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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놀라운 능력(고린도전서 2장 1-5절)

by 【고동엽】 2022. 12. 10.

<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의 가치 >

한 물건의 가치는 누구 손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손에 있는 물맷돌은 장난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다윗의 손에 있으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무기가 됩니다. 오병이어가 내게 있으면 그것은 한 끼 식사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손에 있으면 수천 명을 먹일 수 있는 기적의 음식물이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 손에 있으면 우리는 가치 없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있으면 기적적인 존재가 됩니다.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행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손 안에 잇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주님의 손 안입니다. 그 자리에서 이탈하면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반드시 실패하게 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끝장이 납니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이 없는 사람도 하나님 안에 있는 누구보다 가치 있는 존재이고, 그에게는 반드시 복된 인생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사실을 잘 교훈하고 있습니다.

< 아덴에서의 선교 실패 >

사도 바울은 정열적인 전도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2차 전도여행 중에 아덴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행 17장). 철학의 도시 아테네에서 전도하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믿기 전에 배웠던 철학적 사고에 믿음을 더해서 아테네 전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 전도는 그리 신통치 않았습니다. 복음을 철학적으로 전도하니까 사람들이 별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설교도 영 먹히지 않았습니다.

고작 반응이 있다는 것이 “어디 다음에도 한 번 더 무슨 말 하나 들어볼까?”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실망이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그 순간만은 큰 수치심이 생기고, 사역에 회의도 들고, 사역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삶에서 고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수치감입니다. 고난의 순간은 지나고 나면 바로 잊어버리지만 수치심은 수치스런 순간이 지나도 그 기억이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곧 그 상황을 극복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가 무슨 수치인가?” 하는 생각으로 그는 믿음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처절한 교훈을 다시 얻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이런 자세가 바로 사도 바울의 성공 비결이었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일을 잘 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해서 수치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실패 중에서도 특별히 수치감을 크게 주는 실패가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다시 십자가로 향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면 실패는 반드시 성공의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고난을 슬기롭게 이용하면 인생의 귀한 약이 됩니다.

< 고린도에서의 선교 성공 >

아덴을 떠난 후 사도 바울은 고린도 지역으로 옵니다. 고린도 지역에서는 그가 다짐한 대로 오직 십자가만 전했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린도 전도에서는 사도 바울은 화려한 웅변과 철학적인 아름다운 말로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는 오직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하고 오직 십자가만 전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영혼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십자가는 초라한 것이지만 “십자가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진리를 믿을 때 바로 거기에서 진짜 능력이 나옵니다.

그처럼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기로 결심했지만 아덴과 마찬가지로 헬라의 중심 도시인 고린도에서 그것이 통할까 그는 두려웠습니다. 철학적 논리를 가지고 화려하게 전하고 설득해도 안 되는데 사람 죽이는 형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전하면 사람들이 조롱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에게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린도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 무식하다고 하지 않을까? 그러나 결과는 달랐습니다. 고린도 전도는 대 성공이었고, 결국 신약 교회에서 가장 큰 교회가 고린도 지역에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 성공과 실패 사이에 있는 것 >

아덴에서의 실패와 고린도에서의 성공 사이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환경도 유사했고, 전하는 사람도 똑같았습니다. 유일한 한 가지 차이는 십자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었습니다. 똑같은 인생이지만 성공과 실패 사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십자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성공의 원천이요 능력의 원천입니다.

왜 십자가에는 그런 능력이 나타납니까? 본문 4-5절을 보십시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십자가를 전하면 성령님께서 임하시고,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어떻게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까? 그에게는 힘도 없었고, 돈도 없었고, 자기편도 없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십자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하나로 그는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앞세우면 산과 같은 문제도 정복할 수 있지만 자기를 내세우면 작은 문제에도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자기’가 오늘날 각종 문제의 시발점입니다. 십자가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반대는 자기입니다. 십자가를 앞세우면 영혼이 살지만 자기를 앞세우면 영혼이 죽습니다.

< 기독교인 삶의 핵심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

병든 종교는 항상 “내가 얼마나 했느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믿음은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느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의 핵심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자기를 죽이고 십자가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십자가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 할 것입니다.

기독교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십자가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문제 해결책은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요새 많은 교회가 어렵습니다. 교회부흥의 유일한 방법도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요새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녀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도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요새 행복의 파랑새를 좇는 분들이 많습니다. 행복도 바로 십자가에서 옵니다. 오직 십자가의 사랑만이 선한 변화, 선한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만이 우리에게 행복을 줍니다. 그 사랑 안에 치유도 있고, 문제 해결도 있고, 축복 받는 비결도 있습니다. 우리가 능력을 받아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는 길도 바로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항상 십자가의 사랑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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