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 03일] 구원 얻을만한 믿음(막 10:46~52)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oIoJCHtzQls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마가복음 10장 46절부터 52절에 있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신약성경 73면 되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서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그 이름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함에 맹인이 겉옷을 내버려 두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로 나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아멘. 여러분, 달라스 근교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늘 부탁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라. 이 전파라고 하는 말은 영어로 '프로클라마시온(proclamation)'이라고 말합니다. 헬라어로는 '케뤼쎄인(kerussein)'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가진 사명 중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세 가지가 첫째가 '케뤼그마(kerygma)' 곧 복음을 전파하는 일, 두 번째가 '코이노니아(koinonia)' 곧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디아코니아(diakonia)' 곧 서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케뤼그마,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 이 세 가지가 저희가 가지는 사명인 것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파하라, '프로클라마시온' 복음을 전파하라. 아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간곡히 부탁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 뭡니까? 소문 내라는 거예요. 소문 내라는 거예요. 예, 복음을 전파하라, 이 복된 소식을 전파하라고 말이에요. 사망의 진구가 굳든지 아니 굳든지 상관하지 말고 복음을 전파하라. 자, 여러분. 우리의 생활을 통해, 우리 말을 통해, 우리 사업을 통해, 모든 것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내 속에 복음이 있어야 돼요. 내 속에 복음이 없는데 어떻게 복음을 전파합니까?
복음이란 말이 '유앙겔리온(euangelion)'입니다. 그 유앙겔리온은 곧 좋은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복되고, 복받고, 복에 감격하고, 복에 행복하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말로 전하고, 행동으로 전하고, 얼굴로 전하고, 우리 생활 속에서 복음을 전파하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그의 진실한 증인이 되고, 복음의 증거가 되고, 그리고 우리 행동, 우리의 말, 우리의 순간순간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라.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련을 당하고 마지막에 순교까지 당합니다. 순교야말로 복음을 전파하는 최고의 행위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냐가 아닙니다.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겁니다. 어떻게 끝내느냐. 여러분 아시는 대로 모든 순교자는 다 그랬습니다. 감사하며, 찬송하며, 할렐루야로, 천사의 언어로, 용서하며 이렇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에요. 예수 믿는 사람은 주님 믿는 그날부터 모든 생활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해야 된다. 다시 말하면 예수에 대한 소문을 내야 된다. 복음의 소문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는 그런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소문 중에서 복음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간단하게 복음을 전하지만, 복음을 듣는 사람의 속에 성령이 역사해서 내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서 그 소문을 통하여 저들은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느끼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아주 간단합니다. "천국이 가까웠다고 해라."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도 없고, 무슨 특별한 수련을 한 게 아니야. 이 갈릴리 어부들, 지금 방금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시면서, "천국이 가까왔다고 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소문 중에서 복음을 들어야 됩니다. 모든 소문이지만 그 소문 속에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그 특별한 은총을 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좀 유감스러운 얘기가 있어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예수님의 이적을 봤거든요. 아주 부인할 수 없는 놀라운 예수님의 이적, 말씀 다 보고 나서도 그 뒤에 가겠다는 다리면서 "표적이 뭡니까? 당신이 메시아가 된 표적이 뭡니까?" 표적을 계속 추구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진노하셔서 하는 말입니다. "요나의 표적 외에는 더 볼 것이 없느니라." 이렇게 책망까지 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미 가슴속에 충분합니다. 이미 들은 복음으로 충분합니다. 이미 복음만 가지고, 이미 경험만 가지고도 충분합니다만 아닙니다. 쫓아다니면서 또 다른 표적, 더 큰 표적, 그 놀라운 표적을 이렇게 추구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 나타난 얘기는 다릅니다. 바디매오라는 사람 시각장애인입니다. 거지입니다. 그 시각을 가리안 눈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보고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이렇게 행렬을 지어서 다니는 그 모습을 본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다 만들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는 걸 보고 "이건 무슨 사람들이냐?"고 물어봤더니 예수님이 지나가신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시각장애자는 청각이 보통 사람보다 스무 배가 높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먼 소리를 듣습니다. 예민하게 듣습니다. 그 부분에 아주 우수합니다.
그래서 이 바디매오가 들음 바를 근거로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여, 날 긍휼히 여기소서. 다윗의 아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잠깐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종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듣는 종교가 있고 보는 종교가 있습니다. 믿음의 근거로써 뭔가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요. 예수님 본모습 모르는 거야. 그거 아직은 안 돼요. 그러나 어떤 분은 보는 건 없어요. 들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자,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우리가 흰두교, 이슬람교, 그 보는 종교는 뭐 어 다 보는 게 많아요. 화려하고 굉장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보는 종교가 아닙니다. 듣는 종교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종교요, 말씀을 듣는 종교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합니다. 일천 번제를 드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 내게 순종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직역하면 그런 뜻입니다. '히어링 하트' 그 듣는 마음을 주세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흡족하게 해 주신 것은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 흡족하기 때문입니다. 듣고 좋아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채워 주십니다. 보고 좋아하는 마음은 힘이 빠집니다.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자, 보고 좋아하는 생각을 싹 져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듣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그 자체가 은총입니다. 그 자체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외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이 불쌍한 거지, 이 시각장애자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데 여러 사람이 도와줘야 될 것 같은데 아닙니다. 뒤끝 없다고 조용하라고 많은 사람이 꾸짖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할 때 방해가 많습니다. 주변에 방해가 많습니다. 이 방해를 극복하고 나가야 합니다. 멸시가 있고, 무관심이 있고, 방해가 있습니다. 그걸 다 극복하고 꾸준히 계속 부르짖고 계속 기도해야 됩니다. 계속 하나님, 예수님께 나아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근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한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소란한 장면 속에서 "왜 이러냐?" 바디매오가 계속 소리 지릅니다. 막 그렇게 지어낼 때 예수님 말씀이 개별적으로 부릅니다. "네가 오라." 강합니다. 개별적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간절한 음성이 들릴 때 주변 사람이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너를 부른다." 개별적으로 주의 부름을 받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불같은 은혜가 임합니다. 주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고 나를 불렀다. 그 자체가 은총입니다.
그 은총에 대해서 응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세요. 참 성경 가운데서 참 특별한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겉옷을 버려 두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겉옷을 버려 두고 그가 예수님께로 오늘 성경에 본 대로 달려나왔다 그랬어요. 아니 시각장애자가 띄어 나왔다는 얘기예요. 뭘 보고 뛰는 게 아니라 주께서 나를 부르신 그 부름을 향해서 뛰어 나오는 거예요. 시각장애인이 뛰고 있는 거예요, 지금 예수님을 향해서. 아, 이건 굉장한 모습입니다. 끝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겉옷을 버려 두고. 아, 그 인상적입니다. 이 거지에게는 그 옷이 뭐냐? 낮에는 옷이고 밤에는 이불입니다. 그러니 이 이불이 곧 옷이다. 그냥 둘이서 이렇게 다니는 겁니다. 이 당시에 중요한 재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버려 두고 예수께로 나갑니다. 과거와의 단절입니다. "내가 거지 생활 안 할 거다." 하는 확신이 그에게 있는 겁니다. 그것을 버려 두고 예수께로 달려갔다. 이게 아주 인상적인 얘기입니다. 제가 우스운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인천 제물포에서 목회할 때 그 교회가 가까이에 공이 문이라는 문이 하나 있어요. 그 문 가까이에 늘 다니면서 보면은 돗자리를 깔아 놓고 거기서 "욕하고"라고 하는 그 거지가 하나 있어요. 이 거지는 장님이에요. 앉아 가지고 이렇게 동냥 주기를 그래서 제가 늘 지나가다가 그저 어느 막혀들게 늘 거기 돈 놓아주고 놓아주고 이렇게 하고 다녔는데요. 그는 아주 오랫동안 거기 앉아 있는 거지예요.
그랬는데 얼마 후에 심방을 하느라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까 오셔서 만났는데 바로 그 사람을 만났는데 이년지사이에요. 멀쩡한 사람이. 역 그래서 내가 "아니오, 당신이 공이 문 앞에서" 그랬더니 하는 말이 히히 웃으면서 "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습니다." 자기 그렇게 간다고 해요. 아, 그래서 "아니오, 극 겉옷은 어디 가고?" 했더니 긍휼히 보며. 그걸 잊지 않고는 나갈 수가 없어요. 많은 강아지 않고는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렇게 해 놓으라 하고 악수하면서도 "야, 세상에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생각을 했습니다.
유명한 심리학자 피츠 제럴드는 말합니다.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서는 옛날로부터 단절해야 한다. 옛것으로부터 깨끗이 단절해야 새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마스베가스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한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라스베가스 그 장로교회 장로님들 얘기해 보면 라스베가스에 사시는 분들의 대개가 다 딜러라는 게 도박장에서 일하는 거거든요. 호텔에서 일하는데 그 장로님 말씀이 도박장에서 이 딜러로 이렇게 하는 이 카드 나누어 주는 것, 그 딜러를 3년을 했지, 아니합니다. 30년을 했대요. 30년을 방 평생 이걸 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도박에 대해서는 다 듣고 아시죠. 그분이 내게 이런 자기가 30년의 모든 진리를 말한다고 하면서 한마디 해 줬어요. 자기가 이렇게 딜러로 가면서 보면 누가 돈을 따고 잃고 어떻게 하면 따고 어떻게 뭐 이런 거 다 아는 거예요. 즉, 그게 보면 4만 불을 딴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그 경험 때문에, 4만 불을 땄던 그때 감격 때문에, 그때 즐거움 때문에 다시 보고 다시 또 심지어는 라스베가스에 가보세요. 그 뒤로 많아요. 여기저기서 돈 달라고 그래요. 그 돈 줘 보세요. 그거 가지고 또 도박 해요. 밥 먹는 게 아니에요. 그만큼 이 사람들은 도박에 미쳤는데 왜 미쳤느냐? 아는 경험 때문이에요. 4만 불을 딴 사람은 다시 그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조금 땄던 사람은 벌떡 일어날 수가 있는데 많이 따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 뭡니까? 성공한 경험도 잊어버려야 돼. 실패한 경험도 잊어버려야 돼. 아팠던 경험도 잊어버려야 돼요. 환상적인 아픈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야 우리 앞에 새로운 미래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의 단절, 아주 중요한 다짐입니다. 그런데 이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오라고 부르시고 가라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아직 장님입니다. 과거로부터 벗어납니다. 다시 있나 돌아볼 생각이 없습니다. 그 거지 옷을 홀딱 벗어 버리고 예수님께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고귀한 그 신앙인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바디매오에게 물어봅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난 이런 질문이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소원을 정리해야 되거든요. 내 거머리 쥐는 뭐냐 생각해 봐야 됩니다. 오늘 예수님이 물어봅니다. 이 사람에게 당연한 것 같은데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내가 안 되게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사람 대답합니다. 이 거지입니다. 자, 보통 사람에게는 사람이 뭘 원하겠습니까? 돈이죠. 백번 만나면 백 번 다 돈이에요. 누구를 만나든지 구걸하는 사람에게는 돈밖에 없어요.
근데 예수님에게 말한 돈이 아니에요. "보기를 원하나이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장님이 눈을 뜬다고 하는 이 큰 기적, 이것을 예수님께 구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말 한마디 속에 엄청난 신앙 고백이 있는 거예요.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만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는 돈을 원하지만 당신에게는 보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아니 보세요. 우리가 기도하지요. 기도하는 수준을 따라서 우리 신앙의 수준이 평가되는 것입니다. 항상 뱅뱅 돌아가는 돈이요. 어떤 사람이 기도했다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예를 주세요, 복을 주세요, 뭐 주세요" 다 하고 나서 맨 마지막에 "돈도 잊지 마세요" 이런데요. 아이고, 돈이 마지막이요. 그러나 오늘 바디매오는 없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돈을 구하지만 메시아이신 당신에게는 보기를 원하나이다. 당신은 내 눈을 뜨게 할 수 있을까?" 이 소원 자체가 그래서 정화되고 있어요. 이미 바른 신앙고백이에요. 베드로가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에 못지않은 고백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내 눈을 뜨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놀라운 방식으로 구하는 것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믿음을 크게 크게 칭찬해 주십니다.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네 믿음이" 보세요. 요구하는 믿음이 온전치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걸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사를 받는 그릇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말합니다. "하나님은 공짜로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을 때는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한다. 믿음의 그릇, 깨끗한 그릇, 온전한 그릇 있어야 하나 그 그릇만큼 받는 것이다. 그만큼 버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짜로 은혜를 주십니다만 그 받아들이는 마음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내 믿음이 어디까지 왔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바디매오는 그 인간을 대표합니다. 그는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만 시련 끝에 그런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주께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이제부터 밝은 세상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삼층 집에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다 밖에 나가 있었고, 얘는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불을 만나서 삼층에 올라갔습니다. 옥상에 올라가서 연기 속에서 울고 있습니다. 소방수들이 다 와 가지고 "크단 모자이크 부다리를 들고 뛰어 내리라. 우리가 너를 붙들어 줄 테니까 안심하고 뛰어 내리라." 아이는 뛰려 하지 않습니다. 계속 울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왔습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엄마 여기 있다" 그러니까 어머니 음성이 들리자마자 애가 3층 높은 데서 뛰어내립니다. 네 믿음입니다. 주님 음성이 들려올 때, 개별적으로 들려올 때 내가 믿음을 가지게, 믿음을 놓는 그분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에요. 항상 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도 저희들이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부끄럽거나 이만큼의 믿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오늘 본문 저 바디매오의 믿음 같은 온전하고 순전하고 생산적인 그 믿음을 가지게 하사 주께서 언제나 응답하시는 대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하실 때 분명 새로운 장이 우리 앞에 전개될 수 있을 만큼 그런 믿음, 그 확고한 믿음의 그릇을 가지고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해 주시고, 그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승리 생활, 새로운 생활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설교 내용 상세 요약: 마가복음 10장 46-52절 (바디매오의 치유)
이 설교는 마가복음 10장 46-52절에 기록된 맹인 바디매오의 치유 사건을 본문으로 삼아, 복음 전파의 사명과 믿음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1. 📢 교회의 세 가지 사명과 복음 전파
- 교회의 사명: 설교자는 교회의 세 가지 중요한 사명을 언급합니다.
- 케뤼그마 (kerygma): 복음을 전파하는 일 (프로클라마시온, kerussein).
- 코이노니아 (koinonia):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
- 디아코니아 (diakonia): 서로 봉사하는 것.
- 복음 전파의 본질: 주님께서 간곡히 부탁하신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 즉 **'소문 내는 것'**입니다.
- 복음(유앙겔리온, euangelion)은 좋은 소식을 의미합니다.
-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내 속에 복음이 있어야 합니다.
- 말로, 행동으로, 얼굴로, 모든 생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받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 순교의 의미: 복음 전파의 최고 행위는 순교이며,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2. 👂 보는 종교가 아닌 듣는 종교
- 바디매오의 상황: 여리고 성 밖에서 예수님 일행이 지나갈 때,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거지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는 그 소문을 '들었습니다.'
- 들음의 중요성: 시각장애인은 청각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높아 들은 바를 근거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 기독교의 특성: 종교는 보는 종교(힌두교, 이슬람교 등)와 듣는 종교(기독교)로 나뉘는데, 기독교는 말씀을 전하고 듣는 종교입니다.
- 솔로몬의 기도: 솔로몬이 하나님께 **"듣는 마음(Hearing Heart)"**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흡족해하셨습니다. 보고 좋아하는 마음 대신, 듣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은총입니다.
3. 🚧 방해를 극복하고 나아감
- 주변의 방해: 바디매오가 소리 지르자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주변의 멸시, 무관심, 방해가 많지만, 이를 극복하고 계속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 개별적인 부르심: 예수님은 소란 속에서 멈춰 서서 바디매오를 **개별적으로 "그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부름을 개별적으로 받는 것은 불같은 은혜입니다.
4. 🔗 과거와의 단절과 새로운 시작
- 겉옷을 버려 두고: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겉옷을 내버려 두고' 벌떡 일어나 달려 나왔습니다.
- 겉옷은 거지에게 낮에는 옷, 밤에는 이불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 겉옷을 버린 행위는 과거와의 단절이며, **"내가 거지 생활 안 할 거다"**라는 확신입니다.
- 새로운 길: 심리학자 피츠 제럴드의 말을 인용하여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옛것으로부터 깨끗이 단절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성공, 실패, 아픔 등 과거의 경험에 매여선 안 됨)
5. 🙏 믿음의 온전한 소원과 구원
- 예수님의 질문: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소원을 정리하고 점검하게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 바디매오의 소원: 거지는 보통 돈을 원하지만, 바디매오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 신앙 고백: 이 대답은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당신만이 내 눈을 뜨게 할 수 있습니다"**라는 놀라운 신앙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 믿음의 칭찬과 구원: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곧 보게 되었습니다.
- 믿음은 하나님의 은사를 받는 그릇이며, 온전하고 깨끗한 믿음의 그릇만큼 은혜를 받습니다.
6. 🚶♂️ 결론: 믿음으로 승리하는 생활
- 바디매오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시련 끝에 주님을 만나 온전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나아갔고 구원을 얻어 밝은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 설교는 **'주님의 음성이 개별적으로 들려올 때 믿음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을 강조하며, 생산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승리하는 생활을 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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