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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민족의 최후 소망

by 【고동엽】 2022. 11. 19.

막 5:25-34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
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
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
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
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
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자
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
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마가복음 5장 25절-34절)


병중에는 남에게 알릴 수 없는 병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알세라 혼자만 알고 숨기는 병이 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의 병이 바로 그런 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혈루증(血漏症)을 앓는 여인의 기록입니다.
<혈루증>이란 문자 그대로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 병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이 병에 걸린 사람은 격리되어야 합니다.
가족들로부터, 마을에서, 집단에서 격리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만진 그릇이나, 옷이나, 모든 것이 더러워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같은 병이 나병입니다.
나병이 발생하면 가족들과 마을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어쩌다 외출하거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스스로 자신이 피해야 합니다.


만일 그러지 않았다가 발각되면,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이 여인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용하다는 병원과 의사는 다 찾아 다녔지만, 효험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소문이 들렸습니다.
예수라는 선지자가 나타났는데, 그는 능력으로 모든 병을 고친다는 소문이 이 여인에게도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그 후에 이 여인이 어떤 행동을 취하였는가? 27-28절을 보십시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우리가 성경을 볼 때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일은 <말씀>을 단순하게 읽는 것 같이 그렇게만 보지 말고,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 <말씀>이 <말씀되게>하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말씀>이 말씀되게 보지 않고, 단순히 읽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성경은‘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그 말씀 속에서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여인이 고침 받은 것을 통하여 깨달아야할 영적 메시지가 무엇이겠는가?


1. 겉옷을 만졌다는 것은‘행동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교회로 몰려오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소문만 듣고 나와서 구경만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이 여인에게 예수는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병 낫기를 위해 무수한 병원을 찾아 다녔습니다.
이름 난 의사들은 다 찾아가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더 더욱 가진 재물까지 다 소비하여 빈털 털이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들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의 혈루증에 걸려있습니다.
우리 속에 숨겨둔 죄로 인하여 고통 받는 일이 얼마나 큽니까!
남이 알세라 쉬쉬하는 숨겨둔 죄들이 다 있습니다.
들어 날까봐 부끄러운 죄의 병들을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죄>는 사람 앞에 들어내기를 꺼립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숨기려고만 하지, 근본적으로 고칠 생각은 못한 채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다 죄의 병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이 여인같이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아직도 이 여인처럼 절박한 현실이 아니기에 숨겨둔 채 지냅니다.
죄의 고침을 받으려면 주님을 향해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옷자락에 손을 대는 것은 행동적 믿음입니다.
입술이나 머리로 믿는 신앙에는 아무런 기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적은 행동하는 믿음 속에서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믿음! 오늘도 그 믿음 속에서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2. 겉옷을 만졌다는 것은 예배의 행위를 말합니다.
예배(禮拜)란 한자어의 뜻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禮)를 가추고 절(배拜)하는 것을 <예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예배의 대상이 없는 예배의 행위는 놀이에 불과합니다.
오늘 이 시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배하러 나온 우리들이라면 예배의 대상에게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절해야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여인은 참 예배자의 행위이었습니다.
예배란 주님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대는 행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다녔지만, 정작 그에게 손을 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가 어떤 일을 하는가?
무슨 기적을 나타내는가?
호기심에서 보려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지금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예배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는 나 자신을 주님께 접촉하는 행위이어야 합니다.
주님께 손을 내미는 행위가 예배입니다.
보고만 있는 사람들 속에서는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예배를 보았습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손을 내 밀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접촉하는 행위가 예배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여자가 주님께 손을 댄 것은 목숨을 건 행위이었습니다.
돌탕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한 행위였습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피 흘리는 전쟁은 계속됩니다.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립니다.
혈루증의 여인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병원과 의사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과학>의 발달로 인류의 복지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유엔>의 힘으로 인류의 평화를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경제> 제일주의로 행복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혈루의 근원을 막을 자는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3. 겉옷을 만졌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소망임을 말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6월은 비극의 달이었습니다.
56년 전 남북이 사상의 대립으로 총부리를 겨누었고, 16개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피 흘림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피 흘림의 역사는 피 흘림의 보복으로 이어질 뿐이란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피 흘림의 상처를 치유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정치가들은 <자주 국방>을 말하고,
경제인들은 <경제 성장>을 말하고,
지식인들은 <자유와 평등>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여인이 많은 의사들에게 상처를 받은 것처럼, 우리 민족이 지금껏 상처 받은 것은 무신론적 사상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사상들 때문에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통일을 원하면서도 통일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외세를 물리치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른 들으면 그럴듯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은 기독교인들로서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정말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원한다면 하나님 없다는 양쪽의 사상을 다 몰아내고 우리 민족끼리 남북이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닌 우리 민족끼리는 기독교 신앙으로는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식으로 우리 민족끼리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북한식이 무엇입니까?
공산당이 예수 위에 있는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공산당 밑에 있어야 합니다.
공산당을 비판하고, 위대한 지도자를 비판하면 모두 반동으로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


그러기에 그런 <민족통일>은 반대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편에서는 그런 <민족공조>로 통일을 하자고 합니다.
저들은 통일을 막는 것이 기독교 사상이요, 그것의 원흉을 미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미국을 추방하고 민족끼리 공조하면 통일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며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살 길은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목사의 예수의 피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다고 찬송을 부릅니다.
인류의 최후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영원한 최후의 소망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참 예배 자들이 되어, 혈루의 근원을 마르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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