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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창세기 3장 20-24절)

by 【고동엽】 2022. 12. 10.

항상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창세기 3장 20-24절
< 심판 후에 있었던 일의 교훈 >

오늘 본문은 죄로 인해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 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3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 3가지 일을 통해서 우리는 3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까? 어떤 교훈입니까?

1. 절망 중에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아담이 하와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얼마 전에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아내의 이름을 ‘이제 곧 죽을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모든 산 자의 어미’라고 지은 것을 보면 아담이 절망 중에도 희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처럼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도 우리는 결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하와가 자신의 이름을 ‘하와’라고 지어준 아담을 통해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습니까? 아마도 심판의 말씀으로 크게 상심한 그녀의 마음에 아담으로 인해 새로운 희망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는 살면서 힘들고 지친 심령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희망의 말을 많이 해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말한 대로 희망적인 역사가 반드시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창세기 3장 16-19절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죄를 지은 대로 심판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본문 21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어 치마를 한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시고 그들을 위해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처럼 가죽옷을 친히 준비하시고, 그 가죽옷을 친히 입혀 주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선하신 하나님입니까?

가죽옷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먼저 짐승이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없었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죄 때문에 죽어가는 짐승을 보면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옷을 입을 때마다 죄의 무서움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동시에 느꼈을 것입니다. 그때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려주는 가죽옷을 제공하기 위해 대신 죽은 짐승은 어린양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가죽 옷에 담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느끼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트랩(Trapp)이란 사람은 말했습니다. “죄수가 쇠고랑을 볼 때마다 자신의 도둑질이 생각나듯이 우리도 우리의 옷을 볼 때마다 우리의 죄와 하나님의 자비가 생각난다.” 우리가 옷을 입을 때마다 하나님의 가죽옷을 생각하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한 열심히 노력해보지만 일이 안될 때마다 하나님의 가죽옷을 생각하고, 자신의 죄와 허물과 단점이 드러날 때마다 하나님의 가죽옷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 가죽옷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수많은 단점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긍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족해도 우리는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3. 항상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지만 공의는 공의대로 지키십니다. 그래서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지 못하도록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어보내어 땅을 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조치를 취하셨습니까? 본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에덴동산은 주인 잃은 동산처럼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천사를 통해 지키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후일에 에덴에 합당한 사람들을 에덴에 들이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즉 에덴동산을 그대로 둔 것에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오묘하신 계획과 섭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 구절에서 “에덴동산 동편에 천사들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 동편으로 쫓겨 갔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그 구절과 관련해서 존 스타인백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에덴의 동쪽’이란 영화가 나왔습니다. 그 영화는 한 가정의 불행한 역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불행을 그린 영화입니다.

결국 에덴의 동쪽은 어디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에덴의 동쪽은 ‘하나님이 없이 사는 장소’를 말합니다. ‘에덴의 동쪽’은 하나님이 있어야 인간과 가정은 행복하다는 것을 강하게 말해 줍니다. 이제는 에덴의 동쪽에서 예수님이 내신 길을 통해 에덴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끔 인생의 가시와 기도 제목을 주십니다. 그 순간에는 힘이 들지만 나중에 그것이 나의 영혼을 지켜 주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적절한 짐과 기도제목을 지워 주실 때가 많습니다. 기도 응답이 꼭 짐을 덜어주시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짐이 덜어지지 않아도 짐을 질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주시는 것으로 주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더 기도하는 기회로 삼고, 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가시가 있고,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만날 때 드리는 기도는 정말 간절한 기도가 됩니다.

미국에서는 가끔 지진이 납니다. 한번 흔들면 그때 교회 참석 인원이 많아지고 기도소리가 간절해집니다. 그래서 미국에 계신 저희 교단 동료 목사님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 심하게 흔들지 마시되, 가끔 흔들어주세요.” 사람은 조금 흔들려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풍요를 자랑하지 말고 무엇보다 기도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 시간은 어떤 시간보다 소중한 시간입니다.

교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1996년 국민소득 1만 불이 넘어서면서 교회 출석률이 40%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일에 들로, 산으로, 사업장으로 간 것입니다. 기도원은 해마다 인원이 30% 씩 급감하여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합니다.

반대로 우리나라 교인 출석률이 가장 좋았던 때는 육이오 때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교회 출석률이 95% 까지 갔습니다. 그런 면을 보면 어려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26장 2절을 보면 “저주란 까닭 없이 이르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떠나면 불행하게 된다는 말이고, 거꾸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

하나님 안에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생각하고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의 가는 길이 막히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막힌 것을 뚫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표시는 죄를 범했을 때 고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죄에 처해도 고통과 더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마치 돼지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 더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와 죄인의 차이는 “죄를 지었느냐? 짓지 않았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도와 죄인은 죄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가 다릅니다. 성도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죄에 미끄러져 들어가긴 하지만 죄를 혐오합니다. 그러나 죄인은 죄 가운데 뛰어들어 그 죄를 즐깁니다.

성도가 죄를 짓고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음성이 더 이상 따뜻한 음성으로 들리지 않고, 영혼의 전에 불빛이 꺼지기 시작하고, 마음의 온기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범죄했다고 해서 구원을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범죄를 하면 구원이 주는 기쁨을 상실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일로 회개하면서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소서.”(시 51:12) 지금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인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마음속에 하나님 안에서의 큰 즐거움이 있는가 여부를 보면 됩니다.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복원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을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입니다. 그것 외에는 어느 누구도 우리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기쁨의 원천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을 빼앗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입니다.

성도가 기쁨을 상실한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지만 구원받았어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중단된 사람도 역시 불쌍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으면서 그 죄를 즐길 수는 없게 만드셨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항상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고 에덴의 삶을 회복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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