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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6월 예화

by 【고동엽】 2022. 12. 2.
365일 6월의 예화          {목록 돌아가기}
 

365일 예화[ 6월 1일]사랑의 절정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이 다섯 살과 세 살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철길 가에 있는

신발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안고, 업고, 공장으로 출근하여 공장 안에 조그만 방에서 놀게 하고 부인은 일을 했습니다.

따뜻한 어느 봄날, 방안이 답답하다고 두 아이들이 엄마 몰래 철길로 나갔습니다. 철길에서

조약돌 치기도 하고 가위, 바위, 보 놀이도 하면서 놀고 있을 때 기차가 달려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애들이 없다는 소리에 엄마가 뛰어나가 보니 철길에서 놀고 있고 있었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 두 아들을 철길 밖으로 던져 낸 순간 기차가 뛰어들어 엄마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두 형제는 고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라서 어른이 된 후 어머니의 무덤에 조그마한 묘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이 새겨 놓았습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라고. 그

어머니의 사랑의 절정은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일당 몇 백원을 받으며 일했던 그것이

아닙니다.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이 굶고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었던 그것이

아닙니다. 그 기찻길에서 놀고 있던 두 아이의 생명을 건져내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그

사건에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찬송 작사자 하버겔은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위해 무엇 주느냐"라고 읊었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박종순

 

 

365일 예화[ 6월 2일]발렌타인

발렌타인은 고대 로마에 살았던 한 젊은 그리스도인의 이름입니다. 많은 초대교인들처럼

발렌타인은 그의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자주 깊이 사랑하는 자들을 생각했고,

그 자신의 안녕과 그들을 향한 사랑을 알리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감옥 독방 창문 너머,

손이 닿지 않는 한 곳에 제비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그는 몇 개의 하트 모양의 잎들을

뜯어 구멍을 뚫어서 "발렌타인을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냈습니다. 다음날 또 다음날 계속하여 그는 더 많은 메시지들을

보냈는데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였습니다. 이것이 기반이 되어

시작된 성 발렌타인 데이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의 사랑을 보여 주시려고 많은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독생자를 주시어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십시오. 그분께 그분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드리십시오.

 

 

365일 예화[ 6월 3일]도자기공

한 전도사가 도자기 공장 지대에 사는 한 사람을 방문하였다. 그 사람은 젊었을 때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었다. 전도사는 그 집에 도착하여 유리 상자 속에 든 두 개의 좋은

꽃병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야! 참 멋있군요. 아주 귀한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얼마면 파시겠습니까?" 주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전도사에게 말했다. "이 세상 돈을 다

준다 해도 저 두 개의 꽃병은 절대로 팔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술주정뱅이에다 노름꾼이었지요. 말하자면 마귀에게 영혼을 맡겨 놓고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흙 한 무더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쓸 데가 없어서

버린 것이었지요. 나는 그걸 집에 가져와 반죽을 하고 모형을 만들어 구워 보았습니다.

결국 나는 쓸모 없던 흙으로 두 개의 아름다운 꽃병을 만들었습니다. 그 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맡기고 하나님께서 저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길 바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쓰레기장의 흙 무덤 같은 나를 아름다운

꽃병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365일 예화[ 6월 4일]돌아온 딸

어느 시골의 한 가정에서 딸이 가출을 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자 소녀는 자살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죽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이 그리워 고향 집에 내려갔다. 밤중에 가 보니 자신이 가꾸던

장미꽃도 보이고 뛰어 놀던 잔디밭도 보였다. 달밤에 자기 집을 바라보니 담장 옆 대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그 소녀는 문 가까이 가, "아버지-" 조용한 음성으로 불렀다. 그러자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뛰어 나왔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 오느냐? 네가 집을 나간 뒤

대문을 닫아 보지 못했단다. 언젠가는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혹시 밤중에 딸이

돌아올까 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던 아버지가 딸이 부르는 작은 소리를 듣고 뛰어나와 그

딸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승리의 그리스도

 

 

365일 예화[ 6월 5일]목숨을 바친 사랑

전쟁중 우리 나라에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한 만삭이 된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위해 어떤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 어머니는 그만 그 집을 다가지 못하고 길에서 진통을 하기

시작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어머니는 어느 다리 밑에 겨우 자리를 잡아 아기를

분만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는 가운데 그 어머니는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고는 아기가 춥지 않도록 자기 옷을 모두 벗어서 아기를 감싸주었다. 해산 직후

추위에 어머니는 그만 얼어 죽고 말았다. 얼마 후 어느 미군 장교 한 사람이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휘발유가 떨어졌다. 그는 부대로 연락을 취해 놓고 차에서 내려 그

부근을 거닐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그 군인은 그 소리를 따라 다리 밑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거기서 그

군인은 기가 막힌 장면을 목격했다.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얼어 죽어 있었고 어머니의 옷에

둘러싸인 갓난 아기가 몹시 울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기름이 떨어진 것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살리시기 위함인지도 모르겠군." 이렇게 생각한 군인은 그 아기를

데려다가 양자를 삼아 잘 키웠다. 그 아들은 미국에서 훌륭하게 자라 성인이 되었다. 늘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고 싶어하던 그 아들은 어느 날 자기를 키워 준 아버지로부터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아들은 무덤을 찾아 한국에까지 나왔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자기 옷을 벗어서 무덤 위를 덮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그런 희생을 치르셨군요!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벌거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겠어요!"

사랑과 행복에의 초대, 양은순

 

 

365일 예화[ 6월 6일]소년과 보트

신문배달을 하는 소년이 있었다. 하루는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나가다 중세의 범선을 본떠

만든 깜찍한 보트를 보게 되었다. 그 보트를 꼭 갖고 싶었지만 소년이 사기에는 값이 너무

엄청났다. 그래서 소년은 스스로 보트를 만들기로 했다. 소년은 날마다 가게의 진열장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책도 보면서 틈틈이 모은 돈으로 재료를 샀다. 나무를 자르고, 돛을

달고, 페인트를 칠하고, 자기의 모든 기술과 정성을 쏟아 드디어 멋있는 보트를 만들었다.

소년은 완성된 보트를 들고 강물에 띄었다. 강물에 뜬 보트는 아름답고 훌륭했다. 소년의

가슴은 뿌듯했다. 아, 그런데 보트가 강 한가운데에서 하류 쪽으로 급히 떠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애써 만든 보트를 잃은 소년은 날마다 신문배달을 마치고 강가를 뒤졌지만 보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일이 지난 어느 날, 소년은 어느 고물상에서 우연히 자기의

보트를 찾아냈다. 주인에게 자기의 것이라고 사정을 했지만 갖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석 달이나 신문배달을 하며 돈을 모았다. 드디어 돈을 마련하여 보트를

샀다. 보트를 사 오던 날, 소년은 보트를 끌어안고 얼굴에 비비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돈이 보낸 편지, 이의용

 

 

365일 예화[ 6월 7일]사랑의 희생

13세기 스페인의 귀족이며 명문 대학의 교수였던 라몬 럴은 자신의 유망한 장래를

포기하고 모슬렘교도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갔었다. 그는 두 번이나 그 나라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1년 반을 감옥에 감금당했다. 노인이 되어 성벽으로 끌려가 돌에 맞아 죽어 갈

때에 그의 마지막 말은, "오직 예수"였다. 죽기 직전에 그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이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의 목사 안수식 때에 "오, 주 하나님 당신께 나 자신, 나의 아내, 나의 자녀, 그리고 나의

모든 소유를 드립니다"라고 말했으며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만을 향한 독점적인 사랑을

취소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핍박이 심해질 때에, 겔린드 물러는 믿음을 버리고 성경

읽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화형당하게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에게는 아내와 네 자녀가

있었다. "당신의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가?"라고 재판관이 물었다. "만일 하늘이 진주이고

땅이 금덩어리이고, 내가 그 모든 것의 소유자라면, 우리가 겨우 빵과 물만 먹고 살게

될지라도 내 가족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그러나

결단코 그리스도만은 포기할 수 없다." 그는 교살되어 화장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랑의 희생을 잊지 않으셨다.

기쁘게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 J. 오스왈드 샌더스

 

 

365일 예화[ 6월 8일]사고 싶었던 관심

어느 학교 선생님에게 열 두 살 먹은 딸이 있었습니다. 그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딸에게 어머니 역할까지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일 때문에 딸에게 시간을 충분히

내주지 못하는 게 문제였고,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서

크리스마스 휴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는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시작된 첫날

딸아이는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혼자 지내면서 식사 시간 이외에는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그랬고, 또 다음 날도 그랬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계속

그랬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자 크리스마스 트리에 선물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뜨개질로 짠 한

켤레의 양말이었습니다. 딸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까지 이걸 다 짜야 한다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제가 방문을 잠그고

지금까지 했던 건 바로 이 뜨게질이었어요. 이젠 다 짰어요. 아빠 양말이에요! 좋으세요?"

"암, 좋고말고, 얘야, 정말 예쁘게도 짰구나, 고맙다." 아빠는 딸아이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딸을 덥석 껴안았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 철없는 아이야. 양말은 시장에 가서 사면 되지 않니? 난 양말 같은 건 원하지 않아.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단 말이야! 난 너와 함께 지내며 너의 사랑을 받고 너의

관심을 사고 싶었던 거야."

잠잠하라 고요하라, 캐롤 메이홀

 

 

365일 예화[ 6월 9일]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무엇보다도 먼저 최고의 사랑을 요구하실 것이다. 우리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그는 우리의 지상의 가장 귀중한 관계들을

배제하시고 "너는 이 모든 것들을 미워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인상적인 말씀을 하신다. "미워하다"라는 용어는 상대적인 용어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용어는 아니다. 그는 여러분과 나에게서 우리가 최초로 느끼는 사랑, 즉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우리의 가장 귀중한

사랑 즉 우리 자신의 생명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요구하신다.

W.Y.플러튼

 

 

365일 예화[ 6월 10일]왜 안됩니까?

메릴리는 성적 부디덕이 잘못된 것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19세 때에 그녀는 모든 성적

지식을 다 배운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그런데 그녀는 여전히 성적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억제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기 위해 합리화 과정을 시도하였다.'만일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부디덕을 저질렀다면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제도

용서하시리라고 확신한다.' '다윗왕을 보라.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는데도....'

'아무도 알 리가 없지. 그래서 나의 행동이 아무에게도 거침돌이 되진 않을 거야.' 거듭거듭

몇 주일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마침내 메릴리는 자신이 '그 일을 해도 좋다'고

확신하였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드라이브를 하다가 멋지게 생긴 히치하이커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반항적인 도전을 하였다. "도대체 어째서

안되는 겁니까?" 그녀에게 놀랄 만한 대답이 즉각적으로 들려왔다. "왜냐하면 내가 너에게

하지 말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란다." 메릴리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기다리고 있는 그

히치하이커 곁을 빠르게 지나쳤다. 그녀가 합리화시킬 수 없었던 한 가지 이유가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임이 명백해졌다. 단순히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맞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상대방을 생각해 주는 것이다. "너희 믿음에....사랑을

공급하라."

그리스도인의 인격 계발, 스탠리 C. 볼드윈

 

 

365일 예화[ 6월 11일]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 해 전에, 정해진 시각에 어떤 큰 오르간 연주회가 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르간에 펌프질을 할 사람이 그만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한 유명한

작곡가가 자신이 그 펌프질을 하겠노라고 자원했습니다. 왜 그런 보잘것없고 천한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작곡가는 "음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도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그를 섬기는 가운데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결코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 안에서 행하는 봉사의 일이라면 가장 작고 미미한 일일지라도 모두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365일 예화[ 6월 12일] 그리스도의 사랑

영국의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대륙의 전도 책임자로 있을 때 그는 가끔 전도를

희망하는 후보자를 면접하였다. 한번은 봉사하기로 결심한 한 사람을 만나 "왜 당신은 해외

선교사로 가기를 원합니까?"하고 물었다. 선교사 후보자는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다른 한 명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타락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그 때 허드슨 테일러는 말하기를 "그

모든 동기들은 좋지만 시험과 시련 그리고 고생, 심지어 죽음의 순간을 당할 때, 그것은

당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단지 한 가지 동기가 당신을 어려운 시험과 시련에서 견디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가

한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진실로 좋아해서

하십니까?"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아닙니다. 나와 처는 먼지와 이 고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초라한, 냄새가 나는 이런 오두막집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진정한 봉사를 하게 할 것이다.

인생을 다시 한번, 배훈

 

 

365일 예화[ 6월 13일] 사랑의 의미

6.25 직후 나병 환자 수용소에 미국 로터리 클럽에서 회원들이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미국에서 파견나온 간호사 선교사 한 사람이 나병 환자의 고름이 흐르고 있는

상처를 간호하고 있는 뜨거운 인간애의 장면을 포착하였습니다. 한 사업가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백만불짜리 가치가

있는 사진이다. 그러나 나는 누가 나에게 백만불을 주어도 이 일을 못할 것이다." 간호사

자매는 이 사업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일을 못합니다." 이

대답을 듣고 사업가가 당황하면서 말하기를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소?"라고 물었더니 자매가 대답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향해 보여 주신 조건 없는 그 놀라운 사랑!

내가 그를 신뢰했을 때 나에게 놀라운 죄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나를 의롭다

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나에게 영생을 허락하시고 지금 내 삶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방식을 따르십시오.

 

 

365일 예화[ 6월 14일]율법의 정신

굉장히 가난한 아주머니 한 분이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그녀는 빵과 우유를 샀지만 고기를

몇 근 훔쳤습니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할 때 그녀는 빵값과 우유값만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계산하던 아가씨가 "아줌마, 그 가방 좀 열어 보세요"하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열지 않겠다고 우겼으나 경찰이 왔을 땐 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가방에서 고기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당연히 경찰서로 끌려갔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재판관만이 형법을 사용하여 선고를 내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법을

만든 사람들이며 법을 잘 알 뿐만 아니라 그 법의 뒤에 있는 정신까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그 가난한 아주머니를 부드럽게 심문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현재 다섯 명의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것, 집도

절도 없으며, 몇 달 동안 기름진 음식이라곤 한 번도 입에 대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알게 된 재판관은 그 아주머니를 감옥에 보내는 대신 그 가족이

살기 적절한 집을 제공해 주고 연금을 지급받도록 해주었습니다. 이 재판관에게는 법의

정신이 법조문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하다 붙잡혀 온 어떤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돌로 쳐죽이려 하는 형식에 치우친 사람들의

행위를 저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제정자인 동시에 남자와 여자의 마음을 잘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연인의 주위 환경을 아셨으며, 그녀가 지금 회개했다는 사실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 율법 그 자체보다 율법의 정신이 예수님께는 더

중요합니다.

인간 심성의 외침,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365일 예화[ 6월 15일]값진 기쁨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믿는 바에 따라 행동의 다른 표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때때로 화평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은 어떤 행위가

용납되거나 용납되지 않는다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이러한 일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여성들은 미국 여성들의 짙은

얼굴 화장을 눈감아 주는 것이 어려웠다. 동시에 미국의 신자들은 큰 맥주잔을 들고 있는

독일인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어떤지를 자문하였다. 각 나라마다 견해들간의

갈등이 있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의 경우,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자전거를 타는 것에

관하여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흡연과 음주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금기 사항이다. 그러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에 기초한다. 은혜에 의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은 또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자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가질 권리를 인정해 줄 것이다. 당신은 그 누군가의 양심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기꺼이 그만두겠는가? 즉 그 행동이 당신 보기에는 나쁘지 않더라도 어리거나 연약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하지 않거나 포기할 수 있는가?

자신의 명분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려는 이러한 일들을 행할 때

당신은 평화뿐만 아니라 기쁨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당신은

타인의 행복을 위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기쁨은 자신이

포기한 '잃은 것'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다.

 

 

365일 예화[ 6월 16일]법보다 위대한 원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이면서 설교가인 미국의 아이언사이드 박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교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청년 하나가 손을 들더니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법대로 합시다" 이 말을 듣던 아이언사이드 박사가

아주 놀라운 얘기를 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법대로 자네를 다루었다면 자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네는 벌써 지옥에 가 있어야 마땅할 것일세." 우리는 법보다 위대한 원리에

의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은총의 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께서 나를 다루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겠다"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은총의

원리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옳고 그름의 원리 - 율법적인 원리 - 가 아닌 은총의 원리에

의해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순종할 수

있는 명령이 무엇입니까?

"네 원수를 사랑하라."

 

 

365일 예화[ 6월 17일]이상한 설교

어느 교회에 처음으로 취임한 신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첫 취임 예배에서 아주 멋지고

놀라운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은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우리가 정말 목사님을 잘

모셔왔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취임 예배에서 한

설교와 똑같은 설교를 또다시 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교인들이 늘어갑니다. 그래도

이제 두번째이니까 혹시 잊었거나, 아니면 취임 예배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설교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이해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번째 주간에도 이 신임 목사님은 첫번째, 두번째 주간에 하신 설교를 똑같이

하셨습니다. 당신은 상상할 수가 있습니까? 똑같은 설교를 세 번 들었을 때의 교인들의

반응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한 용감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때 그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목적과 동기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아니면, 행동의 변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순종할 때 참 자유를

얻습니다.

 

 

365일 예화[ 6월 18일]성경의 운동력

어떤 성경 주석이나 설교도 일체 없이 오직 성경 한권을 읽는 것만으로 원시인들이 구원을

받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아마죤 강에서 선교사업을 하는 한 선교사를 통하여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 남부에서 있었던 일인데, 부부 두 세사람이 함께 성경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아마추어 성경 공부입니다. 그런 단순한 공부였지만 그들은 기쁨을

발견하고 생활이 변하여서 나중에는 삼십 명의 친구들이 모여서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수십 명의 선교사들이 배출되었고,

특히 치과 의사 부부가 한 달에 4만 불씩 벌던 직업을 버리고 몇 백 불의 월급을 받으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선교사들이 대학 교육을 받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나왔지만, 요즘의 선교사들은 평신도로서 성경을

가르치는 운동을 하러 다닙니다. 어떤 목사님이 나에게 한 부인의 간증을 들려 준 기억이

있습니다. 그 부인은 글을 읽을 수 없어서 하루에 오백원의 품삯을 주며 성경을 읽어 줄

사람을 고용했는데, 읽어 주던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서 그 부인보다 더욱 신실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어도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신앙이 자랄 수가

있습니까? 성경을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365일 예화[ 6월 19일]예수를 바라보게

1850년 1월 6일, 영국의 콜체스터 시는 심한 눈보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한 십대 소년은 그가 늘 다니던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 교회에서는 출타한 목사님을 대신하여 한

평신도가 서툴게 설교를 하였다. 그가 설교한 본문은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이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 달 동안 이 소년은

마음의 곤고함과 죄에 대한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비록 교회에서 자랐다 할지라도(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그 서툴게 준비한

대리 설교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만 본문을 반복해 외칠 뿐이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배우고자 대학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그때, 이

설교자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새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방문자를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 자네는 아주 피곤해 뵈는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그때

그 젊은 청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설교가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이었다.

능력 가운데 살라, 워런 워어스비

 

 

365일 예화[ 6월 20일]어미새의 사랑

차디찬 지난 며칠 간 영하의 날씨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파트에 사는 한 가정에서 새 한 쌍을 선물로 받아 매일 아침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받으라고 초롱을 베란다에 걸었다가 저녁이면 들여오곤 하였습니다.

그 동안 새는 자라서 어미새가 되었고,어미새는 어느덧 알을 품더니 두마리의 예쁜 새끼를

갖게 되었으며,그 새끼들은 초롱 속에 만들어 준 둥지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베란다에 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영하의 날씨에 밤을 그냥 보내

버렸습니다. 아침에서야 새 초롱을 생각하고 허둥지둥 나가 보니 아뿔사 어미 새는 둥지에

몸을 덮은 채로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실수로 인해 생명을 잃게 한 것을 생각하고 가슴을 치며 죽은 어미새를 집었더니,

아! 거기 얼어 죽은 어미새 밑에 한마리의 큰 새와 두 마리의 새끼는 그대로 살아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미새의 지극한 헌신은 육체로 둥지를 덮어 얼어 죽으면서까지 남은

생명들을 사랑한 기막힌 얘기였습니다. 차가워지는 혈관을 의식하며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여기 세상의 한파,죄악의 한파가 몰아 닥쳐 모두가 죽음에 직면하였을때 차디찬 십자가에

몸을 던져 스스로 차가워지면서 세상이라는 둥지를 덮음으로 그 한파 속에서 뜨거운

혈액으로 소생케 한 사랑,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극히 인간을 사랑하셨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의 얘기는 바로 인간은 던져진 무목적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 존재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365일 예화[ 6월 21일]하나님의 사랑

한 수도사가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제까지의 그 어떤 설교보다도 더

훌륭한 설교를 하겠다고 알리며, 모든 사람들이 모이기를 강요했다. 시간이 흐르자 성전은

노인과 청년들로 가득 찼다. 모든 사람은 그 예배를 통하여 훌륭한 설교를 들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시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 수도사는 설교를 시작하지 아니하였다.

대신에 촛대를 꽂아 둔 곳으로 가 밝게 타고 있는 초가 꽂힌 촛대를 집어 들고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상이 조각되어 있는 제단으로 올라갔다. 그 수도사는

조용하고 밝게 타고 있는 촛불로 못박히신 예수님의 팔을 비추어서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분명히 볼 수 있게 하였다.

다음에는 촛불을 옮겨 역시 못박히신 예수님의 다른 한 팔을 비췄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때 촛불은 못박힌 예수님의 두 발을 밝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

수도사가 일어나서 돌아섰다. 그때에도 손에 쥐고 있던 촛불은 그의 얼굴을 밝게 비춰 모인

사람들은 그 수도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그의 뺨을 흘러 내리는 눈물을 볼 수가 있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나의 설교입니다."

그리고 그는 축복기도를 하고서 사라졌다.

로버트 슐러

 

 

365일 예화[ 6월 22일]사랑은 사랑을 낳고

오래 전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고아원에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을 아이가 있습니까?" 그 물음에 원장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있어요. 열

살짜리 여자아이인데 매우 흉한 꼽추예요. 단지 이름만은 좋아서 머시 굿페이스(Merch

Goodfaith: 훌륭한 믿음의 은혜라는 뜻)이지요." "바로 그런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고서 그 아이와 함께 떠났다. 35년이 지난 후, 아이오와 주 고아원

감사실의 실장은 한 고아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가정은 매우

특별한 곳인데 깨끗하고, 음식도 훌륭하며 특히 그곳 원장은 사랑이 넘쳐 흐르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이곳에 수용된 어린이는 모두 잘 보살펴지고 있으며, 원장은 풍부한 사랑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저녁식사 후에 피아노 앞에 모여 섰을 때 나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를 느꼈다. 나는 결코 그 원장의 눈과 같은 아름다운 눈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내가 그 원장의 얼굴이 보기 흉하고 꼽추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데

놀라워했다. 그 원장의 이름은 머시 굿페이스이다." 어떤, 이름도 알 수 없는 사람이 추하고

보기 흉한 고아를 보살펴 줄 용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머시 굿페이스는 사랑의 방법을

배우고 또 그 사랑을 백 배로 증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돌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인생 최대의 갈망, 로버트 슐러

 

 

365일 예화[ 6월 23일]보여 주세요

나는 김성준 선교사님과 같이 지내면서 그분의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을 볼 때마다 참

부끄러운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내가 목사로서 이분처럼 구체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열정을

가졌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당신은 왜 선교사로 갔습니까?"하고 그분께 물었더니

"그 야만인 지역은 전파가 통하지 않습니다. 또 글이 없어서 책을 줘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몸으로 직접 가는 방법 외에는 다르게 그들을 사랑하는 표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감동을 사랑으로 옮겨 행할 때는 어렵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예수님께서 설교하실 때 사람들의 감정은 부풀어 올랐습니다. 사랑해야겠다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 설교, 예수님의 실제 설교, 사랑의 그 많은 설교 앞에, 예수님의 사랑의

행동 앞에 제자들과 사람들은 많이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가

높은가?" 하는 문제 때문에 서로 다투었습니다. 실제적으로 사랑할 때 우리에게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친히 대야에 물을 떠 오시고 허리의 수건을 동이시면서 자신의 몸

전체로 사랑의 수고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은 실제로 어렵습니다. 참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가를 치르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십계명 강해, 홍정길

 

 

365일 예화[ 6월 24일]눈물로 뿌린 씨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작은 동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열네 살 된 윌리암이라는 소년은

동리에서 평판이 대단히 나빴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지도를 할 수 없었던 거칠고 못된

소년이었다. 더구나 그는 많은 학생들에게 점차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학교 당국에서도 큰 문제였다.

그때에 새로 부임해 온 교사가 한 사람있었다. 이 새 교사는 윌리암 소년에 대한 말을 듣고

그를 한 번 지도해 보겠다고 했다. 동료 교사들은 모두 말렸다. 공연히 봉변이나

당할터이니 손을 대지 말라고 만류하였다. 그러나 그 교사는 윌리암 소년을 차근차근

관찰해 가면서 그의 형편과 성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희망이 없다고 낙인이 찍히고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될 곳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는 윌리암 소년을 친절과 이해와 끈기로

지도해 갔다. 교사는 못된 그 소년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선과 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참된 자존심과 포부를 넣어 주었다. 그 교사는 눈물로 씨를 뿌린

것이었다.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뿌려진 씨앗이 싹을 트고 땅에 뿌리를

내고 자라는 것이었다. 이 소년은 나쁜 버릇을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는 밤잠을 안 자며

공부를 하였다. 그는 대학에 진학을 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우등이라는 명예로 졸업을

했다. 윌리암은 계속 법률을 공부했다. 그는 결국 미국 대법원의 부판사가 되었다. 윌리암은

뉴욕 주의 주지사가 되었고 드디어는 미국의 국무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는

어려서 몹쓸 인간으로 점찍혀 버림받았으나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 한 교사의

지도로 이처럼 위대하고 뜻 있는 일생을 보내게 된 것이다.

 

 

365일 예화[ 6월 25일]포기하지 않는 사랑

수년 전 한 아가씨가 스코틀랜드 주일학교에서 장난꾸러기 소년만 모인 반의 담임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중에서도 보비라는 소년은 다룰 수 없는 골칫거리 아이였다.

주일학교에서는 이 여선생님에게 새 옷 한 벌을 가지고 보비의 집을 방문하여 계속 출석을

잘하도록 했다. 여선생님이 보비의 집을 방문했을 때 보비는 씻지 않아 땟물이 흐르는

얼굴에 머리는 빗질을 하지 않아 헝클어져 있었고,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진흙에 뒹굴어

거의 걸레가 되어 있었다. 여선생님은 보비에게 새 옷을 갈아 입히고 교회에 잘 나오도록

부드럽게 얘기했다. 그러나 보비는 또 더러워졌고 교회도 나오지 않았다. 여선생님은 다시

보비를 방문했다. 이미 새 옷은 다 망쳐지고 걸레가 되어 있었다. 또 한 벌의 새 옷을

선물하고 잘 타일렀다. 그러난 여전히 보비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선생님은 힘이 빠지고

말았다. 주일학교 부장을 찾아가 이제 더이상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주일학교

부장은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해 보십시오"하고 격려했다. 그 여선생님의 계속적인

노력으로 고삐 풀어진 망아지 같은 이 소년은 나중에 훌륭하게 성장하여 중국에 선교사로

갔다. 그가 바로 로버트 스미슨 목사이다. 그는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수백만의 영혼을

주께로 나오게 했다.

G.D. 제임스

 

 

365일 예화[ 6월 26일]엄마 노예의 죽음

어떤 선교사가 임지로 가는 도중에 여자의 비명을 듣게 되었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 가까이

가보니 아들이 노예로 끌려가는데 그 엄마가 주인을 보고 "주인님, 나도 아들과 함께 사

주십시오. 저희 모자가 함께 가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하며 애원했다. 그러나 그 주인이

"안돼"하며 아들만 끌고 가는데 그 엄마는 생명을 내걸고 함께 사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엄마도 울고, 아들도 울고.... 한번 헤어지면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광경을

보던 그 선교사는 주머니의 모든 돈을 털어 그 두 모자를 사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어느 날, 선교사가 풀밭에서 비명을 지르고 넘어졌다. 실신이 된

선교사의 뒷발에 독사의 이빨 자국이 나 있자 엄마 노예가 입을 대어 독을 빨아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거의 죽었던 선교사가 일어나 보니 독기를 입으로 빨던 엄마 노예는

얼굴이 퉁퉁 부어 죽어 있었다. 엄마 노예는 자기를 사 준 그 고마운 선교사, 진정한

사랑을 베풀고 자유를 준 이 선교사를 위하여 사망의 독을 입으로 빨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나의 생명을 건져 주신, 아니 우리 가족 전체를 살려 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 수 있을까?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신예철

 

 

365일 예화[ 6월 27일]못 받아도 괜찮습니다

강아지를 보고 "나는 네가 밉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쓰다듬어 주면 좋다고

꼬리를 칩니다. 그러나 "난 널 사랑해!"하고 꽥 소리를 지르면 콱 물어 버립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사랑한다고 말했느냐 미워한다고 말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교육도, 어떤 비판도, 어떤 훈계도,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만 틀림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인천에서 목회하던 30여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토요일마다 주일을 위해 목욕탕에 가곤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공중 목욕탕으로 곧바로 가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데, 길에서 문둥병

환자를 만났습니다. 평소 우리집에 자주 오는 분이어서 낯이 익었습니다. 그는 나를

반기면서 말합니다. "저어, 사모님은 늘 뵙고 신세를 집니다마는 목사님은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두둑히 좀 도와 주십시오. "그래서 주머니를 뒤져 보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이것 참, 아무것도 없네요. 어쩌지요?" 했더니, "에이, 그러시지 말고 좀

주세요. 목사님"하면서 물러서지를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믿지를 않아서 저는 난처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그 사람을 좀더 가까이 오라고 한 다음,

방금 씻은 깨끗한 손으로 문둥병자의 손을 덥석 붙들어 잡았습니다. 그리고 불쑥

소리쳤습니다. "정말 없단 말이야!" 그랬더니 이 사람이 "아아, 목사님 참말 고맙습니다.

돈을 얻은 것보다 더 기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몇 번이고 인사를

했습니다. 못 받아도 괜찮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종말론적 윤리, 곽선희

 

 

365일 예화[ 6월 28일]보잘것없는 초상화

아이버 포웰은 {성경의 유리창}이라는 그의 훌륭한 책 속에서 유산을 남기지 않고 죽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죽었을 때 그 집의 가구 경매에서 죽은 그의 아들의

초상화를 산 유일한 사람은 남루한 옷을 걸친 늙은 여인이었다.

그 아들은 어린 시절에 죽었기 때문에 그 부자는 그 그림을 무척이나 아꼈다. 그러나

모여든 경매자들은 그 그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왜 그 그림을 샀느냐는 질문에 그

여인은 수년 전에 소년의 유모였고 그 소년을 무척 사랑했다고 대답했다. 뒤에 그 초상화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그림 뒤에 있는 두꺼운 서류뭉치를 발견했다. 봉투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 그의 사랑스런 아들에 대한 기억을 고이 간직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내용이 명백히 쓰여 있었다.

 

 

365일 예화[ 6월 29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2,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아래 두 지 아니하고 동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엑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 2:15) 어두움을 몰아내는데 과연 얼마만큼의 빛이 필요할까요? 아주 작은 빛입니다. 그것은

등화관제를 할 때 여실히 들어 납니다. 온 동네가 칠흙같은 어둠 속에 있을 때 어느 집에서

TV를 켰다고 합시다. 그 빛은 어김없이 밖으로 새어나와 어두움의 적막을 깨고 맙니다.

또한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조그만 손전등 하나가 아주 훌륭한 길 안내자가 되어줍니다.

당신의 주변을 살펴보십시요. 영적인 암흑이 존재하는 곳은 없습니까? 어두움은 아주 작은

빛으로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눈이 달빛에서 반사해서 빛을 발하듯이, 예수님의

빛을 반사해서 내는 그 빛을 당신에게서 요구하십니다. 당신은 조용히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삶으로써 그 빛의 역할을 해내실 수 있습니다.

 

 

365일 예화[ 6월 30일]겸손하게 십자가를 지라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든다.

 

출처 : 고동엽 블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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