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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장10-17 /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심

by 【고동엽】 2022. 12. 17.
■2022년 11월29일(화)■
 
(누가복음 9장)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묵상/눅 9:10-17)
 
◆ 무리를 영접하심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열두 사도들이 각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가셨다. 여기에서 '따로'(10) 라는 말은 무리와 분리하여 제자들과만 시간을 가지려고 한적한 곳을 찾으셨다는 의미다. 제자들과 예수님은 종종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막 3:20).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에서 예수님께서 조용한 시간을 가질 만한 장소는 없었다. 광야에 나가면 거기로 몰려왔고, 산속에 머물면 거기로 몰려왔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한 번도 역정을 내시거나 지겨워하지 않으셨다. 오늘 본문에서 '그들을 영접하사'(11) 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님, 이러한 주님의 온유하심과 너그러우심을 제가 배우게 해주십시오.
 
탕자가 이것저것 변명할 것을 생각하고 아버지께로 왔지만, 아버지는 무조건 받아주었듯이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모두 받아주신다.
 
심히 위축되어 있는가?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께서는 자기에게 오는 자를 결코 내쫓지 않으신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아멘.
 
◆ 오병이어의 기적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예수님께 몰려온 무리가 남자만 오천 명쯤 되었다고 하니 여자와 아이를 합치면 적어도 칠천 명은 넘었을 것이다. 엄청난 수다. 사람들은 잠깐 모임을 하고 해산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모여들고, 온종일 머물렀으며, 심지어 며칠을 함께 한 적도 있다(막 8:2).
 
이들은 대부분 개인적으로 먹을 것을 준비하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먹을 것이 다 떨어지자 대부분이  굶주리게 되었다.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면 되지만, 예수님은 굶주린 이들이 길에서 기진하여 쓰러질까 염려하셨다(마 15:32).
 
결국 예수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들을 먹이셨다. 놀라운 기적이다. 기적을 믿지 않는 어떤 신학자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하여서 꼭꼭 숨겨둔 자기 도시락을 옆 사람과 나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법 멋있는 해석이다. 이웃과 나누는 삶이라니!
 
그러나 나누는 삶이야 멋있지만, 오늘 본문에 대해서만큼은 헛소리다. 그래서야 어떻게 배불리 먹을 수 있겠는가? 오늘 본문에는 수천 명이 되는 사람들이 '먹고 다 배불렀더라'(17)고 했다. 더구나 자기 것을 나누어 먹었으면 아쉬운 마음에 도시락에 떨어져 있는 빵가루까지 싹싹 털어먹었을 텐데 오늘 본문에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빵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었다고 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이런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공생애 기간에 이런 기적을 딱 두 번만 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매번 모일 때마다 이런 기적을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만일 그러했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많았을 것이다.
 
요한은 이 사건을 보다 깊이 있게 다루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요 6:14-15). 그리고 사람들은 생명의 말씀보다는 빵 먹으려고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다(요 6:26). 영적인 것에 관심이 식고 물질적인 관심이 폭발했다. 이러면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을 수는 있을지 모르나 결국 썩어지고 없어질 것만 쫓다가 사라질 것이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
 
사람들은 심히 배고플 때 기적적으로 배부르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보면 감동하고 열광한다. 그러나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신 것에만 열광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게 되고, 조금만 힘들면 원망해대는 초보적인 수준에서 못 벗어난다.
 
기적을 체험했을 때, 우리는 그 기적보다 그런 기적을 일으키신 주님께 더 열광해야 한다. 주님께서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더 깊이 알게 됨을 기뻐해야 한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면 그 후에는 설사 배부르지 않아도 그분의 선하심을 찬양할 수 있으며,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주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의 능력보다, 무리를 영접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그 주님의 성품을 더 갈망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관용과 사랑이 제게 충만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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