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떤 엄한 목사님은 말씀 중에 누가 졸면
사람들 앞에서 아주 심하게 무안을 줍니다.
반면에 어떤 목사님은 교회에 와서 조는 사람에 대해 괜찮게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도 조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 가지고 신앙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피곤하다고 집에서 잠자는 것보다 교회에 와서라도 조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회 안에 조는 사람도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 교회에 시험이 들어 성도들이 많이 나가는데
평소에 예배 중에 졸던 사람은 한 사람도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사람들 붙들고 기도하면서 교회가 다시 컸다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이 존다고 너무 야단치지 마십시오.
"왜 조느냐?
왜 봉사하지 않느냐?
왜 참여하지 않느냐?"고 너무 야단치지 마십시오.
앞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그 사람을 쓸지 그의 미래의 가능성은 누구도 모릅니다.
남을 비판하기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른 모습으로 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옳은 것이 무엇이냐에 관심을 지나치게 됩니다.
그러나 옳은 것 (what is right)이 반드시 선한 것 (what is good)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문둥병자가 마을에 들어오면 돌을 던져 쫓아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옳은 일은 한 가련한 영혼을 파괴하는 악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옳은 일에만 관심을 가지면 반드시 이런 악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옳게 행동하는 점으로 말하자면 바리새인을 따를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옳은 태도를 가지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옳은 일에 사랑이 수반되지 않으면 혹독한 비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고 남의 것을 빼앗는데 마음을 쓰면 가난한 마음이 되고,
사랑이 있고 남에게 주는데 마음을 쓰면 풍성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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