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판단 받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는 자 먼저 그리스도의 일꾼은 판단 받지 않는 깨끗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별 하자가 아닌데도 판단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가 틀림없이 우리에게도 다가올 터인데 그러한 경우에서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러한 경우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3절) 사도 바울은 판단 받을 때 그것을 하찮은 일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판단 받는 일을 사소한 일로 여길 때 판단을 조금 받았다 해서 울분을 가지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울분이 치밀거든 십자가의 모멸 속에서 고요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또한 주님이 받으셨던 멸시를 생각해보십시오. 마가복음 6장 3절을 보니까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보고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고 멸시했습니다. 동향인이나 가족이 주는 멸시는 더 참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관하지 않고 위대한 길을 그냥 가셨습니다. 멸시의 뜨거움 앞에 쓰러지면 절망이지만 찢어지고 상처 난 가슴을 부여잡고 전진하면 부드럽고 위대한 마음의 소유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을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깐 낙심이 될지라도 힘차게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넘어지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더욱 중요한 것은 판단 받지 않는 것보다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신앙인의 가장 특성은 바로 '판단하는 버릇'입니다. 판단하는 사람은 모두 '내 기분에는 상당히 예민하고 상대방의 기분에는 둔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마치 정신병자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정신병동에 있는 사람은 모두 내 기분에만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판단한다는 것은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아가 살았을 때 나오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교만과 원망, 바로 이것입니다. 그 교만과 원망으로부터 바로 판단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에게서 발견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판단하는 습성을 깨끗이 제거해야 합니다. 자아가 살아있는 한 주의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자아를 죽이지 않으면 부족한 인격을 교체시킬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자아가 죽은 자들만 넘쳤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회에 죽은 자들이 모이면 그 교회는 산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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