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4월의 예화 {목록 돌아가기} |
365일 예화[ 4월 1일]겸손한 위인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튼은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우주에 관해 아는 지식은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다의 신비에 대해 아는 지식보다 적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할 것이다.”
이런 겸손의 모습은 슈바이쩌 박사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선교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지을 때, 나무를 베고 운반하고 못질하는 일을 직접 했습니다. 그때 혼자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슈바이쩌는 옆에 있던 한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저는 지식인이어서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막일은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슈바이쩌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도 자네만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네. 그러나 웬만큼 배웠다 싶으니까 이젠 아무 일이나 다 하겠더군.”
세계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는 알버트 슈바이쩌 박사가 그 당시 지식인들이 꺼려하던 막일을 했다는 것은 그의 겸손을 보여주는 좋은 일례입니다.
일찍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렇듯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같은 주님의 겸손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365일 예화[ 4월 2일]어머니의 유언
아브라함 링컨은 인디아나 주의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몹시도 가난했던 그는 어머니로부터 글과 성경을 배웠습니다. 링컨은 어머니의 가르침 가운데 자라났는데, 어머니의 지식과 성품과 신앙과 사랑이 어린 시절 그가 받았던 최대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링컨이 11세가 되던 해에 어머니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오자 사랑하는 어머니는 링컨의 손을 꼭 잡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얘야! 나는 너를 두고 하나님 앞으로 먼저 간다. 나는 네게 좋은 집도, 좋은 땅도, 많은 재산도 물려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네게 이 성경책 한 권을 유일한 유산으로 주고 간다. 너는 한 평생 이 가운데 있는 말씀으로 보배를 삼고, 재산을 삼고, 양식을 삼아 이 교훈대로 살아 나가거라. 그러면 네 길이 형통할 것이다.”
어머니는 이 말을 하고는 그만 숨을 거두었습니다.
링컨은 그 어머니의 유언대로 성경을 애독하며 그 교훈대로 살기에 힘썼고, 마침내 미국의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흑인들을 노예 제도로부터 해방시키는 큰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365일 예화[ 4월 3일]말씀의 위력
어떤 청년이 주일마다 교회에 가는 길목에서 항상 빈둥거리고 놀고 있는 소년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아이들에게 전도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주일 아침 평소보다 일찍 나와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여기에서 하루 종일 놀지 말고 나와 함께 교회에 가지 않을래?”
그러자 그들 중 네 명이 따라왔는데, 그들은 각각 자기에게 적당한 반에 들어가 주일학교 교육을 착실히 받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네 명의 소년들은 모두 장성해서 각자 자기의 길로 갔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던 그 사람은 60회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생일을 맞은 그는 과거에 자신이 전도했던 그 네 명의 소년들로부터 각각 생일 축하 카드를 받았습니다. 한 통은 연방부의 은행 총재로 부터,
한 통은 중국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목사로부터, 한 통은 당시 대통령이던 후버의 비서관으로부터, 그리고 마지막 한 통은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직접 보낸 카드였습니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빈둥거리며 놀던 소년들에 불과했지만 영혼 구원에 깊은 관심을 갖고 다가섰던 한 청년에 의해 위대한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잘 배우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그의 장래가 형통케 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365일 예화[ 4월 4일]믿음과 감사
옛날에 미국에 살던 햄크스라는 사람은 광산에서 일하다가 부상하여 일찍이 두 눈이 멀게 되고 두 손을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몇 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그는 금식하면서 굶어 죽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몇 일을 굶고 있던 중, 하루는 예일 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강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청하러 갔습니다.
그 교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다.”라는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이를 듣고 귀가 솔깃해진 그는 강연이 끝난 후, 그 교수를 만나 “나같이 눈도 없고 손도 없는 인간에게 무슨 사명이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는 “당신에게는 아직 입과 귀와 발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남아있는 것들을 가지고 얼마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햄크스는 그 교수의 말에 전광 같은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는, 곧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입과 귀와 발을 남겨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믿음과 감사는 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면서 적극적으로 환난과 역경을 이겨낸 그는 졸업 후 미국의 대강연가 중 제 일인자가 되어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365일 예화[ 4월 5일]지금 비어 있는 자리가 없다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마치 성자와도 같은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았고 행동은 정결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척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평온하실 수 있는지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선생님에게는 시험이나 유혹이 닥치지 않나요? 죄가 주는 쾌락이 선생님을 금지된 길로 유혹한 적은 없나요? 만일 유혹을 받으셨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러자 랍비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너희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다. 너희들을 괴롭히는 악한 죄의 유혹이 왜 내게인들 없겠느냐. 그러나 그러한 유혹이 마음을 두드릴 때 나는 사단에게 단호히 명령한다. ‘지금 내 마음에는 비어있는 자리가 없다!’라고.”
실로 랍비의 마음 안에는 세상을 이기시는 하나님으로만 가득했기 때문에 죄악이 들어설 빈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과연 하나님으로 충만합니까? 그래서 우리를 유혹하려 드는 사단을 향하여 단호히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 비어있는 자리가 없다!”라고
365일 예화[ 4월 6일]복받는 비결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찰스 피니는 원래 훌륭한 판사였습니다.
미국의 재판관들은 성경의 모세 오경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법률이기 때문에 모세 오경을 연구하여 하나님께서 법을 어떻게 제정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인간들의 죄를 다루셨는지를 배운다고 합니다.
피니 역시 성경을 사다 놓고 자세히 연구하며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무신론자였던 그는 성경을 열심히 읽던 중 큰 감명을 받아 신앙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커다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째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못사는가?”
깊은 번민 속에서 성경을 더욱 자세히 읽는 중에 피니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32,500가지의 약속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에 전제되어 있는 순종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가까이 함으로 변화를 받은 피니는 결국 소명을 받아 판사직을 포기하고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365일 예화[ 4월 7일]탐욕을 품게 되면
쥐를 100마리씩 두 그룹으로 분류하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쥐들은 사람과는 달리 포만감을 느끼면 더 이상 먹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쥐가 포만감을 느끼는 양을 조사해 보았더니, 쥐 한 마리당 하루에 평균 100Kcal정도임을 알았습니다.
첫번째 그룹의 쥐 100마리에게는 좋은 환경과 넉넉한 음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그룹은 포만감을 느낄 정도보다 약간 적은 85Kcal만큼의 양을 주되, 3회로 나누어 공급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육한 후에, 이 두 그룹에 암을 유발시키는 화학물을 주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첫번째 그룹의 발암 정도는 65%, 두번째 그룹은 4%로 나타났습니다.
그 이유를 조사해 보았더니, 65%나 되는 첫번째 그룹의 쥐가 암에 걸린 것은 병원균과 싸워서 이기게 하는 요소인 T임파구가 과식으로 인해 무력하게 되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첫번째 그룹의 쥐들이 느낀 포만감이 결국은 쥐의 생명에 위협을 주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탐욕을 품게 되면 우리의 영혼에 침투하는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되어 결국 우리의 영혼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365일 예화[ 4월 8일]최선을 다할 때
미국 스탠다드 석유 회사의 점원이었던 아치볼드라는 사람은 유난히도 그의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는데, 심지어는 호텔에서 숙박계를 쓸 때에도 자기의 이름을 쓰지 않고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자기 회사의 석유 가격과 이름을 적곤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와 대화할 때에도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는 말을 먼저 한 후 용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사장 록펠러가 이 아치볼드라는 사원을 불렀습니다. 록펠러는 이 평사원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면서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스며 있는 애사심(愛社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그가 얼마나 회사를 위해서 열심으로 충성하는지 알고는 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록펠러는 아치볼드야말로 스탠다드 석유 회사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치볼드는 후에 록펠러의 뒤를 이어 세계 최대의 석유 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일이 어떤 종류의 일이든지 충성된 청지기로서 맡겨진 일들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믿으시고 더 많은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365일 예화[ 4월 9일]가필드 대통령의 선서
미국의 제20대 대통령인 제임스 A. 가필드가 대통령 취임식을 하던 때의 일입니다.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시간에 가필드는 양복 주머니에서 작은 성경을 꺼내더니 양해를 구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대심원장님께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성경으로 선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것은 가필드가 소년 시절 집을 나올 때 그의 어머니께서 주신 성경이었습니다.
“이 성경은 제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 것으로,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로 하여금 성경 말씀대로 나라를 다스리도록 인도해 줄 것입니다.”
결국 가필드는 배의 선원으로, 그리고 농장의 일꾼으로 지냈던 어렵고 힘든 시절에 그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던 그 성경에 입을 맞추고, 앞으로의 올바른 통치를 다짐하는 선서를 하였습니다.
일찍이 유다의 왕이었던 솔로몬은 “야웨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가필드 대통령처럼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 중심으로 사는 삶, 이것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말씀대로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
365일 예화[ 4월 10일]예수를 믿기 위해
인도의 날라마람이라는 곳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여인이 매우 남루한 옷을 입고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선교사는 예배가 끝난 후 그 여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왜 이런 옷차림으로 예배에 참석했나요?”
그러자 그 여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제일 좋은 옷인 걸요.”
선교사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당신은 항상 그렇게 가난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그렇지 않습니다. 전에는 저에게도 보석이 있었고 돈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의 깡패 권력자가 재산을 다 가로채어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믿는 예수만 버리면 빼앗아간 돈과 보석들을 전부 돌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전처럼 돌아가서 재산을 다시 찾아 잘 살지 않습니까?” 하고 선교사가 넌지시 물어보자 여인은 아주 신중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비록 가난하게는 살아도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불신자로 사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365일 예화[ 4월 11일]하루살이의 어리석음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친구가 되어 정답게 놀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해가 지는 저녁이 되자 메뚜기는 하루살이에게 “얘, 하루살이야. 오늘은 이만 놀고 내일 다시 놀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하루살이는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얘, 메뚜기야. 내일이라는 게 뭔데?”
메뚜기는 열심히 내일에 대하여 설명하려 했습니다.
“내일이라는 것은 캄캄한 밤이 지나고 나면 동쪽에서부터 밝은 빛이 나오고, 그 밝은 빛이 나오면 찬란한 아침이 있는 그 때가 내일이라는 거야.”
그러나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하루살이는 내일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메뚜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너의 말은 도무지 이해가 안돼. 너는 지금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틀림없어. 너하고 다시는 안 놀아.”
하루살이가 화를 내며 가버리자 메뚜기는 “내일이란 틀림없이 있는데……”하며 중얼거렸습니다.
내일의 천국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인 줄 알고 이 땅의 것에 애착을 갖지만 천국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365일 예화[ 4월 12일]의사의 욕심
대저택에 살고 있는 한 부인이 시력을 거의 잃게 되어 자기 집으로 의사를 불러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웠던 이 의사는 치료보다는 대저택에 있는 고급 가구에 욕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틀째 되는 날부터 치료를 핑계로 부인의 눈에 붕대를 감고는 가구들을 하나씩 빼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가량 치료하자 부인의 시력은 회복되었으나, 부인의 집에는 쓸만한 가구가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치료비를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치료비를 지불할 까닭이 없다고 주장하여, 결국 두 사람은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은 부인에게 왜 치료비를 지불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눈이 완쾌되었을 때 치료비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치료 결과 지금 제 눈은 더 나빠졌습니다.”
그 부인의 말인즉, 치료를 받기 전에는 집에 있는 가구가 어렴풋이나마 보였지만 하루하루 치료를 받을수록 가구가 보이지 않더니 이제는 하나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눈이 더 나빠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욕심 많은 의사의 도둑질에서 비롯된 것임이 밝혀졌고, 그는 구속되었습니다.
365일 예화[ 4월 13일]화목한 비결
화목하기로 소문난 가정에 한 친구가 찾아와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대답하기에 앞서 장남을 불렀습니다.
“얘야, 뒤뜰 감나무에 가서 감 한 광주리만 따오거라.”
친구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막 파랗게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 감을 따오라고 시키다니…. 과연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할까?’
그러나 주인의 장남은 아버지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또 주인은 차남을 불렀습니다.
“외양간에 가서 소를 끌어다가 지붕에 올려 놓거라.”
이번에도 친구는 이해할 수 없는 심부름에 깜짝 놀랐으나, 주인의 차남은 사다리를 놓고 소를 지붕으로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친구는 그 가정이 화목한 비결이 바로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아들들의 순종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이와같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65일 예화[ 4월 14일]두 종류의 삶
로마의 역사상 가장 악한 황제로는 단연코 네로를 손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한 최대의 사치와 부를 누렸으며, 신하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겁탈하기도 했고 부인과 어머니와 자신의 아들조차 누명을 씌워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한 로마의 시가지에 불을 지른 후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시를 읊기도 했으며 그 죄를 기독교인들에게 덮어씌워 무참히 박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반란군에게 쫓겨 3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한편 그와 동시대에 살았으나 전혀 반대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는데, 곧 사도 바울입니다. 높은 학식을 소유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이후 권세와 부귀의 길을 저버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당하며 매를 맞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그 무엇도 그의 담대하고 확고한 신앙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같은 시대에 한 사람은 육신의 삶에만 관심을 가진 채 자신을 위해서 살아갔고, 또 한 사람은 오직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바라보며 의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365일 예화[ 4월 15일]그리스도인의 의미
교회에 다니기는 하나 유흥가에 출입하는 것을 즐기는 젊은 부인은 그녀의 영적인 상태를 염려하는 그녀의 친구로부터 여러 번 충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 부인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왜 유흥장에 가서는 안된다는 말인가”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다음과 같이 예로 들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 물론 네 말이 틀리지는 않아. 그런데 작년 여름에 내가 친구들과 탄광을 견학 갔을 때의 일이었어. 그날 한 젊은 여자가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지. 내가 그녀에게 그런 옷차림으로는 견학이 힘들겠다고 충고했더니, 그녀는 안내원에게 묻는 거야. ‘흰 옷을 입고는 갱 안에 들어갈 수 없나요?’ 그 때 안내원은 이렇게 대답했어.‘됩니다. 흰 옷을 입었다고 갱 안에 못 들어가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갱에서 나올 때는 입고 있던 흰 옷이 더럽혀져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너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깨끗함을 받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심령의 놀라운 평안을 맛보았지. 그런데 네가 여전히 세상 향락을 좋아해서 술취하고 방탕하고 어둡고 더러운 곳에 간다면, 흰 옷과 같던 네 심령은 금방 더러운 넝마로 변하고 말 거야.” 그리스도인들은 죄로부터 정결케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365일 예화[ 4월 16일]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우리는 여기서 심히 슬퍼하시는 구세주의 모습을 봅니다. 갈보리만큼 그리스도의 슬픔을 잘 나타낸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갈보리에서도 오늘 본문에 나오듯이 주님이 하늘을 향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을 때만큼 그 고통이 극심하게 나타난 곳도 없습니다. 이 순간에는 주님이 통과하셔야 했던 그 수치와 굴욕감에서 오는 심한 정신적 고통에 육신적인 나약함까지 겹쳤습니다. 게다가 그 슬픔을 극대화시킨 것은, 주님이 그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격리되는 고통,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영적인 고통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에게 있어서 깜깜한 공포의 한밤중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때 고난의 심연 속에 빠지셨습니다. 이 세상에 주님이 부르짖은 이 몇 마디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우리도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하나님 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구름과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정말 그를 버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사랑을 조금만 거두어 가도 슬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정말 그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 우리는 그 극심의 정도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은 종종 불신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주님의 경우는 하나님이 정말로 한동안 주님으로부터 돌아서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한때는 하나님의 얼굴빛에서 나오는 광채로 살았으나 지금은 흑암 가운데 살고 있는 불쌍하고 낙망한 영혼이여, 하나님은 정말 여러분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구름 속에 숨어 계신 하나님은 그 모든 은혜의 광채 속에서 빛을 발하시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생각만 해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주님께서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을 때의 고통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365일 예화[ 4월 17일]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1:19) | |
우리는 십자가 밑에 서서 주님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서 흘러 나오는 보배로운 붉은 피를 봅니다. 그 피는 구속과 대속의 효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배롭습니다.” 그 피로 그리스도의 백성들의 모든 죄가 대속됩니다. 율법 아래 놓여 있던 그들이 그 피로 율법에서 구속을 받습니다. 그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또 깨끗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배롭습니다. 그 피는 “모든 죄로부터 깨끗게 합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사 1:18). 예수님의 피 때문에 어떤 성도 위에도 얼룩이나 주름이나 그와 비슷한 것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 보배로운 피, 그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합니다. 주님의 피는 우리로부터 무수히 많은 죄와 불법의 얼룩들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께 반항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주님 안에서 용납되어 그 앞에 설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또한 보존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배롭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뿌리신 피 아래 있기 때문에 파멸시키는 천사로부터 안전합니다. 우리가 멸망당하지 않고 살아 남게 된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 피를 보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 피는 또 우리의 믿음의 눈이 희미해질 때 우리의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눈은 여전히 그 피를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또 성화시키는 영향력이 있어서 “보배롭습니다.” 죄를 없앰으로써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그 피가 칭의 이후에도 계속 역사하여 우리의 새 본성이 계속해서 죄를 정복하고 하나님의 명령들을 좇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줍니다. 예수님의 정맥에서 흘러나온 피보다 더 강력하게 거룩해져야 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피는 이기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배롭습니다.” 말할 수 없이 보배롭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이겼다”(계 12:1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 피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싸우는 자는 패배를 모르는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그 피 앞에서 죄는 죽고 사망이 더 이상 그 힘을 발하지 못합니다. 천국 문이 열립니다. 예수님의 피! 그 능력을 믿는 한 우리는 정복하면서, 그리고 더 정복하기 위해 계속 행진해 나갈 것입니다 |
365일 예화[ 4월 18일]아내의 말 한마디
아내의 말 한마디
한창 정치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루스벨트는 39세 때에 갑자기 소아마비에 걸려 보행이 곤란해졌다. 그는 다리를 쇠붙이에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절망에 빠진 그가 방에서만 지내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아내 엘레나 여사는 비가 그치고 맑게 개인 어느날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비가 온 뒤에는 반드시 이렇게 맑은 날이 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뜻하지 않은 병으로 다리는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당신 자신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여보,우리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아내의 말에 루스벨트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불구자요. 그래도 나를 사랑하겠소?”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그럼 내가 지금까지는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했나요?”
아내의 이 재치있는 말에 루즈벨트는 용綬?얻었다. 장애인의 몸으로 대통령에까지 당선되어 경제공황을 뉴딜정책으로 극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아내의 말 한 마디가 남편의 인생을 결정한다.
김학중 목사(새안산교회)
365일 예화[ 4월 19일]사랑을 위하여
이 이야기는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한 왕자가 미래의 왕비가 될 아름다운 여성을 찾기 위해 평복을 입은 채 나라 안의 여러 곳을 다니다가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빈민촌에서 한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왕자는 그 여성에게 첫눈에 반했으나 그녀에게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한 나라의 왕자라고 할지라도 사랑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그 여자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침내 왕자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사랑을 위하여 왕자로서의 모든 권리와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그녀가 사는 동네에 목공소를 차리고 목수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이웃들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며 그들의 취미와 관심거리, 언어 생활, 감정들을 나누었습니다. 왕자는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여 그들이 아플 때는 함께 아파하였고 기쁠 때는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왕자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접근해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사 하늘 보좌와 왕관을 버리고 이 땅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질고를 지시고 고난당하신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365일 예화[ 4월 20일]승자와 패자
웨슬리 목사님이 사업에 실패한 어떤 사람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목장을 지나고 있는데 소들이 긴 돌담 옆에서 머리를 쳐들고 넘어다 보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웨슬레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저 소들을 보게. 담장 앞에서 모두들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지 않는가? 우리도 앞을 볼 수 없을 때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앙망해야 승리할 수 있다네.”
승리와 패배는 많은 경우에 당사자의 생각과 마음에 의해 결정됩니다.
승리자는 이유를 알아내자고 하지만 패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승자는 실수를 하면 자신이 잘못했다고 하지만 패자는 자기에게 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승자는 고난을 겪으나 패자는 고난을 피하려고 합니다. 승자는 실행하나 패자는 약속만 합니다.
승자는 자기보다 우월한 사람에게 무엇인가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패자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깎아 내리려고 합니다. 승자는 더 나은 길이 있을 것으로 믿고 연구하나 패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쉽게 포기합니다. 승자는 승리를 했어도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패자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못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365일 예화[ 4월 21일]인생의 우선 순위
에릭 리델은 1924년 올림픽 100미터 달리기 종목에서 우승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하였으며, 또한 실제로도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자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경기가 주일에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 에릭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정해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을 생각할 때, 출전을 포기하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이를 발표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매우 놀라며 그를 조롱하고 바보 취급했습니다. 에릭은 이에 동요하지 않고 주일을 거룩히 지켰습니다.
그런데 평일에 거행된 400미터 경기에 한 선수가 갑자기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에릭은 그를 대신해서 출전하여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훗날 그는 중국 선교사가 되어 복음 전파에 힘썼습니다.
그는 인생의 우선 순위를 바로 정하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나님과의 약속을 먼저 생각했던 것입니다.
365일 예화[ 4월 22일]두려워하는 마음
터어키의 압둘 하미드 2세는 1876년 왕위에 오른 후, 1909년 폐위되어 추방당했습니다. 그는 늘 암살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일디즈 궁에서 살았는데 항상 그 궁을 삼엄하게 경비하도록 하였습니다. 외부인이 왕을 접견할 수 있는 방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방문자는 방 한 가운데 혼자 앉아서 왕을 접견하였습니다. 발코니에는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정교하게 만든 창살막이가 있었는데, 왕은 그 뒤에서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방문자가 갑자기 권총을 빼어 들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하여 마구 쏘아 대지 않을까 해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말을 했습니다. 압둘 하미드의 거실에는 경보장치와 비밀 문이 있고 구석구석마다 거울을 세워두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이 실제로 현실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을 주는 영적 세력과 싸워야 하는데, 이 싸움의 첫 단계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예수님께서 이미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멸하셨다는 것을 굳게 믿고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자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없으며 그의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룹니다
365일 예화[ 4월 23일]창경원에서 생긴 일
어떤 목사님에게 한 집사님이 일곱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이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겼는데 몸이 너무 약해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어머니에게 기대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원래 건강하였는데 얼마 전 창경원을 다녀온 뒤로 갑자기 몸이 나빠졌다고 했습니다. 창경원에서 동물들을 구경하던 중 뱀 우리에서 큰 구렁이를 보고는 너무 무서워하기에 곧장 데리고 집에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자던 아이가 비명을 지르고 진땀을 흘리며 구렁이가 온 몸을 감아 죽이려 한다고 하더랍니다. 그 날부터 이 아이는 구렁이에 대한 공포로 몸부림쳤습니다. 그 아이에게 구렁이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들어오자 마귀가 그 틈을 타서 아이에게 폐종양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병원에서 폐종양 수술을 받고 안정을 찾을 무렵, 마귀가 또 뇌종양이라는 병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연이어 수술을 하게 되자 병원에서는 이 아이의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이는 희망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 아이의 병의 원인이 마귀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머리에 손을 얹고는 예수 이름으로 꾸짖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쫓겨나고 아이는 완전히 병마에서 해방되어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365일 예화[ 4월 24일]생각은 운명을 좌우한다
캐스렐리라는 처녀가 가수가 되기를 원했는데 불행히도 얼굴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녀의 입은 크고 이는 뻐드렁니였습니다. 그녀는 뉴저지의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를 때 이 뻐드렁니를 감추려고 자꾸 윗입술을 오므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해도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한 사람이 그녀의 노래를 듣고 그 재질을 인정했습니다.
“아가씨! 나좀 봐요. 난 당신이 노래하는 것을 주의해 보고 있었는데, 당신은 무엇인가 감추려는 것이 있어. 그 이가 창피한 모양인데…….”
그녀는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오히려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이가 어떻단 말이오. 뻐드렁니가 무슨 죄가 있나? 감추려고 하지 말아요. 당신이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청중들은 오히려 당신을 좋아할 거요.”
캐스렐리는 그 충고를 듣고 자기의 못생긴 이를 생각지 않고 늘 청중을 생각하면서 즐겁게 입을 벌려 노래했습니다. 그녀는 영화와 라디오의 톱스타가 되었고, 많은 희극배우들은 그녀를 모방하려고 애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계발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65일 예화[ 4월 25일]두 천사의 바구니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내려 보내시며, 오늘 하루 동안 드려지는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은 각각 커다란 바구니를 한 개씩 들고 성도들이 기도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찾아다녔습니다. 부잣집이건, 교회건, 학교건 간에 들어가서 사람들의 기도를 마구 담았습니다.
저녁쯤 일을 마친 두 천사는 서로의 바구니를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한 천사의 바구니는 들고 가기 힘들 만큼 무거웠지만, 다른 한 천사의 바구니는 들어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가벼운 바구니를 든 천사에게 어째서 바구니가 그렇게 가볍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는,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이 ‘이것을 해 달라, 저것을 해 달라.’하는 기도만 드렸지, ‘이렇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래서 고맙습니다.’하는 감사의 기도는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구’를 담은 저 친구의 바구니는 가득 찼지만, ‘감사’를 담은 제 바구니는…….”하고 대답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셨을 때에도, 오직 한 명만이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내 자신의 기도에 감사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365일 예화[ 4월 26일]허무와 고독
무역업을 크게 하는 남편을 둔 어떤 자매님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우리 부부는 초년에는 숱한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살 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한 달이면 열흘 이상을 외국에 나가 있고, 집에 돌아오더라도 너무나 바빠서 함께 대화를 나눈다든지 취미 생활을 한다든지 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남편이 외국에만 나가고 나면 마음이 허전해지고 바람기가 일어납니다. 이럴 때면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 오는데, 화투치러 모이자느니 춤추러 가자느니 하고 꾑니다.”
서울 시내에는 외국인 남자 클럽이 있는데, 이 사람들과는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소문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한국을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에 수많은 유한 부인들이 마음 놓고 그들과 놀아납니다. 아무리 그들의 행위를 지탄한다 해도, 그들에게 참된 신앙이 없는 한 이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신앙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실상입니다. 믿는 자라 할지라도 뜨거운 신앙으로 주님의 뒤를 좇지 않는다면, 불분명한 신앙 태도로 인해 세상과 타협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365일 예화[ 4월 27일]긍정적인 사람, 부정적인 사람
두 장애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한 청년은 축구, 레슬링, 권투 등 만능 선수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979년 권투 시합에서 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못쓰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치료를 받고 보조기를 쓰면 혼자서 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에게 산에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정상에 다다르자, 그는 그를 산에 옮겨 준 친구들에게 잠깐만 자리를 피해 달라고 하고는 숨겨 가지고 온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24세였습니다.
다른 한 청년은 어느날 불량배들에게 칼을 맞고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는 투지로 노력한 끝에 낙하산 점프의 묘기를 보였고, 특별 장비를 갖춘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며 혼자서 취사, 세탁, 청소 등을 하며 생활합니다. 그는 또한 휠체어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관한 세 권의 사진첩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동일한 상황에서 한 사람은 죽음을 택했고, 한 사람은 생명을 택했습니다.
성경은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네 앞에 놓았으니 생명을 택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생명을 택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365일 예화[ 4월 28일]마음의 점검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하기 전, 또는 자동차 운전사가 운전하기 전에 먼저 엔진을 점검하듯 우리도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삶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지 매일 아침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나는 긍정적으로 살 것인가?”
“오늘도 나는 하나님을 생명의 근원으로 모시고 믿음으로 살 것인가?”
“오늘도 나의 길을 야웨께 맡기겠는가?”
“오늘도 나는 기뻐하겠는가?”
“오늘 나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가?”
“오늘 나는 낙심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나지도 않을 것인가?”
“오늘 나는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는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은 이 일곱 가지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 일을 마친 다음 정말 이렇게 살았는지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일곱 가지 질문을 자신의 삶 속에 적용시켜 하루를 마무리짓는다면 그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의식의 변화는 우리를 인생의 승리자로 만드는 놀라운 자원이 됩니다.
365일 예화[ 4월 29일]인디언과의 약속
미국의 개척기 때의 사람인 윌리엄 펜에 관한 일화입니다. 그는 다른 백인들과는 달리 인디언들을 존중해 주었으며, 늘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어느 날 인디언들이 그에게 농담으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펜, 자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 땅을 모두 가져도 좋네. 하지만 하루 동안 걸어서 돌아오는 땅만 주는 걸세.”
펜은 그들의 말을 믿고서 다음 날 해가 떠오르자마자 길을 떠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자 인디언들에게로 다시 돌아 왔습니다.
“여보게, 자네들 말대로 오늘 아침부터 걸어서 이제 돌아왔네. 약속대로 땅을 주게나.”
인디언들은 놀랐습니다. 농담으로 말한 것이었는데, 펜이 자신들의 말을 믿고 실행해 준 것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그리하여 인디언들은 약속대로 그가 걸어서 돌아온 땅을 그에게 떼어 주었습니다. 결국 그 땅으로 인해 윌리엄 펜은 펜실바니아의 창설자가 되었고, 오늘날 그 땅은 필라델피아 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무슨 약속이든간에 그것을 제안한 자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 사이에 믿음이 있을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365일 예화[ 4월 30일]한 죄수의 고백
교도소 국제연맹 총무로 있는 존 니켈은 50개국의 교도소를 시찰하다가 아프리카 잠비아의 한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도소는 그가 그 동안 돌아본 교도소 중에서 제일 환경이 나쁜 곳이었습니다. 방이 너무 좁아 누울 자리가 없어 교대로 자야 했으며 화장실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니켈이 방문했을 때 80명의 죄수들은 4부 합창으로 찬송가를 여러 곡 불러주었습니다. 니켈은 ‘이런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찬송을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죄수들은 니켈을 다른 방으로 인도했습니다. 그 방 벽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죄수는 종신형을 받고 그 방에 수감되었다가 얼마 전에 병들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한 죄수가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조금 전에 들으신 합창을 한 합창단 80명은 교도소 목사님 덕분으로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으니 고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에 비추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거할 때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 RED COMPASS 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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