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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9장1-9 /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주심

by 【고동엽】 2022. 11. 29.
■2022년 11월28일(월)■
 
(누가복음 9장)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묵상/눅 9:1-9)
 
◆ 능력과 권위를 주심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주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없었던 것인데, 부여되는 순간에 갖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 우리에게 있는 능력과 권위가 누구로부터 왔는지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
 
능력과 권위는 혼동되기 쉽고, 또 실제로 구별 없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구별해야 한다.
 
능력은 헬라어 '뒤나미스(δυναμις)'를 번역한 것인데, 이것은 일을 처리하는 실제적인 힘(power)이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졌을 때 예수님에게서 빠져나간 그것이 바로 뒤나미스다. 폭발물 다이너마이트(dynamite)의 어원이 바로 뒤나미스다.
 
권위는 헬라어 '엑수시아(εξουσια)를 번역한 것인데 이것은 위치적인 힘(authority)이다. 백부장이 자기 하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청할 때, 예수님이 가시자 백부장은 사양하면서 말씀만으로 고치실 것을 간청하면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눅 7:8)라고 할 때, 수하라는 말이 엑수시아다.
 
권위가 생기면 힘이 따라오고, 힘이 생기면 권위가 따라오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에 종종 이 둘은 혼동해서 쓰이기도 한다. 가령 대통령이란 위치는 권위와 힘을 동시에 갖게 한다. 대통령이란 위치가 권위라면 대통령의 명령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군대는 힘이다. 이렇게 권위와 힘은 종종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권위와 능력을 함께 주셨다. 귀신을 제어하는 것은 권위다. 병을 고치는 것은 능력이다. 우리가 귀신을 쫓아낼 때는 힘으로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위, 곧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과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제자된 권위를 가지고 쫓아내는 것이다. 자기 신분에 대한 확신이 있는 자만이 이런 권위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주셨듯이 오늘날 성도된 우리에게도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 기본적인 능력과 권위를 알고 살 필요가 있다.
 
모든 성도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권위가 있다. 그리고 세상의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빛과 소금으로서의 능력이 있다. 
 
아, 많은 성도가 자기 신분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워하고 제대로 권위를 행사하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별 볼 일 없어 보일지 몰라도 '이래 봬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큰소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큰소리칠 수 있는 자들만이 귀신을 쫓아낸다. 의심에 가득 찬 자가 어떻게 큰소리칠 수 있겠는가? 자기 신분을 확신하지 못하여 주눅이 들어있고, 죄책감에 빠진 자가 어떻게 담대히 명령할 수 있겠는가? 그런 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기 어렵다.
 
신분에 대한 확신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십자가의 은혜를 믿기보다는 자기 의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직도 자기 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더 의를 쌓아야 무언가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의를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의를 힘입은 자들이다. 곧 십자가의 은혜로 당당히 선 사람들이다. 자기 의를 의지하는 자는 겸손이 아니라 불신이다.  의심하는 악한 마음과 싸워야 한다.
 
 
◆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성도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모름지기 교회란 이 세상에 머무는 하나님 나라로서 군대로 말할 것 같으면 최전방부대와 같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적군과 대치하고 있는 실감 나는 전쟁터다. 후방 부대에 배치될 것을 기대하지 말라. 후방 부대는 죽어서 가는 곳이다.
 
전방 부대의 가장 큰 역할은 잘 싸우는 일이다.
즉 교회의 가장 큰 의무는 자기 편 군사들을 보호하는 것과 더불어 잘 싸워서 적편의 군사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곧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복음 전파는 우리 성도들의 최고의 사명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기회를 얻든 못 얻든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꼭 길거리 전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터넷 댓글로도, 카페 글로도, 블로그로도, 친구들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간증함으로써... 수많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 신앙도 빈약해진다.
 
직접 전도하기 어려우면 제대로 선교하는 곳에 헌금이라도 하라. 헌금도 어려우면 기도라도 해라. 그것도 거절한다면 당신은 하나님 나라 시민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셨다(2).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주신 사명이다(마 28:19-20). 복음을 전하고, 상처난 자들을 위로하며 낙심한 자들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주님
복음의 일꾼으로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도에게 주신 능력과 권위를 감사드립니다.
침묵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제 신앙이 진실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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