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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by 【고동엽】 2022. 12. 10.

살아가면서 우리에게는 항상 의문 나는 일이 생깁니다. 물론 그런 의문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의문을 통해서 배우고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래서야 되겠는가?"라고 교회의 역할에 대해 회의를 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회의에 진지하게 접근하면 우리는 조금 더 배우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예 "교회가 다 썩었다. 교회는 다 그래!"라고 냉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회의보다 냉소가 훨씬 안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별 희망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그 영혼이 냉소주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희망을 부정합니다. 뚜렷한 희망의 증거가 있어도 그 증거를 부정합니다. 좋은 교회가 있다고 증거를 대도 그 증거를 애써 부정합니다. 그러니까 감사가 없는 인생이 되고 그 영혼이 어느 곳에서도 안착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감사할 것도 없고 모든 것이 곧 잘못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냉소는 삶에서 감사를 빼앗고 삶을 절망하게 만들고 사람을 쫀쫀한 인생으로 만듭니다. 어떤 분은 사람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가끔 개를 집안에서 정성스럽게 키우는 분들에게 "왜 개를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가끔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개는 최소한 주인을 배반하는 일이 없잖아요!" 그 말에는 사람에 대한 냉소와 경멸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분은 개를 너무 좋아하다가 개 같은 사람이 되었나?" 자기도 '충성스런 개'가 아니라 '그토록 경멸하는 사람'이면서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배반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여러 번 만나도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성경이 말하는 진리입니다. 따지고 보면 자기가 배반만 당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도 깊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남에게 배반감을 주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 잠깐 실망(失望)은 할 수 있어도 사람에 대해 절망(切望)하면 안됩니다. 그래도 개가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이 희망임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것도 사람이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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