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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녹취 8

by 【고동엽】 2022. 11. 29.
10장에서는 두루마리를 소지하고 있던 천사가 작은 책을 갖고 있었는데 그 작은 책을 요한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합니다. 그것을 먹는 이유는 뭡니까? 그 말씀을 온전히 섭취함을 통하여서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라는 겁니다. 선 섭취, 후 사역인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온전히 증거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섭취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받아 먹어야 합니다. 10장에서 작은 책을 갖고 있던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자기가 갖고 있던 작은 책을 먹을 것을 명하고 그래서 요한이 그 말씀을 섭취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게 됩니다. 선 섭취, 후 사역 이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사역을 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계획이 어떠한지,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이 어떠한지 말씀을 통해서 온전히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 분별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신실하게 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10장은 선 섭취, 후 사역의 하나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상이 끝난 다음에 11~13장은 큰 용에 의해서 그리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서 고난 받고 있는 이 땅 지상 교회의 모습을 11~13장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11장에 보면 두 증인이 나옵니다. 이 두 증인은 뭐냐면 고난과 핍박의 상황 속에서도 신실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등장했던 이단과 사이비들이 이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 두 촛대, 두 감람나무 이것을 얘기하면서 자기들이 섬기고 있는 교주가 바로 여기 나와 있는 감람나무 가운데 하나이다, 두 증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식의 주장을 많이 했습니다. 이단들이 가장 좋아하는 본문 중에 하나가 요한계시록 11장입니다. 여기 나오는 두 증인은 어떤 특정한 사람을 말한다기보다는 신실한 교회 공동체,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선포했던 증인의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했던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두 증인입니다. 이 두 증인이 사역하는 기간은 42 달입니다. 이 42 달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뭐냐면 1260일 그리고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말입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말은 세 때 반이라고 하는 것이니까 3년 6개월 42달입니다. 이것을 날로 이야기하면 1260일입니다. 다 같은 표현입니다. 42달, 1260일, 한 때와 두 때와 반때 라는 말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큰 용이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를 핍박하는 기간과 두 증인이 사역하는 기간이 똑같은 겁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그 큰 용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그때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움츠려 있어야 되나요? 아닙니다. 고난과 핍박의 때에도 주의 말씀을 신실하게 담대하게 선포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 사역을 잘 행하였던 신실하게 감당하였던 교회를 두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땅에서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어떤 사역을 행해야 하는가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의 사역입니다. 11장 11~12절에 보면 이 두 증인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으로부터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거죠. 잘 보십시오. 두 증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증언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난을 받았고요. 그다음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3일 반 후에 하나님께서 죽은 두 증인에게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살아났습니다. 부활한 겁니다. 그리고 하늘로 두 증인을 승천시키십니다. 담대한 증언의 사역, 고난과 죽음, 부활, 승천 이것이 바로 두 증인이 겪게 될 길인데 누구의 길을 재현하는 거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하고 있는 겁니다. 뭘 강조하고 있는 거냐면 이 땅의 모든 교회로 하여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길을 따라 재현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11장입니다.


12장에 보면 하늘로부터 내어 쫓김을 당한 큰 용, 이 큰 용을 뭐라고 하냐면 옛 뱀 또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합니다. 큰 용, 하와와 아담을 유혹했던 옛 뱀, 사탄과 마귀 동일한 존재입니다. 이 큰 용이 하늘로부터 내어 쫓김을 당한 겁니다. 하늘로부터 내어 쫓김을 당한 다음에 큰 용이 무엇을 하냐,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신앙인들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면 오늘날 우리가 큰 용의 시험과 큰 용의 박해 가운데 빠져 있는데 큰 용이 우리를 공격하는 이유는 뭐냐면 하늘에서 내어 쫓김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를 핍박하고 성도를 억압하고 있는 큰 용의 활동은 마지막 발악이라고 봐야죠. 그래서 하늘에서 내어 쫓김 당한 큰 용이 교회를 핍박합니다. 그 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모습을 뭘로 드러내고 있냐면 여인이 아기를 낳습니다. 이 여인을 교회로 봅니다. 아기를 작은 예수로 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작은 예수를 세상에 탄생시킵니다. 큰 용은 이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작은 예수를 집어 삼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에서 여인과 아이가 다 보호 받습니다.


그 이야기를 12장에서 하고 있고 13장에서는 큰 용, 옛 뱀, 사탄과 마귀의 하수인이 등장합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사탄의 삼위일체가 있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우리가 믿고 있는 참 하나님의 모습을 이 사탄이 모방하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잖아요. 그런데 사탄도 삼위일체가 있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면 큰 용 그다음에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그다음에 땅에서 올라온 짐승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적 삼위일체입니다. 그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우리가 숫자를 붙였다면 777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하시고 완전하시고 완전하시다, 거룩하시고 거룩하시고 거룩하시다 그런데 짐승의 표는 666인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있는 겁니다. 근접해 있습니다.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완전히 다릅니다. 666이라고 하는 것은 실패, 실패, 실패인 겁니다. 그러니까 비슷해 보이지만, 모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그래서 13장에서는 사탄적 삼위일체, 용과 용에게 권세를 받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이것은 로마 제국과 황제를 가리키는 것이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래서 황제 숭배로 사람들을 끌고 가는, 황제에게 무릎 꿇게 만들었던 거짓 사제들, 거짓 선지자들이 바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바로 로마 제국과 황제를 가리킵니다. 이것들이 힘을 합치는 겁니다. 큰 용,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땅에서 올라온 짐승 이런 사탄적 삼위일체가 힘을 합쳐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는 것을 훼방하고 하나님만을 진실하게 섬기려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13장 18절에 보면 짐승의 표가 바로 666인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겁니다. 실패, 실패, 실패입니다.


11장부터 13장까지 이 지상에서 큰 용에 의해서 그리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서 핍박받던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 다음에 다시 14장에서는 천상에서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서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을 또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 14장 1절과 4절에 보면 그 어린 양과 함께 시온에 서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이 나옵니다. 1절을 보시면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시온 산에 어린 양과 함께 서 있는 14만 4천의 중요한 특징이 뭐냐면 하나님의 이름을 이마에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다는 겁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겁니다. 짐승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겁니다. 그리고 4절에 뭐가 나옵니까?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여기 여자와 더불어 라고 하는 것이 이후에 보면 큰 음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큰 음녀는 뭐라는 겁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황제에게 무릎 꿇게 만드는 겁니다. 황제를 숭배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시온 산에 어린 양과 함께 서 있었던 14만 4천은 이런 음녀와 더불어서 더럽혀지지 않은 자들입니다. 순결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일편단심의 신앙을 지켜낸 자들입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 4절에 보면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길을 신실하게 따라가는 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고 우상에게 무릎 꿇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어린 양이 인도하는 바대로 예수의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자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자임을 14장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15~18장은 일곱 대접 재앙입니다. 그래서 인 재앙, 나팔 재앙, 마지막이 바로 일곱 대접 재앙입니다. 이 일곱 대접 재앙은 나팔 재앙과 순서가 유사합니다. 여기도 출애굽의 재앙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17장 5절입니다. 로마 제국을 뭐라고 설명하냐면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로마 제국을 바벨론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구약을 보시면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5대 제국이 있죠.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입니다. 이 5대 제국 가운데 요한계시록에서는 로마를 뭐라고 얘기하냐면 바벨론이라 합니다. 왜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말하냐면 유대 전쟁 이후에 유대인들의 문헌을 보시면 로마를 로마라고 말하지 않고 바벨론이라는 별칭으로 사용합니다. 왜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하냐면 로마와 바벨론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집을 상징했던 성전을 파괴한 겁니다. 바벨론이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로마는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별명이 유대 전쟁 이후에 바벨론이 된 겁니다. 그 바벨론이 하나님에 의해서 멸망 당하는 이야기가 바로 18장입니다. 특별히 여기 18장 4절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술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18장 4절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바벨론으로부터 나오라는 말입니다. 여기 바벨론으로부터 나오라는 말은 바벨론을 떠나라는 말인데 여기 떠난다는 말은 뭐냐면 바벨론의 주류 가치와 주류 문화에 동참하지 말라는 겁니다. 신앙인들이 세상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주류 가치와 주류 문화에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바벨론 안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바벨론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매 순간마다 깨어 있어야 되는 겁니다.


19장부터 22장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아마겟돈 전쟁, 백보좌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궁극적으로 이 땅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큰 용, 그리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었던 로마 제국과 황제, 그다음에 땅에서 올라온 짐승인 거짓 예언자들을 하나님께서 순차적으로 심판해내시면서 이 땅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사탄적 삼위일체를 멸망시키는 이야기, 그리고 멸망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 가운데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 보이시고 에덴 동산의 죄악이 말끔히 씻어지고 그 에덴이 회복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할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것들을 보게 만듦을 통하여 이 땅에 있는 신앙인들로 하여금 로마 제국에 무릎 꿇지 아니하고 핍박과 박해의 때를 인내함으로 이겨내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 충성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신실하게 지켜낼 것을 요청하는 것이 바로 19~22장의 내용입니다. 여기 이제 20장 6절에 천년 왕국이 나오는데, 천년 왕국 전에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보면 전천년설이 되는 것이고 천년 왕국 이후에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보면 후천년설이 되는 것이고 천년 왕국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승천하신 이후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천하 만국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면 무천년설이 되는 겁니다.


여기 21장 이후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 이것은 이사야 65장, 그다음에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흐름 이것은 에스겔 40~48장 그래서 요한계시록 안에는 구약에 나와 있는 많은 묵시적 환상과 상징과 수가 기록되어 있음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21장 1절에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바다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원시 바다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바다는 없지만 뭐는 있습니까? 만물을 소생케 하는 생명의 강은 흐르고 있는 겁니다. 그다음에 21장 2절을 보면 새 예루살렘을 뭐라고 수식합니까? 거룩한 성 예루살렘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바벨론을 수식했던 말은 거대한, 큰 성이라는 것이고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교회에 원하시는 것은 크고 거대하고 화려함이 아니라 거룩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동영상을 보시는 분들이 소속되어 있는 교회가 큰 교회와 거대한 교회는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거룩한 교회는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땅 교회에 원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요한은 22장 4절에 보면 그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는 성전이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22장 21절에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 하면서 이 편지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주 예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기원함과 동시에 그것이 반드시 이뤄질 것을 아멘으로 확신하면서 자신의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짧은 4주 동안 요한계시록을 살펴 보았는데 이후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자세하게 요한계시록 본문들을 살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 제국, 황제 숭배 그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초대 교인들이 핍박을 받았지만 로마 제국 황제의 통치 위에 하나님의 통치가 여전히 유효하고 그 하나님께서 사탄적 삼위일체를 반드시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구현될 것을 성도들에게 확신시켜 줌을 통하여서 우상 숭배의 미혹 가운데 있었던 초대 교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일편단심의 신앙을 지켜낼 것을 촉구하는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기록 목적임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형태는 다르겠지만 이 시대를 지배하는 바벨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바쳐져야 될 우리의 충성심을 가로채고 있는 이 시대의 바벨론이 있습니다. 그 바벨론의 유혹과 핍박 가운데 무릎 꿇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바벨론을 겸하여 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인으로 신실한 삶을 살아갈 것을 촉구하는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목적임을 기억하시면서 여러분이 요한계시록을 하나하나 천천히 잘 묵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4주간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이후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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