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의 가치관이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에도 이러한 영향으로 교회 세속화, 상황윤리, 자유주의적 신학사상의 문은 넓게 열리고 성경중심의 복음주의적 신앙의 문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습니다. 교회들조차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점점 넓은 문을 선호하면서 많은 교회들은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열쇠를 상실한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계층에서 교회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려는 풍조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심화될까요?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불공평한 일이긴 하지만 성도들의 가족 및 주위 사람들은 성도들의 신앙을 저울에 달아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그 태도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나야 합니다.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아무리 귀한 직분을 가졌어도 향기로운 냄새가 나지 않으면 복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눈으로 친구를 얻지만 신앙인은 대개 코로 친구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냄새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냄새가 있다면 남녀끼리도 통하고, 인종이 달라도 통하고, 가난한 자와 부자도 통하고,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도 통합니다. 오늘날 마음이 통하는 신앙인이 적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앙인의 냄새가 나지 않거나 그 냄새가 악취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기에 향기를 발하는 신앙의 동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왜 신앙인의 냄새가 점차 희미해질까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받는 사람의 리듬이 맞추어질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고, 은혜는 은혜를 받는 사람이 은혜를 깨달을 때 더 주어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와 명예'란 사닥다리를 딛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지만 사랑과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결국 높은 곳에서 발을 헛디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열린 시야를 가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면 우리로부터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십대 소녀가 새해 전날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친구들이 밤을 같이 새며 즐겁게 놀자고 권유했습니다. 그러자 이 소녀는 말했습니다. "나는 밤 11시까지는 꼭 집에 들어가야 해. 아버지께서 기다리셔!" 그러자 그녀의 친구들이 약을 올렸습니다. "너, 아버지 무서워서 그러니?" 그러자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아냐, 아버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세상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는 것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큰 기쁨은 피조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일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 있음을 느낄 때 우리의 슬픔은 기쁨이 되고, 우리의 눈물은 미소가 될 것이며, 우리의 고난은 만족이 될 것입니다. 어두운 밤을 갈 때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간다면 오히려 낮보다 밤이 더 좋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향기로운 삶을 원하시면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어떤 위대한 일을 시작할지라도 그 일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나보다는 주님을 더 사랑하고, 적어도 돈보다는 주님을 더 사랑하고, 적어도 세상보다는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등진 채 꿩 먹고 알 먹기 위해 세상을 따라가지만, 결국 꿩도 잃고 알도 잃게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길이 많으신 하나님! 오직 그분만을 의지할 때 우리의 넉넉한 마음이 주변 사람들에게 향기로 표출될 것입니다. 사람이 때때로 이슬이 반짝이는 꽃 잎새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에게서 행복의 냄새를 맡게 됩니다. 악취가 만연한 세대에서 아름다운 하늘의 향기를 풍기는 향내 가득한 성도가 되어 가정을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지 않겠습니까?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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