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비저너리 13세기 사랑의 성자 성 프랜시스는 당대의 재벌 2세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공허를 느끼고 홀로 말을 타고 교외로 나갔습니다. 말을 달리던 중, 그는 온 몸이 문드러져 소름끼치게 생긴 문둥병자를 만났습니다. 신비한 감동에 이끌려 그는 말에서 내려 돈을 주고 문둥병자의 손에 입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에 올라타 가다가 왠지 뒤를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멀리서 돌아보니 거기에 문둥병자는 없었고 예수님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맹렬히 낮은 자와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십자군 전투에서 돌아오는 한 노병을 만났습니다. 노병은 누더기 옷을 입고 쓸쓸히 빼빼 마른 말을 끌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찬 바람이 불자 노병이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프랜시스는 자기의 망토를 그에게 씌워주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 예수님이 그가 벗어준 망토를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가장 더러운 모습은 남을 더럽게 보고 내치는 모습이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남을 아름답게 보고 껴안는 모습입니다. 약자에게 가까워질수록 전능자에게 가까워집니다. 큰 사람을 기쁘게 대접하는 것은 작은 대접이고, 작은 사람을 기쁘게 대접하는 것은 큰 대접입니다. 저 낮은 곳에 민감해질수록 저 높은 곳에 민첩해집니다. 약자를 얕보는 자는 최대의 약자이고, 장애자를 멸시하는 자는 최대의 장애자입니다. 공허는 무관심의 열매입니다. 약자는 하나님이 우리의 공허한 삶을 채우려 보낸 사랑의 편지입니다. 큰 자를 찾는 자는 작은 자이고 작은 자를 찾는 자는 큰 자입니다. 큰 사람은 내게 주어진 작은 선물이고, 작은 사람은 내게 주어진 큰 선물입니다. 부를 가짐이 행복이 아니라 부를 나눔이 행복입니다. 내 것을 나눌 사랑의 대상이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사랑의 대상인 하와가 생긴 때부터 아담의 행복은 시작되었습니다. 행복은 나눌 줄 아는 철든 인생에게 주어집니다. 주는 재미가 최고의 재미입니다. 받는 가치관은 ‘상처의 어머니’이지만, 주는 가치관은 ‘행복의 어머니’입니다. 기복주의와 이기주의는 있던 복까지 앗아갑니다. 복은 병자에게 소망을 주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자에게 벗이 되어 주고, 살맛을 잃은 자에게 살맛을 줄 때 옵니다. 약자에게 민첩하게 다가갈 때 복은 바람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있는 사람을 찾아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기대하는 것’보다 ‘없는 사람을 찾아 그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대기하는 것’이 행복의 씨앗입니다. 남의 부족을 신나게 채우려 할 때 나의 부족은 신비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자기 응석을 받아달라는 이기심의 껍질을 깰 때 하늘의 열린 문이 보일 것입니다. 진짜 비저너리(visionary)는 미래를 환히 내다보는 자가 아니라 고통의 현장에 동참해 하늘을 맛보는 자입니다. (060509)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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