정관사가 안 나와 있지만, 원어에는 정관사가 붙어있다. 그리고 영어는 명확하게 사용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 A Christ)'가 아니라 '그 그리스도(The Christ)'다.
 
참된 성도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세상은 예수님에 대해 나름대로의 평가를 한다. 위대한 선생이니, 혁명 청년이니...그러나 우리는 명확하게 고백한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내내 예언된 그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는 이 고백에서 어떤 양보도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귀는 너무나 그럴싸한 궤변으로 이 사상을 흐트러 놓았다. 자신도 인류 평화와 고통받는 자를 위해 죽으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멋진 말 같고 그 사상을 따르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궤변이다. 
 
세상은 내가 그리스도가 되어야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유일한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 앞에 굴복해야 아름다워진다.
 
일부 사람들이 어설프게 그리스도 흉내를 낸다. 제법 의를 위해 사는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름을 꽤 과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랑이 '의'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일 뿐이다. 성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인간의 의란 더러운 옷과 같고(사 64:6),
음식 쓰레기 냄새보다 더 역겹다.
 
욥처럼 탁월하게 의로운 자도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에 대한 자만과 건방짐을 깨닫고 회개했을진대 하물며 욥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당신이 자기 의로 그리스도가 되어보겠다는 것이 어찌 가당하겠는가?
 
모름지기 성도란 그리스도가 되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건방 떨던 내가 죽고 예수님을 유일한 그리스도, 곧 나의 왕으로 받아드림으로써 구원을 얻은 자들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때, 비로소 나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주 예수여!
온 세상이 이구동성으로 예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고, 마귀가 떼창을 하며 예수님을 대적해도 저는 주 예수님께서 저의 유일하신 구주이시며 왕이심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 제 삼일에 살아나심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의 부활에 모든 기독교의 운명이 걸려있다.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불교보다 못한 수준 낮은 종교다. 그러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라면, 세상의 모든 철학과 종교는 한낱 잡소리일 뿐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며칠 만에 부활하셨는가가 의외로 논쟁이 많다.
 
마가복음에는 주님께서 '사흘(three days)만에 살아날 것'(막 8:31)이라고 하셨는데, 누가복음에는 '제삼일(he third day)'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에 돌아가시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다. 엄밀히 따지자면 48시간도 채 안된다. 이것이 팩트다. 누가는 이것에 대해서 누가복음 24장 21절에서 다시 한번 부활이 사흘째(the third day)임을 시사한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를 예로 드셨기 때문에(마 12:40) 예수님도 그리하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수요일에 돌아가셨다느니, 목요일에 돌아가셨다느니라고 주장한다. 
 
만일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시고 일요일에 부활하셨다면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틀린 것이 되지 않는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종종 사용하시는 관용적 표현일 뿐이다. 
 
가령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마 24:2)는 말씀이 정말 돌 하나가 돌 위에 있으면 틀린 말씀이 되는가?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파괴될 것임을 의미하는 관용적 표현일 뿐이다. 성경이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말을 그런데 적용하면 안 된다. 사람들은 학창시절에 단 하나의 예외 때문에 틀려 버렸던 수학 시험 트라우마가 있다. 
 
성경에서 우리는 소통언어에 팩트 여부를 따지면 안 된다. 지나친 문자주의를 따르는 해석가들이 종종 그런 오류를 범한다. 그들의 논리를 따르게 되면 성경이 맞기 위해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아야 하며(시 19:5,6). 지구는 평평해야 한다(잠 30:4).
 
 
◆ 자기를 부인하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을 금욕이나 극기라고 오해를 하는데, 아니다. 그런 것은 힌두교나 불교의 수도자들이 더 탁월할 것이다. 그런 자들을 만나 보면 자신이 못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더 살아있다.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진정한 의미는 자기 의, 자기 영광, 자기 자랑에서 죽어버림을 의미한다. 더는 잘난 체하지 않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엡 2:9).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추구하며, 주님의 영광에 장애가 되면 과감히 버리는 것이 제대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다(골 3:1-5).
 
오늘 말씀은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기가 막힌 진리의 말씀이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시면서, 진정으로 자기를 얻으려면 자기를 잃으라고 하신다. 목숨을 얻고 싶으면 목숨을 잃어야 한다고 하신다. 육신적 자아를 버림으로써 영적인 자아를 얻고, 육신적 목숨을 버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이 놀라운 진리를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없이 이룰 수 있겠는가?
 
오, 주 예수님.
주님께서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를 잘난 체에서 건져주십시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어 하고
자랑에 찌든 제 영혼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제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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