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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은혜가 넘치는 삶//시편 100편 1-5절

by 【고동엽】 2022. 12. 2.

대대로 은혜가 넘치는 삶// 20010701

2001-12-08 17:28:21 read : 305

 

주일 낮예배// 시편 1001-5

 

우리의 삶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우리가 우리 여호와 하나님 사랑할 때 우리 인생은 작품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세바스찬 바하와 헨델은 모두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랑 속에서 그들로부터 상상을 초월한 음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로마 시스틴 성당의 벽화를 그렸던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7년 동안 그 엄청난 벽화를 그렸고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습니다.

지금도 로마 시스틴 성당에 가면 작품에 압도되어 말문이 막힌다고 합니다.

 

토스토예프스키는 한때 술주정뱅이였습니다. 그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항상 예수님 편에 서겠습니다."

그런 하나님 사랑으로 <까라마조프 형제들>이라는 명작을 쓸 수 있었습니다.

단테도 하나님 사랑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에게서 가장 위대한 문학작품 중의 하나인 <신곡>이 탄생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기 능력보다 훨씬 더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저는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는 기쁨이 정말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 엿새 동안 삶의 현장에서 살면서 힘든 일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늘의 신비를 나누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그릇으로 잘 빚어,

앞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을 생각할 때 진정 큰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

우리를 통해서 우리 나라와 민족 및 우리 교회와 자녀가 복 받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록자도 그런 은혜를 기대하며 노래합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고 성실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대대로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몇 가지 삶을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1. 첫째, 하나님 안에서 즐겁고 밝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여기에서 '즐거이 부를지어다'라는 말은 환호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이봉주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따고 왔을 때 온 국민들이 환호하는데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환호하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앞에 열렬한 존경심을 표현하며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할 때 기본적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두운 구석이 한 치도 없어야 하고 구김살이 없어야 합니다.

삶의 진지함은 가지고 살되 항상 밝은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도도 눈물 흘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결코 절망의 눈물이 아닙니다.

때로 슬픈 일을 당하면 같이 슬픔에 동조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좌절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과 슬픔을 나누려는 것이지 우리는 어떤 슬픔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과 사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박사님은 그것을 알았기에 사람들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장례식 때 슬픈 언어, 슬픈 눈물이 없게 하고 잔치하는 기분으로 치러 주십시오."

그래서 김활란 박사님의 장례식 날은 이대 축제날과 같은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축제입니다. 특히 주일은 축제하는 날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항상 축제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골로새서 3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항상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이 마음을 지배하도록 마음을 내어드리길 바랍니다.

 

2. 둘째,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겨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를 섬기십시오. 그러나 억지로 섬기지 말고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십시오.

 

우리가 가진 신앙의 구체적 표현이 무엇입니까? 기쁨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은 흐뭇하게 여기시고 길을 열어주십니다.

시편 374절 말씀을 우리가 잘 압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를 보십니다.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헌신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헌신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에게 진정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헌신은 우리의 편안한 삶을 위협하지만 헌신의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헌신하는 사람들의 헌신은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 안정보다 헌신의 위험이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흔히 배부른 안정보다는 위험한 자유가 더 가치 있다고 말을 하듯이

자유가 희생되고 꿈과 비전이 없는 안정은 결코 성도가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사람의 멋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꿈과 이상이 있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과 비전을 가지고 헌신하는 삶의 모습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데 가장 행복을 누리고 가장 축복 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져야 할 소중한 짐을 남보다 더 많이 질 줄 알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 축복도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이 역설적인 진리를 잘 소화하여 기쁨으로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셋째, 하나님을 더욱 많이 알아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이 시편 기록자는 간절히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어도 점차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흔히 무지는 미신의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모르면 미신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성경을 알기 위해서 더욱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되, 특별히 하나님의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고 우리는 그분의 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해답입니다!"라는 것입니다.

 

미국 실리콘 벨리의 어느 교회에 문제가 일어나 큰 분쟁으로 번졌습니다.

이런 저런 노력들을 해보았지만 수습도 되지 않고 묘안이 떠오르지 않자

수습을 맡았던 대표들이 모여 논의한 끝에 문제의 전말을 잘 정리해서

실리콘 밸리 사람들답게 대형 컴퓨터에 입력시키고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사건을 일자별로 정리하고 항목별은 정리해 컴퓨터에 입력시킨 후

해결책을 물었더니 곧 다음과 같은 대답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나한테 묻지 말고 예수님한테 물어봐라"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모든 문제의 해답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일에 떨고 두려워합니까?

아직도 하나님 사랑과 우리를 위한 주님의 기도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 믿는 부모들은 자나깨나 누구를 위해 기도합니까? 자식을 위해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십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3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인생을 나의 것으로 알고, 내 소유를 나의 것으로 알 때 불안은 시작되고,

반대로 내 것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평안이 넘칠 것입니다.

우리는 내 것조차 내 것이 아니고 나의 생명도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양이 얼마나 연약합니까? 그러므로 철저히 하나님을 의존해야 산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양들이지만 하나님을 의존하면 삶이 얼마나 풍성해집니까?

우리는 찬송합니다( 찬송가 453).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련 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고, 그 사랑이 변함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기 힘들까요?

한두 번 그 사랑을 불신하고, 한두 번 그 사랑을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는 대로 갚으신다면 우리는 정말 죽어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실만 생각해도 우리는 만 가지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 은혜를 진정 알고 있습니까? 알기만 하면 우리의 믿음은 견고해질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면서 창백한 믿음으로 우왕좌왕하며 살아갑니까?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더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다!"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키우면서 가장 기쁠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자녀가 부모의 은혜를 알고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는 표현을 할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하나님이 참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그치면 안됩니다.

사실상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부흥은 바로 이런 부흥입니다.

교회 부흥에서 교인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정신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시기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4. 넷째, 감사와 찬양이 넘쳐야 합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존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감사의 문이라는 말입니다.

감사는 하늘문을 여는 키와 같습니다. 감사하고 찬송할 때 하늘문이 열립니다.

오늘 예배하러 올 때 어떤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교회 문은 들어서도 하늘 문은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를 훈련해야 합니다. 제자 훈련 중에 가장 필요한 것인 감사 훈련입니다.

좋은 일이 생겼습니까? 당연히 그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감사하십시오.

수많은 질병과 사고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기적과 은혜라고 생각하십시오.

 

빌립보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생각한다(think)는 말은 감사한다(thank)는 말과 같은 어원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면 반드시 감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감사거리를 발견하는 머리 회전이 빨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잘 믿는 것은 큰 일을 기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작은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태도를 미루다 보면 감사하는 마음까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진정 감사하는 자가 되려면 감사의 제목을 찾아 감사해야 합니다.

저절로 감사가 생기기를 바라면 점차 감사가 빈약해지고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열심히 찾아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처럼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하다 보면 감사하는 삶이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그러한 삶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처럼 감사할 조건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감사를 찾는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기억해주시고 더 큰 감사할 거리를 주십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가장 뚜렷한 징표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공할 때에도 감사하고 실패할 때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감사가 더욱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감사가 아니겠습니까?

 

골로새서 2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 말은 감사하는 믿음이 최고의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마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기준은 감사를 아는 삶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믿는 분이십니까? 그러면 감사를 아는 삶이 정말 체질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맥추감사절입니다.

맥추절은 한 해 농사 중 첫 번째 곡물을 수확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를 표현하는 절기입니다. 왜 이런 절기를 만드셨을까요?

자기 백성에게 감사 훈련을 시켜 더 큰 축복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감사 훈련을 잘 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감사해야 한다"고 말만 하면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구체적으로 감사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처음 것을 하나님께 구별해서 드리는 훈련입니다.

이러한 감사 훈련이 잘 되어 있으면 그 자녀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을 입습니다.

우리는 손을 펼 때 행복과 축복이 주어지는 원리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가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 준 후에 말합니다. "아빠 좀 줄래?"

그러면 어떤 자녀는 과자 봉지를 뒤로 숨깁니다.

그 과자를 분명 아빠가 사 주었는데도 그것을 잊어버리고 욕심을 부립니다.

만약 자기 자식이 아니라면 그 다음부터는 절대 과자를 사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자녀는 아빠에게 과자를 내줍니다.

어린 꼬마이지만 그 과자가 아버지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대견하고 흐뭇하고 더 사랑스럽고 더 주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과자 봉지를 움켜쥐고 나만 먹겠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있는 과자 봉지들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과자 봉지를 두 손으로 겸손히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치기는커녕 움켜쥐면서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까지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해도 너무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모습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모가 감사를 아는 삶을 살고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뿐만 아니라 가정을 감사를 아는 가정으로 만드십시오.

감사를 앞세워 산다면 대대로 은혜가 넘치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매년 감사절기를 지키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성도들이 감사 절기 때에만 반짝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감사절에 감사를 도전 받았으면 꾸준히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꾸준한 삶이 얼마나 좋습니까?

어떤 분을 보면 천성이 꾸준합니다. 얼마나 보기가 좋고 믿음직한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생각지 않은 일로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자리를 지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왜 자리를 꾸준히 지킬까요?

아마 그는 용서를 승리를 믿었기 때문에 꾸준히 자리를 지켰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한 대로 얼마 지나고 보면 어느새 믿음으로 승리한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얼마나 흐뭇한지 모릅니다.

무능하고 못나 보여도 꾸준한 사람은 결코 무능한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우리가 느끼는 바가 무엇입니까?

말보다 능력이 중요하고, 능력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을 보면 말로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합니다. 그러나 점수는 엉망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똑똑함을 믿겠습니까? 그것은 자기 도취에 불과할 뿐입니다.

 

말보다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삶의 태도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본인이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무엇이든 꾸준히 잘 합니다.

갑자기 천사가 되지도 않고 갑자기 마귀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냥 꾸준합니다.

우리의 감사는 순간적인 감사보다는 지속적인 감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축복은 예비할 뿐만 아니라 감사하는 삶 자체가 축복입니다.

항상 넘치는 감사로 대대로 이어지는 축복의 맑은 샘 근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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