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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2장21-24 / 율법에 쓴 대로 아기 예수 할례 받다

by 【고동엽】 2022. 11. 18.
■2022년 10월13일(목)■


(누가복음 2장)


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묵상/눅 2:21-24)


◆ 그 이름 예수


(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구약에서 천상의 존재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적은 있어도 사람이 된 적은 없다.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해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나셨다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 전체에서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신비다. 세상이 창조된 것보다 더 큰 신비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비록 난지 8일밖에 안 된 버둥거리는 아기로 있지만, 선지자가 말했듯이 '그의 근본은 상고(아주 오랜 옛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이토록 놀라운 그리스도께서 '예수'라고 이름이 지어짐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이시기 때문이다. 이름 자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명의 실패가 아니라 사명의 완수임을 암시하고 있다.


사이비 이단 교주들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실패자로 만들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로 알게 되면 절대로 사이비 이단에 빠지지 않는다.


마귀는 사람들이 딱 한 가지만 빼놓으면 어떤 종교활동을 해도 겁내지 않는다. 그 딱 한 가지란 바로 '예수'다.


동네 할아버지보다 못한 노인네를 믿고 있는 신*지나, 성도착증 환자를 교주로 믿는 J*S나, 여자가 교주가 되면서 자신을 하나님 어머니라고 칭하는 하*님의 교회 등, 한국에는 여러 이단과 사이비가 있다.


사이비 교주들의 특징이 예수님을 바라보지 말고 자기를 바라보게 한다. 너무나 그럴싸한 궤변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러나 사자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절대로 시궁창 쥐를 사자와 혼동하지 않는다.


예수님보다 자기를 바라보게 하는 자들이 어찌 사이비 교주들뿐이겠는가? 오늘날 정통 교단 간판을 걸고서도 교인들이 자기를 따르고 바라보게 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멀리해야 한다.


◆ 율법 아래 나신 분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오늘 본문에 '모세의 법대로', '주의 율법에 쓴 바'라는 말들이 나온다. 이것은 예수께서 율법 아래 나셨고, 율법의 모든 절차와 모든 계명을 다 준수하심을 말해준다.


첫 아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나(민 3:11, 40-41), 산모가 정결 의식을 치르기 위해 드리는 제사(레 12:2-4) 등도 모두 정확하게 완수했다. 이 모든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의 저주가, 모든 것을 항상 지키면 율법의 복이 임한다. 그런데 어느 인간도 율법을 완벽히 지킨 자가 없다. 모두가 저주받아야 할 운명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율법 아래에서 나시고, 율법의 준수자가 되셨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율법을 완벽하게 다 지킨 자가 되셨다. 이로써 율법의 저주에 속한 자를 대신해서 죽을 수 있게 되셨다. 자신이 율법을 어기면 저주를 받아야 할 대상이 되는데, 어떻게 남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율법을 모두 지키신 분으로서 마땅히 복을 받으셔야 하는데, 그 복을 우리에게 주시고, 오히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갈 3:13). 이것이 대속이다.


내 친구는 목사인데,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지 않는다. 예수님을 그저 인류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선생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이론대로 하면 우리도 잘만하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 그의 설교는 인류의 평화나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지 않는 자가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알겠는가? 십자가의 속죄를 믿지 않고서야 어떻게 구원을 확신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의 속죄와 대속을 믿지 않고도 마음의 평화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그것이 더 황당하다. 단지 이웃과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사는 것에 국한한다면 종교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동물 병원의 강아지들도 적당한 훈련과 환경만 주어지면 평화롭게 산다.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평화를 주실 수 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그리스도이시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어떤 마음의 평화도, 어떤 생명도 가질 수 없다.


주 예수님
저에게 구원과 죄 사함의 확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평화입니다.
매일 매일 주님을 더욱더 알게 해주십시오.
주님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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