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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자기 승리의 비결! (갈 5:16-18)

by 【고동엽】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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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승리의 비결! (갈 5:16-18)

 

여러분이 익히 아는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 기는 것이요, 모든 날의 문제는 죽 는 것
이다."
그는 인간에게는 세 가지 종류의 싸움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먼저는 자연과의 싸움 입니
다. 많은 재난-홍수라든가, 혹은 지진이라든가, 또 춥고 더운 기후에서 오는 것이라든가-많
은 질병, 이런 것들과 우리는 싸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싸움에 이기 면 건강하고, 이 싸
움에 지면 죽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연과의 계 속적인 싸움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두 번
째는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다. 이웃을 협조자로, 반가운 사람 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대
하지 못 하고, 이웃과 더불어 싸워야 하 는 긴장관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여러분, 상점에 가
서 조그마한 물 건 하나를 사면서도 우리는 신경을 씁니다. '어떻게 하면 속지 않고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을까!' 또, 파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팽
팽하 게 긴장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왜 이러해야 되는 것입니까? 왜 이렇 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심지 어는 부부간에도 먹느냐, 먹히느냐, 지배하느냐, 지배당하느냐, 주인이 되느
냐, 종이 되느냐 하며 팽팽하 게 싸워 한 평생 싸우며 살아가는 이 비참한 모습. 왜 이러해
야 되 는 것입니까? 다른 해결은 없을까 요? 또한 우리는 부득불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합
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욕 망과 자신의 나약함과 자신의 게으 름
과 더불어 싸웁니다. 그러면서 자기 진실을 지켜 가는 것이올시 다. 이래서 빅토르 위고는
자연과 의 싸움을 설명하면서 '바다 위의 노동자'라는 책을 썼고, 인간관계를 역사적으로 그
는 연구하면서 '93년' 이란 소설을 썼고, 그리고 자기 자 신과의 싸움을 극적으로 그려서 '
레 미제라블'이라 하는 훌륭한 소 설을 썼습니다. '레 미제라블'은 뮤지컬로도 만들어져서
미국에서는 한 극장에서만 3년 동안을 계속 공 연했었습니다. 공교롭게 저는 세 번 보았습
니다. 아무 생각 없이 미국에 갔던 길에 친구들을 만나니 까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고 해서
갔더니 그만 세 번이나 가게 됐습 니다. 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 하게 하는 작품! 역시 '레미제라 블'은 명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 자 신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해 보셨습 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제어능력 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느냐 나는 내 마 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존재 냐' 하는 것입니다. 자 우리는 자 연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자
연의 재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서, 혹은 경제문제에 대하여, 정치 문제에 대하여 많은 생각
을 합니 다. 심지어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나 외의 다른 사람, 또 그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 다. 많이 생각합니다. 고민도 합 니다. '왜 저 사람이 내게 이렇게 대할
까?'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 나?'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마는 여러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고민 해 보셨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 다. 다른 사람 원망하지 말고, 내 가 피해자라고 생각
하지 말고, 내 가 가해자라고 하는 입장에서 한번 나를 돌이켜 보셨습니까? '나 때 문에 불
행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가? 내가 많은 사람에게 걱정거리 가 되고 있나?' 그렇게 생각해
보 셨습니까? 나라고 하는 존재! 인 간 자체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해 보셨느냐 말입니다.
자기 진실, 자 기 존재를 찾으려고 얼마나 몸부림 쳐봤습니까? 어느 날 쇼펜하우어 라고 하
는 유명한 철학자가 길을 가는데 깊은 생각을 하면서 가다가 너무 골똘히 생각하던 나머지
앞에 서 오는 사람하고 부딪쳤습니다. 대낮에 충돌이 됐습니다. 꽝하고 부딪히니까 그쪽 사
람이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다가 들이받는 거냐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하 고 물었더니 쇼펜하우어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 문제요. 내가 누군지 를 내가 몰라서 지금 고민하고 있 는 거요"
그랬다고 합니다. 여러 분, 스스로를 찾기 위하여 고민해 보셨느냐 말입니다.
이솝 우화 중에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파리와 좀나비라고 하 는 얘기가 있는데, 어느 날
파리가 꿀 항아리에서 꿀을 먹다가 변두리 에서 조금씩 빨아먹으면 될 텐데 조금더 조금더
많이 먹으려고 깊이 들어갔다가 그만 꿀 항아리에 빠져 버리고 말았어요. 날개가 꿀에 젖
어서 이제는 날 수가 없게 되고, 그냥 거기서 꿀 좀 먹다가 죽어 버 리게 되었단 말입니다.
이 신세가 됐을 때에 그 좀나비라 하는 나비 가 펄펄 날면서 그를 비웃었습니 다.
"
야 이 놈아, 아니 조그만 놈 이 변두리서 좀 빨아먹어도 충분할 걸 뭐 그 안에까지 들어갔
다가 그 모양이 되냐, 이 미련한 놈아."
그 랬답니다. 그러다가 해가 졌어요. 주인이 등불을 켰더니 좀나비들이 모여드는데 불 가까
이로 막 모여들 다가 좀 더 밝은 곳으로, 좀 더 밝 은 곳으로 나비가 모여들다가 그만 그
속에서 타 죽었다 합니다. 그 러니까 이 파리가 하는 말이
"너는 나 보다 더 바보다."
그랬답니다. 자기 욕심, 자기 정욕을 이기지 못 해서, 여기에 끌려 가다가 비참하 게 희생되
는 이런 모습. 우리는 이 군상을 보며 이 속에서 살고 있 지 않습니까? 그래 나는 누구입니
까. 내 마음, 내 몸, 내 뜻, 내 습 관, 내 성향 이대로 좋은 것입니 까? 이대로 괜찮습니까?
한 번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이라고 하 는 신앙적 위인이 있습니다. 참으 로 훌륭합니다. 가슴을
뜨겁게 하 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서 7장입니다. 자기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사람들, 그리고 바울 을 세계적인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 로 존경하고 있는 그 로마사람을
향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 편지 중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 주 온 몸을 홀랑 벗은
것과 같은 적나라한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본문을
읽을 때마다 '이렇게 진 실할 수 있을까! 어찌 이럴 수가 있나! 그는 위대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왜요?
"나는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 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 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
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 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
져내랴?"
절박하게 이렇게 부르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진실을 이렇게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 서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구속의 은혜를 고백하게 됩니다. 자기
진실! 아 주 진실한 자기 모습을 자기는 알 고 있었고, 또 그렇게 고백하고 있 었습니다. 그
는 말합니다. 고린도 전서 9장에서
"내 몸을 쳐서 복종 케한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내 버려두면 안된다. 아주 쳐서 노예 를 길들이듯이 쳐서 복종케 해야
만 되는 그런 존재다', 아니면,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는 오히려 버림 이 될까 두렵다'고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런가 하면 고린 도후서 12장에 가서는 더 절박한 얘기를
합니다. '육체의 가시'가 사탄의 사자가 있다고, 이것이 아 니면 나는 겸손할 수 없고, 이것
이 아니면 나는 교만하고, 이것이 아 니면 은혜에 살 수 없는 존재다. 나는 못 된 놈이라고
요. 육체에 가시가 있어서 나를 계속 찔러야만 믿음 안에 바로 설 수 있는 이 정 도밖에 안
되는 존재라고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는 진실한 사람입 니다. 그는 자기를 알고 있었습니
다.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을 어 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사회학 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
람이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실패했다고 합시다. 누구든 실패 했다면 그 이유
는 네 가지가 있습 니다. 첫 째는 욕심이 많았어요. 욕심이 지나쳤어요. 누구를 막론 하고
실패한 데는 욕심이 지나쳐 서. 두 번째는 목적이 잘못되었어 요. 자기 일생을 걸만한 확실
한, 확고부동한 목적이 없었어요. 그 런 목적으로써는 성공할 수가 없었 습니다. 목적이 문
제였어요. 세 번째는 내가 세운 목적에 대한 합 리적 값을 지불하지 않았어요. 큰 것을 원했
으면 수고해야죠! 학자 가 되려 했으면 열심히 공부해야 죠! 그리고, 내가 지불해야될 진 실
과 충성과 열정을 다하지 못 했 어요. 열정을 다하지 못한데 원인 이 있는 거예요. 네 번째
는 자기 자신을 믿었어요. 세상에 자기처 럼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없습니다. 여러분, 여기까
지 깨달아 보았습니 까? 아직까지 내가 무얼 할 수 있 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마음먹으 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내가 누구입니까? 나라는 존재는 믿을 것이 못 돼요. 내 지
식, 내 감정, 내 판단, 이게 도대체 믿을 것이 못 돼요. 바로 여기에 문제 가 있었던 것이요.
내가 나를 너 무 믿었어요. 믿을 것이 못되는 걸 알면서도 믿었어요. 그것이 오 늘의 실패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자기 자신을 자기가 의지 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자기가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돼요. 그런고로 대 포기가
필요합니다. 큰 포기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예일대학의 총장님이 어느 날 대학 졸업하는 학
생들 앞에서 일장 연설 을 하는데, 아주 의미 심장하고도 간단한 말을 해서 유명합니다.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이 승리자 가 될 것을 완전히 포기하면 틀림 없이 승리자가 될 것입
니다."
승 리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 일등이 되고자 하는 욕망! Top crazy! 이것을 포기하기 전에
는 당신들은 승리하지 못합니다. 대단히 중요 한 얘깁니다. 우리는 쓸데없이 경 쟁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허무한 일에 너무 많은 정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제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들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어요. 다 포기해야 합니다. 욕망 자체
에 대한 완전한 중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강하게 말씀하 십니다. '성령을 쫓
아 행하라. 내 욕망, 내 의지, 내 판단을 쫓아 행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쫓아 행 하라.
그리하면 네 욕망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네 자신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요 새 현대적인 표현을 빌리면은 패러 다임 스위치(Paradigm switch)를 말하는 것이올시다.
지금까지 우 리가 살아온 규범이 있습니다. 또 전형이 있습니다. 이 패러다임, 이 대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바꾸어 야 됩니다. 농담 겸 진담으로 말 합니다마는 어리석은 자가 소신껏
살려고 하는 것처럼 답답한 일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제 그 만 어리석도록 생각을
돌려야 합니 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 거기 다가 부지런을 떨어요. 점점 더 멀리 갑니다.
미련한 사람이 또 고집을 부립니다. 저 망하고 남 망하게 합니다. 생각 좀 달리 하 십시다.
옛날 어른들은 그런 얘기 했습니다. 탱크처럼 밀어 부치면 뭐 하나 되는 일이 있었다고 합
니 다. 요새는 안 됩니다. 고집 좀 그만 부리세요.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세요. 근본적으로 패
러다임 스위치가 필요합니다.
언제 한 번 조그마한 잡지에 난 꽁트를 보니까 그런 게 있습디다. 골프를 치는 프로선수가
골프를 잘 쳐 나가다가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다고 그럽니다. 몇 달 동안 안 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불안해져서 안된답니다. 뭐 아주 형편없이 떨 어진답니다. 몇 달 동안 푹 떨어 져서
성적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안 된답니다. 거기서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비결이 뭐냐하면
다 잊어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이랍니다. 교과서적으로 골프채 잡는데서부터
다시 시작을 해요. 그 동안에 상 받은 거 다 잊어버리 고, 그 동안에 우승했던 거 다 잊 어
버리고 다시 초보자로서 시작을 합니다. 기초부터. 그래서 올라가 야 다시 전보다 더 올라
갈 수 있 다는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세요. 아주 백지 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됩니 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예요. 뭐 한가지 고치고, 두 가지 고치고, 결 심하고,
맹세하고… 이제 그만하 세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 가 중생하며 예수 처음 믿고 십
자 가의 예수를 발견하고 내 죄 사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던 감격 바로 거기서부터 다시 시
작하는 거예요. 그 동안 믿었느니 내가 뭘 알았느 니 뭐 내가 직분을 맡았느니 뭐라 쓸데없
는 생각 다 잊어버리세요. 처음 믿을 때로 돌아가고 첫사랑으 로 돌아가야 됩니다. 다시 생
각하 세요. 거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 니하리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율 법적 관계에서는 구원의 길이 없습 니다. 소극적 방법으로는 해결이 없습니
다. 부정적 방법으로는 죽 음뿐입니다. 더 이상 비판 할 것 도 없습니다. 믿어 볼 것도 없습
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창 조적인 역사로 시작되어야 됩니다. 이제 내 생각은 다 버
리고 그저 어 리석을 정도로 주님의 말씀에 따르 는 것입니다. 성령이 감동해 주시 는 대로,
성령이 지시해 주시는 대 로, 성령이 깨우쳐 주시는 대로, 성 령이 인도하는 대로 그대로 순
종할 것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원수를 이기 려고 몸부림 칠 것
없습니다. 아 주 사랑해 버리면 됩니다. 핍박하 는 자를 피해보려고 하고, 미워하 는 자를
같이 미워할 것 없습니다. 대결하지 맙시다. 싸우지 맙시다. 더 이상 비방하지 맙시다. 이제
는 비방하는 자를 위하여 복을 빌어 요. 이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 령은 복음을 빌라고 말
합니다. 그 래서 에베소서에 보면 '도둑질하던 자가 있느냐 이제는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
여 일하라' 그랬어요. 도 둑질하던 사람은 구제하고, 자 교 만하던 사람은 어린아이의 마음
으 로 돌아가서 겸손해 지세요. 내가 무엇을 하고 남을 도왔다고 생각하 던 것 다 잊어버리
고 오로지 나는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하 며 다시 시작하세요. 온유와 겸손, 화평과
진실을 찾을 것입니다. 새 로운 방법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서 출발할 것입니다.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런고로 빌립보서 2 장에 말합니다. '이 마
음을 품으 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이 마음을 품으라.' 예수의 마음으 로 다시 바
라보세요. 세상은 아름 답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될
때에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 합니 다. 그는 자유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도 이 어려운 나
자신을 이 기게 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순간, 세상은 새로운 세상 으로 내게 다
가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정과 욕심까지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고로 여기에 자유함이 있습니 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자기 노력으로 해 보려고 애쓰다가
더 비참해 지는 것을 많이 봅니다. 참으로 비참한 사람은 자기 욕심에 끌리는 사람이요, 더
비참한 사람 은 자기 욕심을 이기지 못 해서 몸 부림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자 기 옛 생
활에 노예가 된 사람처럼 비참한 사람이 없어요. 이건 안돼 는 줄 알면서도 벗어나질 못하
는 거예요. 우스운 얘기입니다만 가 끔 비행기를 타고 여기 저기 다니 다 보면 비행장 대합
실에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러야 될 때가 많습니 다. 그 대합실에서 어떤 때는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리려면 참 지루 하거든요. 그래서 이리 저리 좀 책을 보다가 또 이리저리 왔다갔
다 하며 보니까 늘 보게 되는대요 그 넓은 대합실에 한쪽 구석을 유리로 막아 놓고 거기다
가 '흡연실'이라고 써 놓았거든요. 사람들이 그 속에 들어가서 요렇게 빨고 있는 걸 보 니까
꼭 원숭이 같기도 하고, 동물 원 같기도 하고. 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당신들이야말로 참으
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래 그걸 이기지 못해 서 거기 들어가서
그게 뭡니까. 저게 뭐예요, 꼴이… 그 남의 얘 긴 줄 알지 마세요. 내가 자기 정 욕, 자기 혈
기, 자기 욕심, 자기 자 존심, 이거 별 것도 아닌 것, 여기 에 붙들려 가지고 그 사는 비참한
모습. 그 노예화된 성품, 비참한 것이에요. 이제 다 그만하고 패러 다임-스위치 해 버리세
요. 그리고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탁 털어버리고 일어나 보세요. 새로 운 세계를 보
게 될 겁니다. 힘으 로도 못하고 능(能)으로도 못합니 다.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할 때만 가능합 니다. 그런고로 성령을 쫓아 행하 라. 그리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을거라고요. 그것은 곧 사랑 입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 십시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그 이웃을 사랑하십시다. 성령은 곧 진리의 영이요, 사랑의 영입니다. 그때에 새로
운 세계, 새로운 인간 관계, 새로운 자신을 찾게 될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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