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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5장33-39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복음과 교회의 관계

by 【고동엽】 2022. 11. 19.
■2022년 11월3일(목)■
 
(누가복음 5장)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묵상/눅 5:33-39)


◆ 잘못된 기준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당시에 세례 요한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금식을 자주 했다. 주님 앞에서 성결하게 살려는 그들의 노력은 가상했다. 칭찬할만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 먹었다. 없어서 못 먹을지언정 금식한 적이 없었다. 물론 제자들도 사도행전에서는 종종 금식함을 보여주었다(행 13:2). 그러나 예수님을 따를 당시에는 제자들에게 금식을 권하신 적이 없다. 이것이 바리새인들 눈에는 문제로 보였다.


바리새인들은 엉뚱한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곤 했다.


얼마나 금식을 자주하는가?
십일조를 성실하게 하는가?
구제를 열심히 하는가?
안식일을 잘 지키는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언뜻 보면 그럴싸하다.
모두가 마땅한 기준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앙은 그런 것이 핵심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았던 바리새인들(눅 18:9-12)의 종교적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어떻게 평하셨을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이것은 그들의 금식이나 종교적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런 종교적 행위의 목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종교적 행위의 목적이 자기 자랑, 자기 영광 추구라면 그것은 역겨운 것이다.


가령 청빈한 삶을 사는 것이야 칭찬할만하지만, 그가 그것을 자부심으로 삼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한다면 그의 청빈은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랑의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오류에 우린 자주 빠진다.
금식해보면, 나는 배고파서 고통스러운데, 다른 사람들이 때마다 열심히 먹을 것을 찾아서 먹는 것을 보면 정말 게걸스럽고, 탐욕스러우며 신앙이 없어 보인다.


내가 잘하는 분야를 기준으로 삼고 남을 판단하는 이 어리석음이란 참 근절하기 어렵다. 그 뿌리는 '자기 자랑', '자기 영광 추구'라는 원죄에 깊이 박혀있다.


아마도 내가 잘해서 받는 칭찬보다는 남을 판단함으로써 받는 책망의 무게가 수십 배 더 클 것이다(눅 18:14).


주님, 이런 오만과 어리석은 판단에서 저를 건져주십시오.


칭찬할만한 여러 종교적인 행위가 자기 자랑의 도구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는 일이다.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새 옷을 찢어서 낡은 옷을 수리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멀쩡한 새 옷을 찢을 뿐이고 낡은 옷에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둘 다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교훈은 당시 바리새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하시는 교훈이다.


오늘날 기독교를 유대교에 욱여넣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목사를 제사장으로, 예배당을 성전으로, 주일을 안식일로, 세례를 할례로 생각하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구약 시스템에 신약 교회를 욱여넣었다. 이것은 신약 교회도, 구약교회도 아니다. 그냥 구약교회 짝퉁 교회일 뿐이다.


성령이 오신 후로는 더는 건물이 성전이 아니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들이 성전이다. 따라서 성도들이 들판에서 모이면 거기가 성전이고 집에서 모이면 거기가 성전이다.


제사장도 마찬가지다. 구약에서는 백성이 제사장을 통해 나아갔지만, 이제는 성도 모두가 제사장이다(계 1:6). 


성도에게 있어서 진정한 할례는 '거듭남'이다. 이것이 마음의 할례며 영적인 할례다. 세례는 할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의 과정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지고 있는 교회관이 짝퉁 교회관이라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저 구약 성경을 모방하고 있으니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라고 착각한다.




◆ 올바른 교회관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사람들은 묵은 포도주를 좋아한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보수적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두려워한다. 옛것을 따르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새 포도주가 나왔을 때, 그것은 헌 부대에 넣으면 안 된다. 그러면 둘 다 잃는다.


복음은 율법과는 다르다. 새로운 틀이고, 새로운 내용이다.
복음은 새 포도주다. 그리고 신약 교회는 새 부대다. 따라서 복음을 구약 교회 시스템에 욱여넣으면 안 된다. 그러면 복음이 훼손된다.


구약교회 일원이 되려면 매년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예배와 찬미의 제사를 드릴 수 있다. 그러니 복음을 어떻게 구약교회 시스템에 넣겠는가?


구약교회에서는 제사장이 아닌 자가 제사를 드리면 불법이다.
그러나 복음은 모든 성도를 제사장이 되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러니 어떻게 구약교회에 복음을 담겠는가?


구약교회에서는 양과 소로 속죄제를 드렸다. 그러나 신약교회에서는 오직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다. 저것이 그림자라면 이것은 실체다. 저것이 육체적이라면 이것은 영적이다. 이러니 어떻게 복음을 구약교회에 담겠는가?


오, 이렇게 진리가 자명한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구약교회를 선호하고 부러워하며 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럴싸한 모방품 교회를 좋아한다. 목사가 제사장이니 목사만이 성찬을 인도할 수 있고 목사만이 축도할 자격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구약 모방품인 것은 알고 있는가?(민 6:24, 고후 13:13) 도대체 언제부터 신학교 졸업장이 제사장 권위의 근거가 되었는가? 세속화도 이런 세속화가 없다.


헌금을 제사로, 예배당을 성전으로 둔갑시키고 각종 절기와 날도 기독교식으로 비슷하게 만들었다. 정말 근사하다. 그러나 유대인의 시각에서보면 조잡한 짝퉁일 뿐이다.


적어도 초대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을 부러워하고 시기했는데(행 13:45), 오늘날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복음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교회관도 중요하다. 복음과 교회는 무척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주님께서 죽으심은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하심일진대, 우리가 어떻게 교회관을 가볍게 생각하겠는가? 부디 올바른 교회관 지식을 가지려고 힘써라.


신약교회는 구약교회를 모델로 하면 안 된다.


주님,
제가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넣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제대로 분별하고, 제대로 실천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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