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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6장12-19 / 예수님께서 밤새워 기도를 하시다

by 【고동엽】 2022. 11. 19.
■2022년 11월7일(월)■
 
(누가복음 6장)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묵상/눅 6:12-19)


◆ 예수께서 밤 새워 기도하심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주님께서 밤새워 기도하셨다는 이 말씀은 기도 무용론을 외치는 사람들을 심히 당황하게 한다.


하나님과 수시로 교통하시는 주님께서 밤새 따로 기도하셨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마 6:8). 그냥 믿음으로 살면 되지 기도가 무엇이 필요하랴.


그런데 주님께서 밤을 새워서 기도하셨다.
그럴싸하게 세워놓은 이론을 따를 것인가, 주님께서 보여주신 본을 따를 것인가?


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말을 신용하지 않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은 기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매일 학문이란 이름으로, 그리고 그럴싸한 논리로 성경 여기저기 쑤셔대지만 정작 그들은 기도하지 않는다. 영적 실체를 모르고 세상 철학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설사 사람들이 구원을 말하고, 올바른 복음을 말할지라도 정작 기도를 소홀히 하고 있다면 그들의 믿음이 단순히 지식에 불과함을 방증하는 것일 수 있다. 즉 그들의 믿음이 진리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그냥 지적 동의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사람이 정말 구원받았다면, 정말 그들 안에 성령이 계신다면 기도하게 된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호흡하지 않는 것이 호흡하는 것보다 어렵듯이, 거듭난 성도라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매일 매일 닥치는 일에 무력감을 느낄 때마다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밤새워 기도하는 본을 보여주심으로써, 기도하지 않고 이론만 늘어놓는 우리에게 닥치고 기도할 것을 무언으로 교훈하셨다.


그러나 기도를 무언가 필요를 구해야 하는 것만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그렇게 밤새워 기도할 재료가 없다. 기도 시간을 늘리기 위해 중언부언하며 말을 늘릴 것인가?


기도는 필요를 구하는 것만이 아니다. 기도는 예배이며, 찬양이며, 감사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가만히 앉아서 그분을 즐거워하는 시간이다. 아마도 우리 주님께서는 밤새 이런 시간을 가지셨을 것이다.


지나가다가 청춘 남녀가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만 잡고 행복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한참 후에 뒤돌아보았는데 여전히 침묵하며 손만 잡고 있었다. 너무나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다. 그것도 멋진 교제다. 


성 프랜시스가 밤새워 기도한다고 하자 호기심이 가득한 수도사가 몰래 엿보았다. 도대체 무슨 기도를 밤새도록 할까? 그런데 그 수도사가 들은 내용은 오직 하나였다. 높은 톤의 '주여~'와 낮은 톤의 '주여~'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란 하나님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밤새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새벽에 제자들을 부르셨다. 예수님을 따른 무리들은 꽤 많았던 듯하다. 그중에서 12명을 추리셨다. 그리고 '사도'라고 칭하셨다. 이들은 영광스러운 선택을 받았다.


열두 사도 중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서로 형제지간이고 야고보와 요한도 형제지간이다. 동명이인도 많다. 야고보는 둘이나 되고, 시몬과 유다도 둘씩이다. 바돌로매는 나다나엘(요 1:45), 야고보의 아들 유다는 다대오(마 10:3)로 불려지기도 했다. 셀롯은 당시 극단적인 애국정당의 이름이라고 한다. 셀롯 시몬은 여기에 속했던 사람인데, 역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나라 일꾼이 되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 자인데, 가룟 유다(유단 이스카리오텐)는 '카리옷의 거민 유다'란 의미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로 불리기도 한듯하다(막 15:40). 


선택된 면면을 보면 지파별 안배나 신분별 안배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택은 정확했다.


후에 이들은 주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만 빼고 모두 주님을 위해서 진정한 헌신을 했으며,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두가 전원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도들의 일생은 인간적으로 볼 때, 불행해 보였다. 헐벗고 굶주리며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으며 만물에 찌끼처럼 여김을 당하는 인생이었다(고전 4:9-13). 그렇지만 사도 중에 단 하나도 그러한 삶을 불행으로 여긴 자는 없었다. 모두가 영광스럽게 생각했고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모두 현재의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열두 기초석이 있는데, 그 기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계 21:14).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약속하셨다. 이기는 자에게는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주겠다고 하셨다(계 2:17).


우리 주님의 선택과 부르심은 틀림없다.
나의 부족함, 나의 결점을 아시는 주님께서 나를 택하심은 절대로 실수가 아니다. 더는 자책하지 말고 내가 지금 예배하는 자리, 기도하는 자리에 있음을 감사하자. 기뻐하자. 이것이 주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확실한 증거다.


주 예수님,
주님께서 저를 제자로 불러주셨음을 감사합니다.
기도와 말씀 속에서 임재하시고,
믿음이 더욱 뿌리를 내리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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