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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공동서신 녹취 3

by 【고동엽】 2022. 11. 29.

한 주간도 건강하셨습니까. 오늘과 다음 주에 걸쳐서 히브리서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이 있으시다면 성경을 옆에 펴놓으시고 오늘 강의를 함께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히브리서는 좀 어렵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히브리서가 어렵다는 느낌이 드냐면 우리가 좀 생소한 제의적인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마치 구약의 레위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한 번도 제사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 제사장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를 보시면 이 구약의 제의 시스템과 관련된 용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왠지 좀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마치 구약의 레위기를 읽는 것 같은 좀 낯선, 생소한, 어려운 그런 것들을 히브리서를 읽을 때 경험을 하게 됩니다. 히브리서를 보시면 구약의 말씀들이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술술 읽히는 것이 아니라 좀 읽다 보면 구약의 말씀이 인용되고 또 읽다 보면 구약의 말씀이 인용되고 그래서 히브리서가 좀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그런 본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이 히브리서하면 좀 어렵다는 느낌을 많이 갖고 있는데 저희가 2주에 걸쳐서 히브리서의 중요한 내용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히브리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히브리서가 어떤 책인가 라는 것을 기억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13장 22절을 보겠습니다. 히브리서는 권면의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너희에게 간단하게 썼느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되어 있습니다. 여기 권면이라는 것은 오늘날로 이야기 하자면 설교인 겁니다. 히브리서라는 것은 서신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설교이구나 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히브리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서신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설교의 말씀이다, 권면의 말씀이다, 그러면 무엇을 권면한건가. 히브리서에 여러번 나오지만 히브리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히브리서는 구약의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비교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언자를 중시했습니다. 천사를 중시했습니다. 이 예언자와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그의 백성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존재였습니다. 이 예언자, 천사와 예수님을 비교하는 겁니다. 그래서 천사와 예언자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중간 매개자였다면 예수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동영상으로, 직접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래서 예언자와 천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훨씬 더 우위에 있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히브리서입니다. 그다음에 유대인들이 중시했던 인물들이 누구죠? 모세, 여호수아, 아론 이런 사람들을 중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아론보다 훨씬 더 우위에 계신 분이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를 보시면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과 예수님을 계속 비교합니다. 그러면서 유대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보다 예수가 우위에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뭐냐면 많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로 개종을 했다가 너무 힘들고 어렵고 고난과 핍박의 상황 가운데에서 초대 교회에서 유대교로 역개종을 많이 한 겁니다. 유대교 신앙을 원래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초대 교회로 개종했는데 유대교로부터의 핍박, 로마로부터의 핍박 이런 것들이 가중되면서 다시 초대 교회에서 유대교로의 역개종을 많이 했습니다. 이 역개종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상위의 것을 버리고 하위의 것을 붙잡는 것이다, 실체를 버리고 그림자를 붙잡는거다, 성취를 버리고 약속을 붙잡는거다, 초대 교회가 유대교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다, 이것이 진짜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라고 하는 것은 서신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설교이고 권면의 말씀인데 무엇을 권면하는 거냐, 초대 교회를 떠나서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지 마라, 그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초대 교회 안에 머물러라, 고난과 핍박의 와중에서도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갔던 걸음을 기억하면서 인내해라, 그럴 때 하나님의 상이 있다, 이것을 권면하는 것이 바로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역사를 보시면 오랜 세월 동안 히브리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히브리서 6장 4~6절 말씀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을 보시면 신약 성서의 말씀 가운데 가장 엄중하고 분명하게 한 번 배교하게 되면 다시 구원의 길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히브리서 6장 4~6절 말씀입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 4절 보시면 한 번 빛을 보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잖아요.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습니다. 5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진 겁니까? 6절 보시면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히브리서 6장 4~6절은 가장 엄중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등을 돌린, 한 마디로 다시 배교하게 되었다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한 번 배교하면 끝이다 이렇게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두려운 거죠. 초대 교회에서 다시 유대교로 넘어가게 되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길은 없다는 겁니다. 얼마나 엄중하고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초대 교회의 많은 신앙인들에게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초대 교회가 300년 동안 로마로부터 약 10번 정도의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300년 동안의 박해라는 것이 300년 동안 지속된 박해는 아닙니다. 이런 겁니다. 한 15년 동안 평화로운 시대가 있다가 2~3년 동안 박해가 있고 한 3~40년 동안 평화로운 시대가 있다가 2~3년 동안 박해가 있는 겁니다. 간헐적으로 10번 정도의 박해가 있었습니다. 이 박해의 때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신앙을 저버린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박해가 끝나고 나면 다시 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저는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박해가 끝나고 나면 교회에 다시 왔다가 박해가 임하게 되면 신앙을 저버리고 박해가 끝나게 되면 다시 교회 일원이 되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장 부담스럽게 만든 말씀이 뭐냐면 바로 히브리서 6장 4~6절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히브리서의 말씀이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정경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러운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정경으로 인정되는 순간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다가 하나님 안에서 많은 은혜를 누렸다가 한 번 배교를 했잖아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절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 이 말씀 때문에 자기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얼마나 부담스럽습니까.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사실은 교회 안에서 다수였습니다. 마치 신사참배와 똑같은 겁니다. 여러분 신사참배 때 우리 조선 땅에 있는 신앙인들의 95% 이상이 배교했습니다. 배교했던 사람들이 다수였습니다. 그래서 해방된 이후에도 신사참배에 대해 집단적인 회개를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런 일이 똑같이 벌어진 겁니다. 그래서 397년이라고 하는 것이 로마에 의해서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 배교의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그때 이 히브리서의 말씀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 말씀이 정경이 된 겁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이 부담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보다 뭐를 더 사랑한 겁니까? 믿으면 구원 받는다,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고 어떤 죄도 다 용서 받는 거라고 말하는 바울 서신을 훨씬 더 사랑하게 된 겁니다. 그것이 2천년 교회 역사 가운데 이어지게 된 겁니다. 이 히브리서의 이 말씀 때문에 히브리서는 오랜 세월 동안 정경이 됨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밀려나게 된 그런 본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구원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 천국에 입성하는 것, 그리고 천국에 입성하게 되면 내가 원하는대로 마음껏 할 수 있는 이것이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음의 핵심은 뭐냐면 하나님의 백성 아니였던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됨, 이것이 구원받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바깥에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오게 됨, 하나님의 백성이 됨 이것이 바로 구원받음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됨에 있어서 우리의 공로로,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건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가운데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신분이 먼저 변화된 겁니다. 신분이 변화된 다음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존재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구원 받은 다음에 뭐가 있는 겁니까? 성화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 통치 바깥에 있던 하나님과 무관했던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을 뭐라 하죠? 칭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과거적 구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다음에 이제는 변화된 신분에 걸맞게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뭐라고 합니까? 성화라고 말합니다. 즉 현재적 구원입니다. 오늘도 내가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성화를 통해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실 미래적인 구원,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맛보게 되는 이것을 우리는 영화라 말합니다. 이것을 미래적 구원이라 합니다. 즉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대로 마음껏 살 수 있는 티켓을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뭡니까? 하나님의 통치 바깥에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옴, 하나님의 백성이 됨,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하나님의 백성이 됨에 있어서 우리의 공로,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이 구원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이 구원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뭡니까?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함,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회됨 이것이 오늘도 내가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는 구원받은 자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바로 공동 서신입니다. 바울 서신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가,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았는가를 강조하는 거라면 구원받은 자로서 이 구원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공동 서신입니다. 바울 서신이 칭의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공동 서신은 성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바울 서신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강조하는 거라면 공동 서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게 된 이 구원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오늘도 어떻게 살아낼 수 있는가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공동 서신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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