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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창세기 4장 1-8절)

by 【고동엽】 2022. 12. 10.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

오늘 본문은 인류의 첫 살인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 1절에는 가인의 출생에 관해 기록되어 있고 2절에는 아벨의 출생에 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에 관한 얘기는 앞으로 인류에게 있게 될 선악의 투쟁사의 첫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장에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죄와 떼어지려야 떼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름지기 죄가 신나게 좋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죄를 싫어하면서도 죄를 떨쳐버릴 수 없기에 바로 거기에서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 싹트게 됩니다. 이 고뇌와 고통을 제일 먼저 실제적으로 경험한 자가 누구인가? 바로 인류의 첫 살인자 가인입니다..

왜 가인이 아벨을 죽이게 되었습니까? 본문 3-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열납하다'는 말은 ‘관심을 두다, 기쁘게 보다, 존중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런 표시를 했을까요? 아벨의 제물은 제물이 열납된 표시로 하늘에서 빛이 번쩍 해서 그 제물을 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물에는 그런 표시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어떤 예배를 기뻐하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1.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

왜 하나님께서 땅의 소산으로 드린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고,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린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셨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치 제물을 보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헌금을 보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은 받은 이유를 말할 때 가인은 땅의 소산, 즉 세상적인 것을 드렸고, 아벨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양의 첫 새끼와 성령님을 상징하는 기름, 즉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드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물 때문에 가인과 아벨을 차별한 것이 아닙니다.

아벨은 제사를 드릴 때 무엇으로 드렸습니까? 히브리서 11장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그 구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적고 있습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드렸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고기 잡수시고 싶어서 아벨의 제물만 열납한 것이 아니라 아벨의 제물에 담긴 믿음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무엇으로 드렸을까요? 형식으로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어떤 제물을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가인처럼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려도 되지만 형식적으로 드리지 말고 아벨처럼 마음과 정성을 담아 믿음으로 드려야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실 것입니다.

2.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가인과 아벨의 영화를 보면 가인이 밀을 베어서 한 아름 되는 밀을 제단에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까운 생각이 들어 반 단을 도로 갖고 갑니다. 그리고는 그것도 아까워하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니 연기가 다 그에게로 가 눈물이 납니다. 연기를 피해 도망가는 그에게 연기가 따라갑니다. 아까워하면서 바치는 그의 예물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아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로 양 중에 제일 아름답고 토실토실 살찐 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그것을 바치니 연기가 하늘로 좍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 최고의 것을 주님께 바치게 됩니다.

가끔 보면 “예배드리면 축복 받는다!”고 생각하고 축복에 관심을 두고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를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드리면 축복받는다!”는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도 가인의 예배가 있고 아벨의 예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그것은 마음과 생각을 예배에 집중하고,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 즉 재능, 물질, 시간 등을 힘써 동원하여 예배를 잘 드리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제일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산만한 것입니다. 하는 것은 많지만 창조적이고 가치 있는 것은 적고 왠지 인생 전체가 산만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이 잘할 수 있는 전문 분야가 없습니다. 반면에 성공하는 사람의 제일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집중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에너지와 재능과 시간을 가치 있는 것과 중요한 것에 집중합니다. 자연히 자기만이 잘할 수 있는 전문 분야가 생기고 대개 성공이 뒤따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성도, 축복받는 성도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자훈련도 필요하고, 셀 그룹 활동을 잘하는 것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봉사를 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축복과 저주를 좌우하는 바로미터입니다. 인류의 첫 살인자 가인과 첫 순교자 아벨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예배의 차이’였습니다. 왜 사울이 저주받았습니까? 무엇보다 예배 문제에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왜 다윗이 축복 받았습니까? 무엇보다 예배 문제에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하나님의 축복을 이끌어내는 최상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3. 자기를 드리는 예배

히브리서 11장 4절 말씀을 보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아벨은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즉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는 2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믿음으로’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드림으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라는 내적인 신앙도 좋아야 하지만 ‘드림으로’라는 외적인 신앙도 좋아야 합니다. 드림이 없고, 드림을 기뻐하지 않는 예배는 결코 바람직한 예배가 아닙니다.

특별히 드릴 때 우리가 드려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시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단순히 “아벨의 제물을 열납했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말은 아벨이라는 사람 자체를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5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단순히 “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않았다”고 표현하지 않고,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가인이라는 사람 자체를 받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런 표현들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물질보다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더 원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물질을 많이 드려도 자신을 드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자신을 드리지 않고 복만 구하면 그 기도는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헌신입니다.

빅터 프랭클의 '곡예사의 헌신'이라는 책을 보면 한 난쟁이 곡예사가 나옵니다. 그는 거꾸로 서서 공과 접시를 돌리며 먹고살았는데 나이가 들어 그것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그를 성당에 데려다 사는데 그때부터 그의 얼굴에 생기가 사라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에서 “누구든지 자기 재능을 드리면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을 듣고 그가 생각합니다. “내 재능은 거꾸로 서서 접시 굴리는 것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드리자.” 그래서 새벽마다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발가락으로 접시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매일 새벽 혼자 재주를 부리면서부터 그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청소부가 성당청소를 하려다가 난쟁이가 거룩한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요상한 재주를 부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신부님에게 달려가 일러바쳤습니다. 신부님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새벽에 숨어서 지켜보는데 난쟁이가 먼저 무릎 꿇고 나서 “성모님! 저의 재주는 이것뿐입니다.”라고 말한 후 온갖 쇼를 다 부리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보고 신부님이 혼내주려고 일어서는데 환상 중에 갑자기 성모 마리아가 곡예사에게 다가와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말했습니다. “내가 너의 땀과 눈물을 받아 기쁘단다.” 그 장면에 신부님도 무릎 꿇었습니다. “주님! 저도 난쟁이처럼 저의 전부를 드리게 하소서!”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우리를 드리면 반드시 깊은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헌신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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