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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6)

by 【고동엽】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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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6)

 

1945년 8월 15일 우리 한국은 36 년 동안의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해 방을 맞았습니다. 그
때의 감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어렸을 때의 기억이지만은 한 달여 동안
아무도 일하는 사람도 없고 모두가 계속, 마을이든 교회 든 어디든 계속 축제로 그렇게 분
위기를 이어 갔습니다. 그래 해방 을 맞고 첫 주일을 맏이 했을 때 한경직 목사님께서 신의
주에서 목 회를 하시면서 해방 후 첫 주일 설 교를 하시게 됐다고 합니다. 그 자신으로서도
신사참배 문제로 해 서 일본사람들에게 많은 박해를 받 고 고통을 많이 겪으신 분입니다.
이제 해방을 맞았으니 감격이 특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서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 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는 일본말을 앗싸리 하지 맙시다."
그 랬답니다. 여러분 자기도 모르게 이제 오래 젖은 습관대로 일본말이 이렇게 나왔다고, 그
래서 다 같이 웃었다고 합니다.
자유라고 하게 되면 정치적, 경 제적, 교육적 그런 자유가 있고 또, 도덕적, 신앙적 자유가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 은 자유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겁 니다. 그것
은 벌써 의식에서 자유 를 빼앗긴 것입니다. 자유가 무엇 인지 모르고 또 자유가 무엇인지
를 모를 뿐더러 자유를 빼앗겼다고 하 는 사실을 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에 우리는 노예 성 혹은 노예제도, 노예의식 여기 에 깊이 길들여서 그 노예의식 속 에 익
숙해지고 말았다 말입니다. 그럴 때에 그는 자유를 생각할 수 가 없게 됩니다.
The Shawshank Redemption 이 라고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 말로써는 '쇼생크 탈출'
이라고 번역 이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앤드 두 프레인'이라고 하는 그런 젊은 유 능한 회
계사가 있었는데 어떤 때의 실수로 인해서 아내와 정부를 살해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됩니다.
본인 은 분명히 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누명을 벗을 길이 없습 니다. 증거가 모자
라서…… 그래 서 그는 종신형을 받습니다. 이제 감옥에 들어가 고생을 하게 되는데 억울한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누 가 뭐라 해도 나는 죄인이 아니라 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감
옥 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을 합니 다. 탈옥을 합니다. 이제 그런 얘 기인데 그 감옥에 브
룩스라고 하는 죄수가 있었는데 이분 역시 종신형 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감옥에 무려 50
년을 있었답니다. 이제 백 발 노인이 됐습니다. 정부에서 그 걸 불쌍히 여겨서 50년만에 그
를 가석방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가석방하게 된다는 걸 두려워합니 다. 감옥밖에 생활을
두려워합니 다. 그는 자유를 무서워합니다. 감 옥에서 빠져나가지 않기 위해서 석 방 받지
않게 위해서 살인극을 연 출을 합니다마는 실패합니다. 결 국은 감옥에서 석방됩니다. 그는
감옥생활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 에 거기가 편하지요. 밖에 나와서 스스로 산다는 것은 너
무 어려웠어 요. 자유가 있는가 하면 책임이 있고, 벌어먹어야지요 뭘 해야지요 이 종신형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하 는 그 이름이 있기 때문에 이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Brooks was here."
'브룩스는 여 기 있었다.'하고 딱 한마디 유서를 써 놓고 자살을 했습니다. 무얼 말하는 것
입니까! 감옥생활에 너 무 오랫동안 익숙해져서요 거기 길 들여지고 나니까 오히려 자유가
부 담이 돼요. 자유스럽다는 것이 고 통이 되더란 말입니다. 그걸 알아 야 합니다.
간혹 우리 그런 얘기 듣지요. 북한에서 북한 사정이 어려워서 남 한으로 탈출한 분들 계시
지요. 여 기 와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북한을 그 리워하는 분도
많아요. 벌어야지 공부해야지 공부시켜야지 뭐 돈 벌 어야지 저축해야지 뭘 해야지 너무 힘
들다 이 말이요. 이 자유가 너 무 고통스럽다고 고백합니다. 그 런고로 여러분 깊이 생각해
야 합니 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해방될 때에 초등학교 5학 년생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참 어려웠습니다. 일본사람들
정치하 에서는 학교 가서는 완전히 일본말 만 해야 됩니다. 만일에 한국말을 한마디라도 하
면 그날은 벌서고 변 소 청소해야 됩니다. 그러거든요. 또 집에 가서는 아버지가 엄해서 일
본말을 한마디 했다하면 그 날은 매를 맞습니다. 그니까 집에 돌아 가서는 한국말, 학교 가
서는 일본 말 아주 헷갈립니다 아주.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해방이 된 다음 에 얼마 후에
학교를 나가 봤더니 그 일본말만 하시던 선생님들이 조 회 할 때에 운동장으로 나오면서 서
로서로 한국말을 하면서 나오는 데 얼마나 우스운지요. 자기들도 웃고 학생들도 다 웃었어
요. 한국 사람이 한국 말하는 것이 당연한데 계속 일본말만 강요받다가 이제 와 서 한국말
을 하는 게 이렇게 쑥스 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자유가 무 엇입니까?
해방 후 얼마 후에 학교에 가보 니까요 교장 선생님 댁을 전부 때 려 부셨어요. 사택을 때
려 부시고 실험실, 의자 할 것 없이 다 때려 부시고 도둑 맞았어요. 재미있던 그 실험 기구
들 하나도 남은 것이 없어요. 이것이 자유입니까? 도 둑질과 방종과 파괴가 이게 자유더 냐
그말예요.
그래서 생각해야 됩니다. 자유 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는 자유 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유와 자유인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자 유는 주어지는 것입니다. 간혹 우 리는 그런 생각
을 합니다. 쟁취하 는 것이라고. 역사가 말합니다. 자유를 쟁취해서 혁명을 통해 얻어 놓고
평화롭게 사는 나라가 하나도 없습니다. 혁명을 통해서 얻은 자 유는 자유 같으나 벌써 폭
력과 무 질서의 노예가 된 겁니다. 우리도 그 예입니다. 4·19를 통해서 자 유를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거기 서 대모혁명의 재미를 보았어요. 지금까지 이 무질서에서 헤어나지 를 못
하는 겁니다. 정말로 자유입 니까?
그런고로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싸워서 얻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
아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가 말해 주는 진리입니다. 피땀을 흘리고 싸워 서 쟁취해 봤자 그
런 순간 벌써 그 인간성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폭력의 노예가 됐어요. 방종의 노 예가 되
고 말았어요. 더 깊은 수 렁에 빠져듭니다. 이 사실을 개인 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잊어서는
안됩니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입 니다.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 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자유는 주어 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유 케 하시는 것이다. 그런고로 굳세 게 서서 다
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렇게 세 가지로 우리에 게 말씀하십니다. 자유는 진리 안 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
음 8장 32절에 보면
"너희가 진리 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스 도께서 자유케 하실 때만이 참 자
유가 있습니다. 이 자유는 죄로부 터 저주로부터 사망으로부터의 자 유입니다. 그리고 영생
을 약속해 주시고 영원한 자유입니다. 여러 분 영적 자유가 없이는 양심의 자 유가 없습니
다. 양심의 자유 없이 는 정신적 자유가 없습니다. 정신 적 자유가 없이는 물질적 경제적 정
치적 자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 런고로 참 자유는 오로지 진리 안 에 오로지 영생 안에 있
는 것입니 다.
자 이제 주어진 자유, 중요합니 다. 그걸 지켜야겠는데요. 그리스 도께서 자유케 하신 자유
우리 성 도들이 이 자유를 잘 지켜가야 합 니다. 자유를 얻기보다 지켜 것이 더 어려워요.
그러려면 먼저는 이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합니다. 또 이 자유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
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어 진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바로 지 켜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
으로 지 켜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자유를 지키려면은 이것이 어떻게 주어졌 다는 걸 알아
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값을 지불하고 주어집니까?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한 자유 가
주어지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많은 희생자가 나고 많은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많은 대가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값을 지 불했습니다. 이렇게 지불해서 어 두워진 소
중한 자유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의 고귀함을 알아야 지켜 나갈 수 있는 겁니
다. 그런고로 다시는 옛것으로 돌아가 서는 안됩니다. 무슨 말이고 하니 자유가 가장 소중하
기 때문에 이것 과는 무엇도 바꿀 수가 없는 것입 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의 설교 중에 그 옛날의 설교한 설교 중에 재미 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서독에 가 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면서 얘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동독의 개 한 마리가 서독
으로 넘어 왔더랍니다. 그래서 개보고 물어 봤답니다.
"너 왜 넘어왔냐? 주인이 밥을 안 주더냐? 주인이 때리더냐?"

"아 네요."

"그럼 왜 넘어왔냐?"

"마 음대로 짖고 싶어서요."
동독에서 는 개에게 자유가 없었다고 해요. 자유를 위해서 넘어 왔다고. 그런 재미있는 얘기
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유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자유를 잃어버리는 일이라 면 무엇이든지 사양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좀 가난하면 어 떻고, 좀 어려우면 어떻습니까. 어 찌 이걸 자유에
비교하겠습니까! 우리는 자유의 고귀함을 알아야 됩 니다. 어떤 것으로도 소중한 자유 를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자유를 꼭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이스 라엘 백성들 애굽에서 나왔습
니다. 그 노예 생활로부터 자유 했습니 다. 자유를 얻었으니 이제 좀 고 통스러우면 어떻습
니까! 좀 목마 른 시간을 가면 어떻고 광야 생활 이 좀 고달프더라도 뭐 죽는 건 아 닌데
참고 견딜 수 있겠지요. 그 러나 저들은 그 소중한 자유를 모 르고 오히려 애굽생활에서의
노예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었어요. 그 것이 멸망의 원인입니다. 아니 죽 을 고생을 하더라도
이건 자유인이 요 저기는 노예입니다. 노예의 부 귀영화보다는 자유로운 고생이 더 아름다
운 거 아니겠습니까! 진리 와 함께 자유 함이 영광이 아니겠 습니까? 이것을 모르면 영원히
자 유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식민 지 문화에 깊이 젖어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방
된 지가 벌써 53년이라고 하지마는 아직도 우리는 해방되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자
유를 얻었지마는 자 유인이 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습 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해방 된
직후에 초등학교에서 교과서를 공부해야겠는데 공부하는데 책이 없잖아요. 한국말로 쓴 책
이 없어 서 그 당시는 어땠느냐 하면은 저 도 그 때 한 기억이 납니다마는 일 본 교과서를
놓고 일본말로 눈으로 보면서 한국말로 읽습니다. 그걸 훈련했어요. 왜요? 교과서가 없 으니
까. 자유가 없는 겁니다.
그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식민지 문화에 깊이 젖어 있습니다. 우리 가 얼마나 깊은 노예생활
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 첫째가 탈법주의입니다. 독립한 나라 사람들은
언제나 법을 지키는 것을 영광으로 압니다. 자존심 있 게 생각합니다. 이 법을 지키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고, 나라를 위 한 것,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준법정신은 내 명예입니다.
그러 나 우리는 아직도 어떻게 해서든지 법에서 빠져나갈 생각만 합니다. 그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보면 붉 은 신호가 아직 있는데도 불구하고 쏙 빠져나가면서 신 나하는 걸 볼 수 있
어요. 자기가 무슨 잘난 체 하고 똑똑한 척 하고 이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걸 모릅니다. 이
게 바로 식민지 문화에서 나오는 겁니 다. 아직도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 지를 못했어요. 왜?
보세요. 일 본사람들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을 때는요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법 을 빠져나
가는 것이 애국자예요. 저 법은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 니까 일본사람을 위해 있는 법이
니 까. 그걸 빠져나갈수록 잘하는 것 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젠 우리 나라의 법입니
다. 그렇다면 이젠 법을 지키는 것이 자존심인데 아직도 법만을 이리저리 빠져나가 면 무슨
잘난 것 같이 생각을 해 요. 탈법이 아주 체질화가 돼 버 렸어요. 이 식민지 의식은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까? 또한 생각 해 보세요. 물고기는 물 속에 사 는 것이요. 공중의 새가
아무리 자유롭지마는 물 속을 헤엄 칠 수 는 없는 겁니다. 우리는 새로운 질서, 법을 따라서
그 안에서 자유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익혀야 합니 다.
또한 숙명론적 세계관입니다. 이렇게 나라를 빼앗기고 있을 때에 우리 개인적으로 무얼 해
봐야 되는 일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젊은 사 람들이 그저
"이 풍진 세상을 만났 으니 나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어 라 마셔라."
이랬잖아요. 거기서 무책임한 사람들이 이래버렸어요. 자기를 다스릴 줄 몰라요. 그래서 는
순 운명론에 맡겨 버리고 그저 무책임한 생활. 아직도. 그리고 남을 원망합니다. 또 관료주
의적 의식이 있어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는 일은 없고, 만사는 남에게 질 질 끌려가요. 그
냥 명령에 따르고 지시하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아요. 이게 바로 식민지 문화의 잔재입니 다.
더욱 무서운 것은 자포자기입니 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침략했 을 때에 어떻게 하면은
이 나라사 람들을 아예 못 쓰게 만들까 해서 저들이 만든 문화가 둘이 있습니 다. 하나가
유곽이요 또 하나가 술집입니다. 동네마다 술집을 만 들었어요. 그 술잔 돌리기 문화가 바로
그 때 생긴 겁니다. 이것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고 나라 잃 어버린 백성이다 해 가지고
그냥 먹고 마셔라 코가 삐뚤어지도록 먹 어요. 도대체 술도 문화입니다. 이 민족은 이 술로
망하는 겁니다. 온 세계의 최고의 술. 술을 마셔 도 이렇게 마시는 사람이 없어요. 술도 음
식인데 이게 무슨 짓입니 까. 이게 바로 식민지 문화, 일본 사람이 한국을 망치기 위해서 만
들 어 놓은 것인데 그냥 끌려 들어가 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 다. 자포자기, 이
망조입니다.
그저 난 지금 방송국에 할 말이 많아요. 그 드라마라고 나오는 거 보면 그저 속 상하면 술
먹어요. 옛날에는 남자들만 먹더니 이젠 여 자들도 잘 먹어요. 홀짝 홀짝 그 냥. 속만 상하
면 술! 그것밖에 안돼요. 우린 인간이. 우리 민족 이 그것밖에 안되냐고. 속상하면 조용히
앉아서 책을 볼 수도 있고, 뭐 예수 안 믿으면 명상 할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점잖은 사람한
테 찾아가서 스승한테 물어볼 수도 있 고, 아 방법이 많으련만 그래 그 저 열 번 같이 포장
마차. 도대체 이 망조가 어디 달린 거예요. 작 가들이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 지 모르겠
어요. 이 민족을 어디로 인도할 것이요? 속상한 사람은 다 술 마시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괴 괴 소리질러야 되는 거예요? 획일 적이에요 아주 획일적이야. 천편 일률적으로 이게 망
조가 아니고 뭐 예요. 그 사람은 아직도 해방을 모르는 거예요. 이것이 얼마나 뿌 리깊은 식
민지 문화라는 것을 생각 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요. 너무 답답한 일입니다.
자,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이렇게 오랫동안 식민지 문화 속에서 5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속에 살 아가고 있다 이말 입니다. 이 얼 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참 자유란 진리에 있고,
사랑에 있고 믿음에 있는 것이에요. 진리를 떠나 자유 없습니다. 참으로 자유 할 수 있 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있 는 곳에 참 자유 함이 있는 것이올 시다.
성경에도 나타납니다마는 페르시 아에 고레스라고 하는 왕이 있었습 니다. 이 고레스 왕은
주전 6세기 에 있었던 분인데 아주 덕망이 높 은 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바벨론 포로
에서 해방시켜 준 그런 귀한 고마운 왕입니다. 이 왕이 어떤 때 전쟁을 했는데 딴 왕과 전
쟁을 해서 그 왕과 왕의 아들, 부 인, 그 가족과 전부다 포로로 해 버렸어요. 이제 죽이느냐
살리느 냐 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 때에 왕은 그 적장, 그 왕을 향해 서 적의 왕을 향해
서 이렇게 말했 답니다.
"만일에 내가 당신을 살 려주면 당신은 나에게 무얼 주겠 소?"

"저는 내 재산 절반을 드리 겠습니다."
그 아들을 보면서
"이 아들을 해방시켜주면 어떻게 하겠 소?"

"나머지 재산을 다 드리겠습 니다."
그 옆에 사랑하는 아내가 서 있습니다. 그 아내를 보면서
"당신의 아내를 내가 풀어주면 당 신은 어떻게 하겠소?"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나서 하는 말 이
"그리하면 내 생명을 드리겠습 니다."
고레스 왕은 가만히 생각 하다가
"전면 사면하노라. 무상으 로 놓아주겠소. 사랑을 아는 사람 은 다시 불의의 길로 빠지지 않
을 것이니까."
놓아 줬어요.
참사랑, 참사랑만이 자유의 길이 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누구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 는 동안 그는 자유인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자유인입니 다. 거기에만이
진정한 자유가 있 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물어 보십시다. 나는 자유 합니까? 나 는 얼
마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 까? 나는 정말로 자유한가? 오 직 믿음, 사랑 그리고 진리 그
속 에 자유가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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