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2002-07-22 15:33:40 read : 2699
이사야 54장 1-3절/ 20020721
< 약한 자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반드시 기쁜 날을 주십니다.
현재 모습이 연약하고 비참한 모습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으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에게도 감사의 노래가 넘치게 될 것이고,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아무리 연약한 모습이어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재기의 기회가 옵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신에게 맡겨진 삶의 배역을 불평하지 말고 충성스럽게 감당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면서 이미 성공적인 인생이 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사실 별로 뛰어나지 않은 약한 인생을 불러 멋있게 쓰시는 것이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연약한 모습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고 더욱 찬송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어렵다고 원망하면 저주가 찾아오지만 어려워도 찬송하면 저주가 깜짝 놀라 물러갑니다.
병이 들었을 때에 찬송하십시오. 암이 아무리 무서워도 찬양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찬양이 그치면 암세포가 번성하지만, 찬양하면 백혈구가 암세포를 먹어 치울 것입니다.
어떤 암환자는 찬양하며 백혈구가 암세포를 먹는 것을 연상하니까 암이 나았다고 합니다.
저도 지난 목요일 갑자기 장염이 생겨서 새벽기도 오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말씀만 전하고 바로 집으로 가서 푹 쉬어야지."
그런데 찬송가 434장을 힘있게 부르니까 몸이 화끈거리며 장염이 다 나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평소대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잠깐이지만 찬양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매일 살아가는 삶이 감격뿐인데 찬양을 그치면 되겠습니까?
자세히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기적 가운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소경이 눈을 뜨는 것도 큰 기적이지만 우리가 이 시간 볼 수 있는 것도 큰 기적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도 기적이지만 우리가 오늘 걸을 수 있는 것도 사실 기적입니다.
이것이 기적인 줄 모르니까 찬송을 불러도 신이 안 나고 교회생활도 재미가 없어집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대적 마귀만 좋아할 것입니다.
< 누구나 가능성이 있습니다 >
사실상 축복이란 마음의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찬송하고 감사하면 진짜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불행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행복을 주어도 불행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분들은 기쁨과 감사를 잘 모르고 좋게 생각하지 않고 천국도 지옥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는 지옥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놀라운 믿음의 능력'을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항상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축복도 결코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일이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축복을 취한 것이지 축복을 받은 것이라도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안되면 금방 희망을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절망적인 말만 쏟아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포기하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입을 넓게 연만큼 채워주신다고 했습니다. 항상 큰 꿈을 가지십시오.
일등을 꿈꾸고 준비하며 노력하면 일등은 되지 못해도 5등 안에는 들 수 있습니다.
나의 앞날은 반드시 잘 될 것이라고 믿고 땀을 흘리면 하나님은 꼭 기회를 주십니다.
건강이 부족해도 마음과 생각을 건강하게 먹으면 점차 건강한 세포가 많아질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어려워도 길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어느 날 두 마리 개구리가 풀밭에서 놀다가 풀밭의 양동이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 양동이 안에는 크림이 가득 차 있어서 두 개구리는 신나게 크림을 먹어댔습니다.
다 먹고 난 후에 양동이 밖으로 나가려는데 크림 때문에 미끄러워 나갈 수 없었습니다.
여러 번 시도해도 실패하자 청개구리가 말합니다. "금아! 이제 끝났다! 도저히 길이 없어!"
그러나 금개구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청아! 분명 나가는 길이 있을 거야.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수영이나 하고 있자!"
금개구리의 말에 잠시 편한 마음으로 수영하는데 조금 후에 청개구리가 또 푸념합니다.
"금아! 아무리 수영해도 소용없어! 우리는 이곳을 나가지 못해! 피곤해! 더 못 견디겠어!"
금개구리가 또 용기를 주었지만 청개구리는 계속 죽는소리를 하다 진짜 죽었습니다.
금개구리는 친구 청개구리가 죽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지만 속으로 시를 외웠습니다.
옛날에 엄마가 가르쳐준 시였습니다. "지나가 버린 슬픔에 새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
그리고 계속 수영을 했습니다. 밤이 지나 동녘이 밝아오는데 발 밑이 이상해졌습니다.
크림이 점점 굳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수영은 더 힘들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발 밑이 딱딱해진 것 같아서 아래를 보니 자신이 버터 위에 서 있었습니다.
곧 금개구리는 양동이를 훌쩍 뛰어넘어 그립던 자유를 다시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려워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계속 준비하고 계속 도전해보십시오.
축복 바로 전에는 가장 어려운 순간도 찾아옵니다. 그때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어려운 순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의 터전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누구나 축복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기에서 4가지를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1.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다.
성도는 우선 마음이 넓어야 합니다. 성도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마음이 좁으면 됩니까?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넓혀야 합니다. 꿈꾸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알렉산더는 33세에 죽었지만 대왕이라고 부릅니다.
알렉산더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헬라문화와 철학을 배우면서 그 문화에 감탄해서
자기 헬라 문화를 전 세계로 전파하겠다는 '헬라문화의 전도사'의 사명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군사를 일으키고 원정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전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니까
신하들이 말렸습니다. "폐하! 그렇게 다 나눠주면 폐하는 가질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때 알렉산더 대왕이 대답합니다. "나는 희망을 갖겠노라!"
그리고 그는 2만의 병력으로 50만의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치고 결국 대제국을 만들었고,
영토만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한 곳마다 헬라문화를 심어 헬레니즘 시대를 엽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전도사'의 사명을 가지고 사랑과 평화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좁은 지역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시선을 보다 큰 세계로 향해야 합니다.
옛말에 자식을 사랑하면 여행을 시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상 대학생 때 외국 배낭여행이나 단기선교 한번 하면 삶이 '확!' 달라진다고 합니다.
특히 믿는 부모는 단기선교를 꼭 보내야 합니다. 갔다 오면 벌써 눈빛부터 달라집니다.
돈 생각하며 그 일을 멀리하면 안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많은 것을 얻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보내온 임준호 선교사님의 선교편지에 의하면 선교사님의 둘째 딸이
인디안 선교를 갔다가 난생 처음으로 한 시간을 울면서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회개하고
힘써 공부해 의사선교사가 되겠다는 말을 듣고 선교사님의 가슴이 울렁거렸다고 합니다.
단기선교로 그렇게 자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과외만 시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한 아무리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본인이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외국에서 식사할 때나 비행기 탈 때 불편을 겪어봐야 영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약 교회 청년들이 단기선교를 가겠다고 하면 최선을 다해 보조해주십시오.
유학도 많이 보내십시오. 가능한 한 우리는 자녀들을 많이 외국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학비 때문에 유학을 사치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모들이 돈을 다 대주면 안됩니다.
여기서 대학 교육을 시키는 정도의 비용만 대주면 본인이 벌어가며 공부할 수 있습니다.
저도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지만 공부 끝난 후 제 손에 3천 불이 있었습니다.
본인이 굳게 결심하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외국으로 많이 보내십시오.
8월 4일 나약칼리지 교수이신 김진태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해주실 것인데
자녀 유학 문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목사님과 좋은 대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이 문제로 목사님과 대화를 원하시면 연락주세요/ 이한규 목사님 017-705-4347)
외국에 자주 다니면 꿈과 희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꿈과 희망은 인생의 큰 자산입니다.
거지는 '돈 없는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이 바로 거지입니다.
꿈과 희망이 전혀 없는 사람은 상거지입니다. 그러다 조금 지나면 진짜 거지가 됩니다.
그러나 겉은 거지같아도 꿈과 희망이 있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재기하게 될 것입니다.
2.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야 합니다.
시야가 넓으면 마음의 평안은 주어집니다. 그러나 축복까지 손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축복을 손에 넣으려면 장막터에 처소의 휘장을 널리 펴는 작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끝나지 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요새 제가 우리 전도사님에게 빨리 운전면허를 따 놓으라고 합니다.
운전면허 따면 자동차가 생길 것입니다. 아마 자동차 가진 신부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꿈과 희망을 가진 후에 땀흘려 준비하고 헌신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가만히 앉아 공짜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 결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화려한 것만을 추구하며 살지 말고 힘써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땀이 없는 화려함은 얼마나 허무한지 모릅니다. 땀이 있어야 진짜 멋진 인생이 됩니다.
옛날에는 기타 잘 치는 것이 멋있게 보여서 저도 거기에 빠져 기타를 꽤 잘 쳤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숭어, 기타연주의 최고봉인 '화려한 과제곡'까지 연주했었습니다.
'화려한 과제곡'을 연주할 때의 화려한 손놀림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탄성을 합니다.
그러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나님께 헌신한 후에는 기타를 거의 만져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서 잠깐 기분은 좋았지만 별로 실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별장' 하면 환상에 빠져 "나도 별장 하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장이 아름다워 보여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참 허무하고 공허합니다.
별장의 여인! 듣기만 해도 허무합니다. 별장의 여인이 나오는 영화는 거의 공포영화입니다.
병, 자포자기, 허무, 실연, 정신병... 그런 것들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 별장의 여인입니다.
우리는 정직한 땀을 좋아해야 합니다. 화려한 것만 좋아하면 삶의 열매는 없습니다.
요새 유행 따라 사는 분들을 보면 자기 자리를 오래 지키는 분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처럼 자기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하고 유행을 따라 살면 평안도 행복도 없습니다.
진정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면 내 안에 믿음을 가지고 땀흘려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1977년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남자가 차에 부딪쳐 넘어졌습니다.
별로 심하게 다친 것 같지 않아 일어서려고 하는데 그 장면을 본 어떤 목격자가
크게 다친 것처럼 쓰러져 있다가 나중에 보험금을 타라고 귀뜸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일어서려고 하다가 많이 다친 척 하며 차 옆에 쓰러졌는데
그것을 모르고 뒤차가 달려와 치어 그는 보험금도 못 타고 죽었습니다.
거저 얻으려는 삶에는 항상 무엇을 얻기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복된 존재가 되려면 꿈과 희망을 위해 땀과 정열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3. 줄을 길게 해야 합니다.
휘장을 아무리 아끼지 않고 펴도 두 가지 줄이 있어야 그 휘장이 쫙 펼쳐지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도의 줄이고, 또 하나는 사람에게 향하는 사랑의 줄입니다.
먼저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의 줄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나 혼자서는 절망할 일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자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를 잊고 살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도 곧 잊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이 다시 뚜렷하게 믿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면 어떻게 절망합니까? 그래서 기도하면 절망은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우리에게 아픔으로 변장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도 사업이 내리막길이 될 수도 있고,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내 곁에 계심을 깨닫게 되면서 안심이 됩니다.
하나님은 '나 좋은 것'대로 주시지 않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기도의 줄을 대면서 사람에게도 사랑의 줄을 펼쳐야 합니다.
사람에게 향하는 사랑의 줄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요셉은 가는 곳마다, 즉 보디발의 집, 감옥, 궁궐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끼쳤습니다.
나중에는 총리가 되어 형제들, 아버지 야곱, 그리고 전 백성들에게 복을 끼쳤습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끼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될 일도 안되게 만드는 사람이 되기보다 안될 일도 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과 위로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복을 나누어주며 살기를 힘쓸 때 우리의 성공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4. 말뚝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면 바람에 쉽게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면 좁은 장막터에서 넓게 되었다는 기쁨을 만끽하기 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과 희망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는 믿음의 말뚝이 더욱 견고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뚝이 든든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때로 살다보면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환경을 많이 만납니다. 그때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칭찬보다는 책망이, 희망의 말보다는 절망의 말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말보다는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말이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 때에라도 우리 자신은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굳게 서서
불신의 말에 영향받지 말고, 항상 믿음의 말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처음 성가 대원이 되었을 때 그 자리에 섰다는 것이 너무 감동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제가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께 헌신한 것에는 성가대 봉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성가대에서 봉사할 때 다 좋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와 나이가 같은 한 형제가 있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조금 음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지휘자가 못해도 좋으니 소리를 크게 내라고 하니까 제일 소리를 크게 냅니다.
그러니까 옆에서 틀리게 부르면 주변 사람들이 다 따라 불러서 틀릴 때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힘들었지만 1년쯤 지나 연습을 통해 악보를 보는 능력이 생기니까
옆에서 그 형제가 아무리 틀리게 해도 그 다음부터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다른 사람이 불평하면 우리도 그 영향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써 믿음의 삶을 연습하면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불신의 노래를 불러도 우리는 굳건한 믿음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뚝을 견고히 하라!"는 말은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았다면 결단하고 그 삶을 실천하려고 해야 합니다.
사실상 성공은 돈과 지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결단과 인간성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가장 큰 약점이 무엇입니까? 말뚝(뚝심)이 약한 것이 문제입니다.
왜 그렇게 약해졌습니까? 무엇보다 부모의 잘못된 교육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자녀들 기 살린다고 혼내지도 않고 "오냐! 오냐!" 하면서 형편 무인지경으로 만듭니다.
학교 가서 선생님께 대들고, 사회에 나가서 위아래도 없고, 남을 생각할 줄 모릅니다.
그냥 공부만 시키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최소한 해야 할 일조차도 완전 면제해 줍니다.
자녀가 공부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면 자녀의 앞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폭주족, 오렌지족, 낑깡족, 탱자족 등 돈이면 다인 줄 아는 속물 인간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정신은 더욱 약해졌습니다. 작은 시련만 닥쳐도 그냥 툭툭 쓰러져버립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공부의 말뚝은 조금 약해도 사명감의 말뚝은 강하도록 키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명감입니다. 그 사명감이 있어야 사는 의미도 있습니다.
내 일이 작은 일 같아도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가정 일은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래서 '죽임'의 반대말인 '살림'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가정 일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녀 잘 기르는 것이 얼마나 큰 사명입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명감이 필요합니다.
사명감이 없으면 우리는 이 어려운 세상을 맞서서 뚝심을 발휘하기가 힘듭니다.
요즘 길 가다가 학생이 담배 피는 것을 보면 훈계 못합니다. 잘못하면 맞아죽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가끔 "내 작은 힘이 무슨 소용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은 열매 맺게 하십니다.
<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우리가 아무리 약해 보여도 하나님 안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가능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때로 잠시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조금 지나면 하나님이 크신 긍휼하심으로 다시 더욱 큰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한 모습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상처 입은 과거에도 연연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상처가 삶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 영향을 줄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우리의 내일은 오늘보다 훨씬 잘 살 수 있습니다.
남자들이 제일 잘하는 얘기가 군대 얘기입니다. 자기만 재미있는 얘기들입니다.
지금 내세울 것이 없으면 더욱 그 얘기를 많이 하는데 남도 생각해주어야 합니다.
TV에서 작품 공모를 할 때 군대 얘기로 소설을 쓰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뻔한 과거 이야기는 매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미래에 있어야 합니다.
같은 사건을 만나도 사건을 대하는 사람의 믿음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갈라집니다.
다니엘이 던져진 사자굴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증거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에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사건을 축복과 영광으로 만드십시오.
우리는 약해도 하나님은 우리 희망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됩니다.
IMF 이후에 우리 나라에서는 복권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거의 불가능한 확률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그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복권에는 거의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통해 큰 축복을 예비하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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